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동훈의 세계 문명 기행] [66] ‘오하이오 갱’의 꼭두각시가 된 최악의 대통령… 초상화는 말이 없다
워싱턴 국립초상화박물관과 하딩 대통령
입력 2020.12.08 03:00
시인 월트 휘트먼의 극찬대로 그리스 고전주의 양식을 본뜬 국립 초상화박물관의 외관은 웅장하고 우아하다./게티이미지뱅크
박물관 내부의 중정은 독특한 천장으로 인해 시민들과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대영박물관 천장을 설계·시공한 세계적인 건축가 노먼 포스터 회사 작품인 탓에 대영박물관과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한다./위키피디아 APK
워싱턴의 국립초상화박물관은 숨겨진 보석 같은 곳이다.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을 닮은 외관부터가 웅장하고 아름답다. 특허청사로 썼던 이 건물은 백악관, 국회의사당(The Capitol)에 이은 워싱턴의 세 번째 공공 건물이다. 미국의 위대한 시인 월트 휘트먼(Walt Whitman·1819~1892)이 “워싱턴의 빌딩 중 가장 장려하다(noblest)”고 감탄할 만하다. 비록 오래된 건물이지만 전혀 낡아 보이지 않는다. 대대적으로 개축해 2006년에 다시 개관했기 때문이다.
건물 중 가장 멋진 곳은 중정이다. 그곳 천장은 빔과 유리로 된 덮개인데, 유려하게 흐르는 물결 같기도 하고 무한히 반복되는 마름모꼴 파도 같기도 하다. 빛에 따라 구름에 따라 바람에 따라 박물관 중정은 쉼 없이 변한다. 사람들 움직임에 따라 변하기도 한다. 추상적이고 아름답다. 소장품 중 하이라이트는 미국 대통령 초상화 컬렉션이다. 초대 대통령 워싱턴에서 44대 대통령 오바마에 이르기까지 모든 대통령이 초상(肖像)을 남겼다. 관람객 대부분은 제퍼슨, 링컨, 윌슨, 루스벨트처럼 위대한 대통령 초상 앞에 머문다. 반면 나는 한 무명(無名) 대통령 앞에 오래 서서 상념에 잠긴다. 그의 이름은 하딩. 무명이라기보다는 오명(汚名)으로 기억되는 대통령이다.
워싱턴 D.C. 국립 초상화박물관에 걸려 있는 29대 대통령 하딩의 초상화. 오하이오의 평범한 정치인이었으나 ‘대통령답게 생겼다’는 유일한 장점에 전임자 윌슨의 이상과 개혁에 지친 민심이 더해지면서 손쉽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근엄한 표정과 당당한 풍채 뒤에 숨겨진 온갖 단점은 그때나 지금이나 보이지 않는다./워싱턴 D.C.=송주영
잘생긴 정치가
워런 하딩(Warren Harding·1865~1923년)은 미국의 29대 대통령이다. 남북전쟁이 끝난 해인 1865년 11월에 오하이오주(州)의 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주도 콜럼버스(Columbus)시 북쪽의 매리언(Marion)에서 신문기자로 경력을 시작한 하딩은 30대 중반 지방 정계에 진출했다. 183㎝의 훤칠한 키, 당당한 풍채, 잘생긴 얼굴에 언제나 잘 차려입는 하딩은 누구에게나 리더처럼 보였다. 그는 순식간에 오하이오 정계의 유망주로 떠올랐다. 오하이오 공화당의 부패한 모리배 해리 도허티(Harry Dougherty)는 하딩의 가능성을 주목했다. 도허티는 특히 하딩이 자신만의 정견(政見)과 윤리적 기준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을 좋게 보았다. 자신의 꼭두각시로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다. 도허티는 열심히 ‘하딩 띄우기’에 나섰고 그를 오하이오주 연방 상원의원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1914년). 상원의원 하딩은 평범했다. 비록 업적은 없었지만, 인물만큼은 워싱턴 D.C.에서도 돋보였다.
1920년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자 도허티는 하딩을 공화당 후보로 출마시켰다. 전국적 지명도도, 정치적 업적도 없는 하딩에게는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도허티는 하딩이 ‘대통령처럼 생겼다’며 공화당 지도부를 설득했다. 선거에서 유권자들에게 어필하는 데 외모만큼 중요한 게 있겠냐는 도허티의 주장은 받아들여졌다. 하딩의 평범함도 장점이 됐다. 공화당 지도부는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재임 1901~1909년)나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재임 1913~1921년) 같은 뛰어난 대통령에게 질려 있었다. 위대한 대통령 밑에서 당과 의회는 거수기에 불과했다. 이제 하딩 같은 인물을 내세워 당과 의회가 정치의 주도권을 찾아올 때가 된 것이다.
하딩의 첫 내각 멤버들. 미국 역사상 최악으로 평가받는 하딩의 첫 내각 구성원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하딩 대통령, 맬론 재무장관, 도허티 법무장관, 덴비 해군장관, 월레스 농무장관, 데이비스 노동장관, 쿨리지 부통령, 후버 상무장관, 폴 내무장관, 헤이스 우정청장, 위크스 전쟁장관, 휴즈 국무장관./미국의회도서관
부패한 정권
민심도 마찬가지였다. 윌슨의 이상은 고매했고 개혁은 필요했지만 그에 따른 피로감도 만만치 않았다. 윌슨의 가르치려는 태도와 완고한 자기 확신, 말년에 보여준 불통 모습은 위대한 인물과 민주당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졌다. 사람들은 평범하고 조용했던 과거로 되돌아가길 원했다. 하딩의 선거 캠프는 민심 흐름을 제대로 읽었다. ‘Return to normalcy(정상으로 복귀)’라는 단순한 선거 구호만 달랑 내세웠을 뿐인데도 민심이 쏠렸다. 하딩은 일반 투표에서 1600만표 이상을 얻어 당선됐다. 민주당 후보와는 격차가 700만표 이상이었다. 모두 1920년까지 치러진 대선 기준으로 최다 득표, 최대 격차였다. 선거인단 투표에서도 400표 이상으로 민주당 후보를 압도했다.
