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증시 대기자금만 130조… 한은 “작은 충격에도 시장 크게 흔들릴 것”

최만섭 2021. 1. 6. 05:36

증시 대기자금만 130조… 한은 “작은 충격에도 시장 크게 흔들릴 것”

[한은, 버블 경고]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 2008년 금융위기 당시 美보다 높아

최형석 기자

김은정 기자

입력 2021.01.06 03:14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5일 ‘자그마한 충격에도 시장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잠재된 리스크(위험)’라는 강한 표현까지 동원하면서 증시로 몰리는 자산 쏠림과 가계 부채 급증 현상에 경고장을 날렸다. 통화 정책의 수장이 연초부터 충격 요법에 가까운 발언을 할 정도로 우리 경제가 위태로운 상황에 다다랐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가계 부채가 턱밑까지 차올랐다. 1997년 외환 위기 당시에는 부실해진 기업의 부채 위기를 건전한 가계와 정부가 받쳐줬지만, 지금은 가계, 기업, 정부 등 경제 3주체가 모두 여유가 없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계·기업·정부의 부채 총합은 4900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작년 6월 말까지 12년간 145% 증가해 세계 평균 증가 속도(31%)에 비해 5배나 빨리 급증했다.

 

특히 가계 부채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진원지였던 미국의 당시 수준마저 넘어섰다. 한국은행 집계를 보면 작년 9월 말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신용은 101.1%였다. 이는 비우량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경제 위기를 맞았던 2008년 미국(97.4%)보다 높다. 장기 경기 침체인 ‘잃어버린 30년’이 시작된 1990년 말 일본의 GDP 대비 가계 부채는 70% 안팎이었다. 세계경제포럼(WEF) 등 국제기관들은 GDP 대비 가계 부채가 70~90%를 넘어서면 위험한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래픽=이철원

가계 부채는 원래도 한국 경제의 우환이었지만, 이번 정부 들어 더욱 빠르게 임계치를 넘어버렸다. 잇따른 부동산 정책 실패로 빚내 집 사려는 사람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여기에 개인들을 중심으로 빚을 더 내 주식시장에 달려드는 과열 양상까지 겹쳤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개인이 증권사에서 대출을 받아 주식에 투자하는 금액인 신용융자는 4일 기준 19조3523억원으로, 2019년 말(9조2133억원)에 비해 10조원 넘게 늘었다. 증시에 언제든 투입될 수 있는 투자자 예탁금은 68조2873억원,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잔고는 66조4402억원으로 증시 주변을 맴도는 자금이 130조원을 넘는다.

◇약한 고리 2. 좀비 기업들

빚으로 연명하는 좀비 기업들도 우리 경제의 약한 고리다. 한은에 따르면 작년 9월 말 기준 기업 부채는 2112조7000억원으로 GDP 대비 110.1%로 올라섰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지난달 우리나라 가계·기업 등 민간 부문 빚 위험도를 11년 만에 ‘주의’에서 ‘경보’로 격상했다. 중소기업 중에는 벌어서 이자도 못 갚는 곳이 절반이 넘는 52.8%에 달한다. 은행들은 정부의 코로나 대책 일환으로 작년 9월 말까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대출 원금 만기와 이자 상환을 연장·유예해줬고, 이 기한을 올 3월 말까지로 한 번 더 미뤄준 상태다. 조만간 만기가 돌아오면 빚 못 갚고 드러눕는 곳이 속출할 수 있다.

 

실제 한국은행이 성장률 급락과 거품 붕괴라는 강한 충격이 발생하면 우리 경제가 어느 정도 충격을 받을지 스트레스 테스트(건전성 평가)를 해봤다. 올해 성장률이 예상치(3.0%)보다 한참 낮은 0%에 그치는 등 2023년까지 성장률이 1%를 밑돌고 주가가 반 토막 나는 상황을 가정한 것이다. 그 결과, 자산가격 하락에 따른 시장 손실을 제외하고 기업이 빚을 갚지 못해 나타나는 신용 손실만 약 48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가계와 기업을 합친 전체 신용 손실 추정액은 67조원으로 계산됐다.

◇”썰물 빠지면 67조원 터진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썰물이 빠져나갈 때 누가 벌거벗고 헤엄쳤는지 알 수 있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코로나가 불러온 이례적인 초저금리 상황은 언제까지 계속될 수는 없다. 언젠가는 금리가 정상화되고 거품이 꺼지는 시기가 올 텐데, 이때 빚으로 잔치를 벌이던 이들은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가계 빚 거품이 터진 글로벌 금융 위기 때 미국에서는 증시가 2007~2009년간 반 토막(-54%) 났고, 경제성장률은 2009년 -2.5%로 뒷걸음쳤다. 미국 경제를 대표하던 투자은행 3곳이 파산했고, 중산층의 자산은 2007~2010년 3년간 40%가 날아갔다.

민좌홍 한은 금융안정국장은 “저금리나 대출 만기 연장이 앞으로 계속될 거라 보기 어렵다”면서 “상황이 변하면 가계의 빚 상환 능력이 빠르게 악화될 수 있기 때문에 미리 가계 부채 위험을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형석 기자

 

 

 

김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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