[경제포커스] 라임·옵티머스 사기는 어찌 됐나요
‘2조원’ 권력형 경제범죄 의혹
검찰수사 지지부진한데 일선 공직 기강 무너질 수밖에
LH 투기는 잡범 수준일 수도
입력 2021.03.18 03:00 | 수정 2021.03.18 03:00
2020년 10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서울고검·수원고검 산하 검찰청들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의원이 국민의힘 유상범 의원의 옵티머스 사건 관련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동네 공원에서 밤 산책을 하는데 청년들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대학 초년생이나 재수생으로 보이는 남자 3명이었다. 욕설도 튀어나왔다. “너, 평생 집 살 수 있어?” “아니, ! 반지하 월세도 자신없어.” “월급 다 모아도 아파트 못 산대. 야, 우리 어떻게 사냐? !” “난 걱정 안 해, 여기 공원에 텐트 치고 살면 되지.” “하하하하” 웃는 게 아니라 절규였다.
젊은이들이 ‘내 집 꿈’조차 포기한 상태인데 LH 투기 사태는 그들을 더 서글프게 하고 있다. 지방의 LH 직원은 친인척과 주변인 수십 명을 동원해 수도권 신도시 예정지에 수십억원대 원정 투기까지 했다. 지자체 공무원, 지방의회 의원, 군무원도 속속 투기꾼 대열에 등장했다. 분양권을 노린 ‘땅 쪼개기’는 기본이고 도로·맹지·야산까지 마구 사들였다. 세종시를 설계한 한 공직자 출신은 “개 집 짓느라 땅 샀다”고 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부동산에 ‘벼락거지’가 된 청년과 서민들 가슴을 후벼판다. 이 칼럼을 쓰는 도중에도 “무작위로 전화하는 것”이라며 “신도시 토지 경매에 관심 없느냐”는 전화를 받았다. 기가 찰 일이다.
정부는 대통령과 총리가 나서서 “발본색원” “패가망신” 운운하지만 뒷북 엄포일 뿐이다. “수사가 망했다”는 소리가 벌써 나온다. 시간만 질질 끌다가 합동수사본부를 만들었는데 경제범죄 수사가 주특기인 검찰을 빼버렸다. 수사의지 박약이다.
한탕을 노리는 땅 투기는 기본적으로 개개인의 문제다. 그러나 일선 공직사회에 광범위한 투기 열풍이 생겨난 것은 구조적인 문제다. 무엇보다 정권 탓이 크다.
정부는 무려 2조원 이상이 증발한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기 범죄가 터졌는데도 수사를 질질 끌고 있다. 청와대와 여권 사람들 이름이 오르내리고 수십억, 수백억원씩 뭉칫돈이 여러 통로로 빠져나간 정황이 드러났지만 1년 반이 되도록 의혹이 풀리지 않고 있다. 펀드사기를 수사해온 증권범죄합수단까지 해체시켜 버렸다. 초대형 경제범죄에 이렇게 관대한 정부는 없었다.
울산시장 선거 공작 의혹,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등 다른 권력형 범죄 수사가 지지부진한 것도 공직 기강을 빠르게 무너뜨리는 쪽으로 작용했다. 경제사범에겐 저승사자와도 같던 검찰은 허수아비 같은 존재로 전락했다. 법치와 공정이 위에서부터 무너지면 현장에서 재정과 권한, 정보를 쥔 공직자들은 유혹에 빠지게 된다. LH사태가 바로 ‘공직 기강 붕괴’라는 최적의 환경에서 발생한 것이다.
LH 직원들은 “설마” 했을 것이다. 피해자가 수천 명에 달하는 초유의 ‘2조원 증발’ 사기 사건도 뭉개다시피 하는 정부가 시골 땅까지 뒤지는 일은 적어도 이 정부 임기 내에는 있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앞으로 정부가 전국 곳곳을 샅샅이 뒤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예타 면제 등으로 벌여놓은 지역 토건사업이 하도 많아 잘못 들쑤시면 또 다른 비리가 터져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이제야 특검을 도입해 의원들 전수조사까지 하겠다고 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있다. 투기범을 많이 잡는다고 해서 정권에 도움이 될 리 없다. 1년 후 또 대선이다. 시늉만 하다가 LH 직원과 지자체 공무원 수십 명을 처벌하는 선에서 사태를 매듭짓는 시나리오가 유력하다.
만일 정부가 태도를 바꿔 라임·옵티머스 사건을 사정없이 파헤친다면 4년 내내 불평등·불공정·불의가 판쳐온 세상이 180도 달라지고 땅 투기도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LH 사태도 남 탓으로 돌리는 문 정부에서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경제를 해치는 부패와 불공정은 계속되고 젊은이들의 시름은 더 깊어질 뿐이다.
윤영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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