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대비 카르텔처럼 조직화된 공직자 부패[동아광장/하준경]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입력 2021-03-17 03:00수정 2021-03-17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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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사회 구축으로 부패 줄어든 한국
표적에서 벗어난 공직자 비리 우려 커져
독점적 특혜 막을 제도 재설계해야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공직자의 부패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선 여러 의견이 존재한다. 심지어 부패는 경제활동의 윤활유로 성장에 도움을 준다는 견해도 있다. 비옥한 땅에 농사를 못 짓게 하는 비합리적 규제가 있다면 공무원에게 뇌물을 줘서라도 경작을 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패는 결국 비효율적인 이들에게 자원을 몰아주고 애써 혁신할 유인을 저해하므로 경제성장을 해친다는 견해가 대세다.
최근 실증 연구들도 부패가 경제에 해롭다는 견해를 지지한다. 부패가 이로운 경우는 사회 전반의 제도가 전근대적이고 불완전한 예외적 상황에 한정된다. 이 예외가 바로 아시아 개도국들, 특히 1990년대 이전 체제들이다. 지배자가 공공의 부를 약탈하는 ‘도둑정치(kleptocracy)’ 체제가 효율적일 수 있다는 ‘동아시아의 역설’에 대해선 여러 설명이 있지만, 그중 가장 그럴듯하게 들리는 것은 최상층 지배자가 자신의 몫을 늘리기 위해 하급자의 부패를 최대한 억제할 것이라는 가설이다. 공직자의 부패 유인이 넘쳐나는 사회에선 최상층 약탈자의 탐욕이야말로 중하층 약탈자들의 탐욕을 제어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수단이 된다. 최상층 약탈자 자신의 탐욕이 조절되지 못하면 그 효과도 무의미해지지만 말이다.
한국은 민주화 이후 부패 척결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큰 부패들을 법으로 처벌하는 성과를 보이기도 했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부패 방지 분야에서 한국의 순위는 100분위 기준으로 1996년엔 34위, 김대중 정부 말기 2002년엔 28위, 노무현 정부 말기 2007년엔 27위, 이명박 정부 말기 2012년엔 29위, 박근혜 정부 말기 2016년엔 33위로 부침을 거듭하다가 문재인 정부 중반 2019년엔 23위로 높아졌다.
‘촛불혁명’ 이후 최상층의 부패 가능성에 대한 감시와 견제는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땅 투기 사건을 보면 집중 감시의 표적에서 벗어난 공직자들의 부패는 오히려 더 일상화돼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이 든다. 최상층의 탐욕이 중하층의 탐욕을 제어하는 전통적 부패 메커니즘이 취약해진 상태에서 기존 제도가 그대로 유지될 때 일반 공직자들의 부패는 더 조직화되고 체계화되기 쉽다는 역설에 주목해야 한다.
일부 공직자들의 조직화된 부패는 많은 경우 현직과 전직이 협력해 정보를 공유하고 부당이익을 나누며 노후 대비 소득을 만들어주는 암묵적 카르텔의 모습을 띤다. 노골적으로 현금을 주고받을 필요도 없다. 경제가 커진 만큼, 모두가 참여하는 게임에서 현직 심판이 눈에 띄지 않게 자기편 선수(전직 심판)의 승률을 조금만 높여줘도 큰 이익이 난다. 전·현직 직원들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법인들, 각종 전관예우들 모두 이런 혐의에서 자유롭지 않다.
동아일보 2019년 4월 22일자 ‘전관예우, 반칙이고 범죄입니다’ 기획기사를 보면 2018년 ‘공직퇴임 변호사’의 수임 실적은 서울지역 변호사 평균의 2.9배에 달했는데, 이 수치는 2012년의 1.6배보다 크다. 그동안 전관예우를 막기 위한 변호사법 개정이 수차례 있었으나 실효성은 없었다. 또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금융당국 출신 인사의 금융회사 재취업에 따른 경제적 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2011∼17년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일부 기관 출신 인사가 금융회사에 임원으로 취임할 경우 금융회사가 당국으로부터 제재를 받을 확률이 뚜렷이 낮아졌다고 한다.
현직이 전직(또는 그 대리인)에게 알게 모르게 특혜를 주고 또 현직은 나중에 전직이 돼 노후를 보장받는 부당공동행위가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카르텔이 장기적·합법적 노후 대비형으로 진화해 갈수록 5년짜리 정권의 통제권은 무력화된다. 카르텔 멤버가 되려는 공직자들이 누구의 말을 들을 것인지는 자명하다.
이런 문제를 막으려면 애초에 제도를 잘 설계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특혜 카르텔 문제가 두드러지지 않는 것은 부패 방지 제도가 엄격할 뿐 아니라 여러 기관들이 견제와 균형의 관계를 이루고 있어 독점적 특혜가 생겨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견제와 균형보다는 고도성장기 마인드로 단기 효율을 중시해 만든 제도와 조직일수록, 또 여러 권한들이 결합돼 있고 독점권이 공고한 조직일수록 부패에 취약하다. 토지공사와 주택공사의 결합이 만든 이해관계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차제에 이해충돌방지법을 잘 만들어 빨리 통과시켜야 한다. 법이 있어도 효과가 없는 이유도 밝혀야 한다. 나아가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수많은 부패 카르텔들이 애초에 수익을 내지 못하도록 제도 전반을 재설계해야 한다.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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