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미국이냐 중국이냐, 기로에 선 대한민국
[중앙일보] 입력 2021.02.15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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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만학 경희대 명예교수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결과에 불복하고 추종자들이 의사당을 유혈점거 하도록 교사한 혐의로 두 번이나 탄핵당하는 극단적 정세 속에서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가 ‘변곡점’을 이룰 것은 확실하다. 4년간의 애브노멀을 뉴노멀로 대체할 미국 신행정부는 과연, 우리에게 중요한 미중 전략적 경쟁과 북핵 문제에서 어떤 지속성과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바이든, 미중을 전략경쟁 규정
민주주의 기초 국제연대로 대응
미중, 이웃국가에 양자택일 강요
미중갈등 한반도 못오게 막아야
트럼프 행정부의 미 국익 우선주의, 국제적 고립주의, 반민주적 포퓰리즘 등 극우적 국정 운영에 반하여, 바이든 행정부는 국제 관여주의와 리더십 회복, 민주주의 연합 등 트럼프 시대에 대한 전면적 반명제를 강조한다. 이러한 대립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초당적으로 공유하는 국익 영역은 지속성을 가질 것이다. 그 중 하나가 대중정책이다.
도광양회로 화평굴기하던 중국은 2008년 미국이 금융위기로 휘청거리자 2010년 일본을 추월하여 GDP 세계 2위로 등극하면서 할 일을 하겠다는 주동작위로 선회했다. 중국은 유리해진 세력균형에 힘입어 타이완, 동중국해, 남중국해 등에서 위압적으로 ‘핵심이익’을 추구하기 시작했으며 핵심이익 쟁취를 위하여 항모 배치, 정보기반통합군지휘체계(ISSSO) 구축, 반접근지역거부(A2/AD) 전략 등 군사능력 고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을 ‘수정주의’로, 미중관계를 ‘전략 경쟁’으로 규정하는 한편 미국은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을 유지하기 위하여 진력해야 한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인식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보호무역주의와 일국주의적 대응을 선택한 트럼프 정부와 달리 바이든 대통령은 자유, 개방, 민주주의, 인권 등의 가치에 기초한 광범한 국제 연대와 국제체제에 의한 체계적 대응을 제시한다.
바이든 행정부는 미중 경쟁을 단순한 패권 경쟁이 아니라 자유주의 대 권위주의의 체제 대결로 끌어 올리면서 중국의 불공정 경제 행위, 수정주의적 야심 등에 대하여 세계무역기구(WTO) 등 현 자유주의 국제기구와 규범들을 동원하고자 한다. 그리고 중국의 안보 위협에는 쿼드, 민주주의정상회의 등 국제적 가치 연대에 기초한 다자주의로 억지하면서 이를 통해 다시 한 번 국제적 리더십을 회복하고자 한다.
이러한 정책 방향은 중국의 화평굴기를 가능케 한 근본 요인들을 제거하는 심대한 함의를 가진다. 첫째, 특히 민주당이 지원했던 대중 포용정책은 종식되었다. 미국은 더 이상 중국이 국제규범을 위반하며 자행한 환율 조작, 불법 보조금, 지적재산권 등의 불공정 행위들을 포용하지 않고 “자유롭고 공정한” 경제로 나아가도록 최대 압박할 것이다. 둘째, 근본적으로 바이든 행정부는 민주주의, 인권, 자유 등을 압박함으로써 고도 경제성장과 수정주의 대외정책을 주도한 개발독재의 뿌리를 위협할 것이다.
공은 중국으로 넘어갔다. 중국의 선택은 둘 중 하나다. 자유주의 국제 규범을 수용하고 핵심이익 쟁취를 늦추는 도광양회로 회귀하거나, 핵심이익을 계속 추구함으로써 바이든 행정부의 집단주의적 신인도태평양 전략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것이다. 하지만 전자의 선택은 중국 공산당에 정체성과 정당성의 위기를 가져올 수 있으며 후자는 열세인 중국에 국가 위기를 불러올 위험을 안고 있다는데 중국의 딜레마가 놓여있다.
대량파괴 무기를 보유한 미중이 패권전쟁이라는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양국과 양 체제의 경쟁은 점차 보다 많은 이슈 영역을 그리고 보다 많은 국가를 양자택일로 몰아갈 것이다. 이러한 전망은 미국에 안보를 의존하고 중국과 경제 교류를 확대해 온 대한민국이 미중 갈등의 십자포화를 맞아 중국에 의해 한국의 대중 경제가 볼모로 잡히거나 미국에 의해 한국 안보가 볼모로 잡힐 수 있는 중간지대를 빠르게 소멸시킬 것이다. 선택의 순간이 올 수밖에 없다면 자유주의 국제질서로 고도성장과 민주화의 양대 기적을 이룬 대한민국의 선택은 자명하다.
이러한 전망에 서면 미중이 한국과 북한에 자신들의 진영으로 들어오도록 압박할 것은 자명하지만 그렇다고 한반도가 반드시 미중 갈등의 현장이 될 이유는 없다. 미중 갈등의 주전장이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핵과 남북 분단이라는 ‘국제적’ 갈등으로 인하여 미중갈등이 한반도로 옮겨붙을 가능성을 선제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9·19 합의(2005)와 미북 싱가포르공동성명(2019)에서 보이듯 대북 “적대시 정책” 폐기와 북한 비핵화(CVID)를 교환하면 북핵 문제는 해결된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협상 실패가 보여주듯 이를 구체화하는 것은 매우 복잡 난해하며 이행을 담보하는 상호신뢰는 거의 없다.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정책 검토에 들어가고 문재인 정부 임기가 1년여 남은 사정을 고려하면 정부로서는 미국과 북한이 서로에게 성급한 해결책을 압박하기보다 새로운 위협을 제기하지 않으면서 협상 여건을 조성하도록 설득하는 것이 당면과제일 것이다. 미중갈등과 북핵이 제기하는 딜레마가 깊을수록 대한민국의 통찰과 지혜가 요구된다.
권만학 경희대 명예교수
[출처: 중앙일보] [중앙시평] 미국이냐 중국이냐, 기로에 선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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