하딩의 행복한 백악관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내각은 위대한 인물들과 위태로운 인물들이 묘한 조화를 이뤘다. 국무장관 휴스(Charles Hughes), 재무장관 멜런론(Andrew Mellon), 상무장관 후버(Herbert Hoover)가 전자에 속했다. 법무장관 도허티, 내무장관 폴(Albert Fall), 해군장관 덴비(Edwin Denby), 연방준비은행 이사회 의장 크리싱어(Daniel Crissinger), 보훈처장 포브스(Charles Forbes), 조폐국장 스코비(Frank Scobey) 등은 후자였다. 진짜 권력은 도허티를 필두로 한 후자에게 있었다. 일명 ‘오하이오 갱(Ohio Gang)’이라 한 대통령 측근들은 조직적으로 국가를 도적질하기 시작했다. ‘작은 초록색 집’이라고 부른 도허티의 워싱턴 집이 본부였다. 그곳에선 정부 재산과 정부 하도급 사업은 물론이고 공직, 사면, 가석방 등 인사와 사법(司法) 정의도 매매됐다. 부정부패가 일상이 됐고, 뇌물이 넘쳐났다. 국가와 국민이 본 피해는 고스란히 대통령 측근들에게 이익이 됐다. 허수아비 대통령은 아무것도 몰랐다.
대통령의 몰락
사법 정의를 지켜야 할 법무장관이 주범이었으니 다른 측근들의 부정부패와 비리는 당연히 은폐됐다. 오하이오 갱은 도허티를 법무장관에 앉힐 때부터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영원히 숨기기에는 부패 규모가 너무 방대했고, 관련자가 너무 많았다. 1923년 봄, 보훈처장 포브스와 관련된 부패 사건 내막이 하딩의 귀에 들어갔다.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지만 대통령은 충격에 빠졌다. 두려움과 분노에 사로잡힌 하딩은 도허티의 측근 제스 스미스(Jess Smith)를 질책했다. 그 직후 스미스는 사망했다. 언론에 발표된 사인은 권총 자살이었다. 스미스가 갖고 있던 자료는 불태워졌다.
하딩의 심신은 급속도로 약해졌다. 휴식하고자 대통령은 그해 6월 알래스카로 여행을 떠났다. 돌아오는 길에 건강이 갑자기 나빠졌다. 8월 2일 저녁, 대통령은 샌프란시스코의 호텔에서 사망했다. 정확한 사인은 영부인이 부검을 거부했기 때문에 밝혀지지 않았다. 하딩의 예상치 못했던 죽음은 전국적인 애도 분위기를 불러일으켰다. 거기까지였다. 사후(死後)에 각종 부패 스캔들이 밝혀지면서 하딩은 추락하기 시작했다. 1927년 7월 하딩의 숨겨진 애인인 서른한 살 연하의 낸 브리턴(Nan Britton)이 ‘대통령의 딸’이란 책을 출간하면서 전직 대통령 하딩의 평판은 바닥을 쳤다(낸 브리턴의 딸은 2015년 DNA 검사로 하딩의 친자임이 밝혀졌다).
”유일한 죄는 완전히 바보였다는 점”
하딩의 초상화가 국립초상화박물관에 버젓이 위대한 대통령들과 함께 걸려 있다. 그의 본질이 그림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초상화 속 하딩은 멋지고 당당할 뿐이다. ‘대통령처럼 보인다’는 말에 수긍이 간다. 문득 궁금해진다. 그는 행복했을까? 그럴 수도 있겠다. 자신의 평판이 산산조각 나고, 친구들이 줄줄이 감옥으로 가는 것을 보지 않고 죽었으니까. 그러나 역사의 평가는 비정하다. 대통령을 평가하는 각종 조사에서 하딩은 확고부동하게 꼴등이다. 세계적 작가 빌 브라이슨은 “하딩의 유일한 죄는 완전히 바보였다는 점”이라고까지 혹평했다. 대통령에게 ‘완전히 바보였다’는 용서받을 수 있는 죄일까? 판단은 각자 몫이겠지만 내 생각은 명확하다. 용서받을 수 없다. /워싱턴 D.C.=송동훈
국립초상화 박물관 내 서점에 진열된 백남준 전시회 기념 책자의 커버. 그의 영어 이름과 함께 세계적인 선구자란 표현이 선명하다./워싱턴 D.C.=송동훈
[‘세계적인 선구자, 백남준’ 2012년 특별전… 책 판매]
옛 특허청 건물은 규모 면에서 워싱턴D.C.에서 손꼽힌다. 국립초상화박물관과 미국예술박물관(American Art Museum)이 함께 들어가 있는 이유다. 그런 만큼 각종 책과 기념품을 파는 박물관 서점의 규모와 수준도 정상급이다. 그곳에서 한국인을 다룬 책을 발견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NAM JUNE PAIK, GLOBAL VISIONARY(세계적인 선구자, 백남준)’ 2012년 12월부터 2013년 8월까지 이곳에서 열린 백남준 특별전을 기념한 책이었다. 가슴이 뛰었다. 한국인으로서 세계적으로 이 정도 평가를 받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벅찬 일이다. 이를 계기로 이 박물관에 대한 애정이 더욱 커졌다.
송동훈 문명 탐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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