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이대로면 한국 영화는 넷플릭스의 하청업체로 전락”

최만섭 2020. 12. 4. 05:27

“이대로면 한국 영화는 넷플릭스의 하청업체로 전락”

‘영화산업 긴급진단 토론회' 취재기

김성현 기자

입력 2020.12.03 07:00

 

 

 

 

 

올해 코로나 바이러스 여파로 힘들지 않은 곳이 없지만, 영화계 역시 극심한 타격을 받은 분야 가운데 하나입니다. 지난 10월 열린 영화산업 긴급 진단 토론회에서도 영화계 현장의 절박한 고민들을 접할 수 있었지요. 시간은 조금 흘렀지만 한국 영화계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지면에는 소화하지 못했던 김성현 기자의 현장 취재기를 이번 주 조선일보 뉴스레터 ‘시네마 천국과 지옥’을 통해서 들려드립니다.

영화수입배급사협회 제공 지난 10월 서울 동작구 아트나인에서 열린 '한국영화산업 긴급 진단 공동 토론회'.

“왜 극장이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영화관 누적 적자 5000억원이 내년으로 넘어가면 누가 인수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한국 영화계는 위기가 아니라 붕괴 직전이다.”

지난 10월 28일 서울 동작구 예술영화 전용관 아트나인에서 열린 ‘한국영화산업 긴급 진단 공동 토론회’. 2부 패널로 나선 장원석 BA엔터테인먼트 대표의 어조는 절박했다. 장 대표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침입자’ ‘사라진 시간’ 등을 제작한 영화인이다. 최근에는 제작비 190억원을 들여서 1947년 보스턴 마라톤을 제패한 서윤복 선수의 실화에 바탕한 ‘보스턴 1947’을 촬영했다. 하지만 그는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이나 치료제가 나오기 전까지는 ‘보스턴 1947’을 극장 개봉을 할 생각이 없다”고 잘라서 말했다. 장 대표는 “지난 20여 년간 스크린 쿼터 논란과 불법 다운로드 등 한국 영화의 큰 위기가 두 차례 있었지만 지금은 위기가 아니라 붕괴로 가는 게 아닌가 싶다”면서 “만약 영화관들이 문을 닫으면 넷플릭스가 절반이라도 한국 영화를 소화할 것 같은가”라고 반문했다.

한국영화산업 긴급 진단 공동 토론회

이날 토론회는 해외 독립·예술 영화를 수입하는 영화수입배급사협회와 한국 영화 제작을 담당하는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의 공동 주최로 열렸다. 주제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듯, 영화인 100여 명이 참석해 빈 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토론회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 여파로 붕괴 위기에 내몰린 한국 영화인들의 절박한 고민들이 드러났다. 발제자로 나선 김현수 영화진흥위원회 정책사업본부장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파로 지난해 관객(2억2667만명)과 매출액(1조9139억원)에 비해서 올해 예상 관객(6551만명)과 매출액(5547억원)은 72%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김 본부장은 “투자자의 신규 투자 제작 위축으로 내년 제작사의 차기작 개발이 힘들어진 것이 더욱 큰 문제”라고 말했다.

 

현재의 흥행 부진이 미래의 ‘수요 공급 불균형’으로 직결된다는 점이야말로 영화계의 더 큰 걱정거리다. 한국 영화를 살리는 ‘돈줄 역할’을 하던 극장이 극심한 침체에 빠지면서 개봉하지 못한 채 대기 중인 작품도 줄줄이 쌓이고 있다. 현재 개봉을 앞두고 있거나 촬영에 들어간 작품을 모두 합치면 최소 40편, 최대 70편에 이른다. 이 때문에 내년 영화 투자 제작 환경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이정세 메가박스 영화사업본부장은 “앞으로 1~2년간 한국 영화의 개봉 일정이 사실상 멈춰 있는 상황”이라며 “지금부터 신작을 준비해도 개봉을 장담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 영화 산업 매출(2조5093억원)에서 극장 매출(1조9140억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76.3%에 이른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극장과 배급사의 티켓 판매 분배율 재조정, 신작 개봉 시기 조율을 위한 협의체 구성, 영화 신작 제작에 대한 정부 지원 확대 등 다양한 대안이 쏟아졌다. 하지만 극장 관객과 매출이 급감하면 결국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 영상 서비스 회사가 한국 영화들을 싹슬이하는 독식(獨食) 구조가 고착화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나왔다. 영화계에서는 송중기·김태리 주연의 SF 영화 ‘승리호’에 이어서 박훈정 감독의 신작 ‘낙원의 밤’도 넷플릭스 계약이 임박했다는 소문이 나온다. 실제로 올 상반기에 총제작비 110억원 규모의 ‘사냥의 시간’이 극장 개봉이 연기되자 넷플릭스 상영으로 직행한 사례가 있다. 1부 발제자였던 최광래 JNC 미디어그룹 대표는 “이대로 가면 한국 영화 제작사들은 넷플릭스의 하청업체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김성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