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품 싣고 지게차 봉사, 대구와 함께 40일
박주순 조은전동지게차 대표… 8개월후 1억 기부 ‘아너 소사이어티’
입력 2020.12.17 03:00
박주순 조은전동지게차 대표는 지난달 2일 대구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원을 기부했다. 대구 성서공단에 입주한 이 회사를 찾아가니 박 대표가 작업복에 작업화를 신고 지게차를 정비소에서 주차장으로 옮기고 있었다. 그는 지게차 2대를 가리키며 “이 두 대가 지난 3~4월 대구스타디움 봉사 당시 몰고 간 것과 같은 모델”이라며 웃었다.
◇40일의 지게차 봉사, 이후 1억원 기부
“자고 일어나면 확진자가 300명, 500명, 900명으로 늘어났어요. 신천지 교회라는 데가 대구 성서공단 이 사무실에서 4㎞밖에 안 떨어져 있어요. 환자가 쏟아지는 걸 보니 안타까움이 몰려오더군요. 내가 의사도 아닌데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했죠.”
지난달 대구 달서구 조은전동지게차 사업장에서 박주순 대표가 지게차를 끌고 있다. 박 대표는 코로나가 한창이던 지난 2~3월 대구에서 40일간 매일 지게차로 방역 물품을 옮기는 봉사 활동을 했다. 지난달 대구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원을 기부하면서 고액 기부자 모임인‘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했다. /김동환 기자
지난 3월 4일 회사에 출근한 그는 대구시청에 전화를 걸어 “지게차 판매업체 사장인데 도울 일이 없냐”고 물었다. 전국 각지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구호물품, 정부에서 보내는 마스크와 방호복 등 방역 물품이 대구스타디움으로 몰려 들어오는데 상하차 작업용 지게차가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다음 날 오전 회사에서 약 20㎞ 떨어져 있는 대구스타디움으로 출근했다. 직접 몰 2.5t 지게차와 시청에서 고용한 다른 인력이 몰 지게차 등 두 대를 트럭에 실어갔다.
업무 지시는 간단했다. 물품을 내리고, 지역·병원별로 분류된 물품을 다시 싣기. 대구 유행 한가운데서 그는 마스크 한 장을 달랑 썼다. 의료진이 쓸 방역 물품도 부족한 상황에서 방호복은 언감생심이었다. 혹시 코로나를 옮기거나, 코로나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따로 떨어져 혼자 먹었다. 그는 “오전 8시 30분에 출근해 오후 6시까지 상하차 작업을 하는데 점심시간 빼고는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바빴다”고 했다. 회사를 비우고 상하차 봉사를 한 게 40일이나 된다.
그는 인터뷰에서 “추석, 설 같은 명절에도 오전에 차례를 지내고 회사로 출근하는 일중독자”라며 “월화수목금금금이 일상”이라고 했다. 그런 그가 회사를 버리고 봉사에 나선 것은 지역사회에 뭔가를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전국에서 구호물품이 들어오는데, 대구에 20년 가까이 살았던 내가 대구를 위해 뭘 했나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봉사에 나서고 기부도 하게 됐다”고 했다.
연예인들이 대구시에 마스크를 기부했고, 정부에서도 마스크를 보냈지만 그는 시청에서 제공하는 마스크를 받지 않았다. 더 급한 사람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경기도 한 마스크 공장에서 근무하는 처제가 제조 과정에서 끈이 떨어져 불량이라 판매 못하는 B급 마스크를 보내줬다”며 “그런 마스크도 못 구할 사람들을 생각해 B급 마스크 끈을 실로 꿰매 썼다”고 했다.
지게차 한 대와 사람 한 명을 쓰는 데 드는 일당은 하루 50만~60만원 정도. 차 한 대 빌리는 값은 20만원 정도다. 그는 혼자서 3000만원 이상의 기부를 이미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이번에 선뜻 1억원을 더 기부했다. 박 대표는 “2~3월 전국에서 대구를 위해 구호의 손길을 뻗었는데, 대구에서 사업을 하는 제가 대구가 힘든데 외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코로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같은 마음으로 하나로 뭉쳐서 대구는 물론 전국적으로 함께 기부에 동참해야 시민도 기업도 편안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뭔가를 바라기보다 나눠야”
대구는 그에게 제2의 고향이다. 1964년 충북 단양 어상천면에서 태어나 1992년 성서공단에 있는 삼성중공업에 입사한 이래 대구에서 30년 가까이 살고 있다. 그는 “시골에서 나눔을 실천하던 부모님을 보고 자라났던 경험이 기부로 이어졌다”고 했다. 그는 6남 1녀 중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벼, 고추, 인삼, 콩 가리지 않고 작물을 심어 먹고살았다. 박 대표는 “넉넉한 형편도 아닌데도 어머니는 주변 사람들에게 퍼주시던 스타일”이라고 했다. 이웃을 먼저 위하는 시골 사람의 심성에서 나눔의 중요성을 알았다고 했다. “바라기 전에 나눠줘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하게 나눠주는 기고(것이고의 사투리), 도워주는 기고, 같이 사는 기고.”
◇”방역도 기부도 모두 함께해야”
대구는 1차 유행 이후 상대적으로 코로나 유행이 잠잠한 상황이다. 조은전동지게차는 한 달에 한 번은 있었던 회사 회식을 없앴다. 방역 지침에 따라 지난 추석 때 처음으로 ‘벌초 대행 서비스’를 이용했다. 박 대표는 “유일한 취미인 친구들과의 술자리도 코로나 이후로는 전혀 가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 사태 당시 권영진 대구시장은 야전침대에서 생활하며 방역 정책을 지휘했다. 대구가 코로나를 극복한 것은 무엇보다 대구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격리를 철저하게 하는 등 방역 지침을 잘 따랐기 때문이라는 게 박 대표의 생각이다. “나는 의사가 아니었지만 지게차 모는 재주로 코로나 유행을 저지하는 데 힘을 보탤 수 있었어요. 힘들 때 각자 맡은 분야에서 힘을 합치면 결국은 전국적인 코로나도 안정되겠지요.”
양지호 기자
사회부, 국제부, 문화부를 거쳤습니다. 현재는 사회정책부에서 COVID-19 관련 이슈를 주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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