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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중동천일야화] ‘톨레랑스’의 나라를 테러와의 전쟁 수렁에 빠뜨린 네 가지 요인

최만섭 2020. 11. 16. 05:47

[新중동천일야화] ‘톨레랑스’의 나라를 테러와의 전쟁 수렁에 빠뜨린 네 가지 요인

① 중동國 설립 때 입맛대로 전횡 ②무슬림 인구 600만 서구 최다
③정교분리 법으로 못박은 세속주의 ④언론, 자유로운 종교 풍자
관용이란 전통과 세속주의 원칙 사이 절충점 찾으려 진통 겪어

인남식 교수

입력 2020.11.16 03:00

 

 

테러가 프랑스를 다시 덮쳤다. 중학교 역사 교사의 참수 피살에 이어 니스 노트르담 성당에서 일어난 살상은 공포스러웠다. 며칠 전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일어난 폭탄 테러도 프랑스 외교관을 겨냥했다는 후문이다.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를 희화화한 만평을 실었다는 이유로 테러당한 5년 전 샤를리 에브도 잡지사의 악몽이 되살아난 셈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즉각 이번 사건을 이슬람 테러로 규정하며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대통령의 발언은 파장을 일으켰다. 이슬람권 지도자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일부 극단주의자의 사례를 들어 전체 이슬람을 모독했다는 것이다. 프랑스가 이슬람권의 공적(公敵)이 되고 있다. 심지어 주한 프랑스 대사관에까지 협박 전단이 붙었다는 소식이다.

 

2012년 이후 260명 피살, 체포용의자 1640명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2년부터 지금까지 프랑스 국민 260명 이상이 이슬람 관련 테러로 피살되었다. 특히 IS(이슬람국가) 출현 이후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많은 42차례의 테러 공격을 받았다. 체포된 용의자만 1640명이다. 강력한 반테러법으로 대응했지만 이번 사건을 막지 못했다. 앞으로가 큰일이다. IS에 가담했던 유럽 출신 해외 테러리스트(Foreign Terrorist Fighters·FTF) 4000여 명 중 1900명이 프랑스 출신이다. 이들이 돌아오고 있다. 도처에 테러리스트들이 활보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사건에서 보듯 프랑스에 힘들게 들어온 난민 일부도 서슴지 않고 테러에 가담했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왜 프랑스가 유독 테러의 온상이 되었을까? 이슬람과 프랑스는 무슨 악연이 있는 것일까?

 

테러의 온상으로 만든 4가지 요인

먼저, 중동 현대 국가의 탄생과 맞물린 역사적 요인이다. 중동의 대중은 100년 전 영국과 프랑스가 입맛에 맞게 중동의 여러 나라를 만들어낸 전횡을 기억한다. 이른바 ‘사이크스·피코 협정’의 잔상이다. 오늘 만연한 갈등의 씨앗이라 믿는다. 테러리즘의 본격적인 프랑스 상륙은 옛 식민지 알제리와 관련되어 있다. 1990년대 내전을 겪으면서 지하화한 알제리 현지의 무장이슬람그룹(GIA)이 프랑스로 들어오면서 점차 불안해졌다.

둘째, 구조적 요인으로 프랑스 내 무슬림 인구의 증가와 이들의 박탈감 문제다. 프랑스는 서방국가 중 무슬림 인구가 제일 많다. 600만 내외로 전체 인구의 9%다. 주로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등 북아프리카 출신이 대부분이다. 1960년대 프랑스 산업화에 기여한 이주 노동자와 그 후예다. 열심히 일했고 선량하게 살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이들의 2세, 3세들은 프랑스 주류 사회로 진입하지 못했다. 박탈감이 커졌다. 9·11 이후 세계로 확산한 반이슬람 정서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초래한 경제난으로 이들의 소외감과 불만은 더 깊어졌다. 여기에 아랍의 봄 이후 난민이 대거 유입하면서 프랑스 극우파 국민전선 등이 내놓은 반이슬람 구호도 갈등을 격화시켰다.

 

 

셋째, 이념 요인이다. 이른바 라이시테(laïcité)라 불리는 프랑스 세속주의 원칙이다. 1905년 프랑스는 정교 분리를 아예 법으로 못 박았다. 드레퓌스 사건에서 나타난 기독교의 반유대교 정서의 폐해 그리고 보수 우파 가톨릭과 진보 정치 세력의 대립으로 인한 물리적 충돌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여하한 형태의 종교적 상징물을 공공장소에서 배척한다. 기독교든 이슬람이든 예외가 없다. 그러나 이 원칙은 히잡과 부르카 등 엄격한 복식 규범을 지켜온 무슬림들에게 더 가혹했다. 2016년 8월 니스 해변에서 무장한 프랑스 경찰이 무슬림 여성의 전신 수영복 부르키니(부르카와 비키니의 합성어)를 강제로 벗게 한 사건은 그 절정이었다. 무슬림들의 반발은 격심했다. 프랑스가 이슬람 탄압의 상징인 것처럼 비쳤다. 김선일 참수의 주범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는 성공회를 국교로 하는 영국보다 오히려 세속주의의 프랑스를 ‘만악의 모체’라며 비난했다.

 

넷째, 최근 테러의 촉발 요인은 프랑스 언론의 자유로운 종교 풍자 전통이었다. 프랑스 언론의 종교 비판이나 풍자 수위는 매우 높다. 세속주의 전통 때문이다. 특히 가톨릭 교회와 성직자들에 대한 조롱과 비난은 유명하다. 이슬람 비하로 공격받은 샤를리 에브도 만평 역시 비슷한 맥락이었다. 프랑스의 여느 종교 풍자와 비교해도 수위나 내용 면에서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무슬림에게는 치욕이었다. 극단적인 일부는 잔인한 테러로 맞섰다. 문명 충돌의 현장이었다.

최근 프랑스의 적극적 외교 행보가 눈길을 끈다. 마크롱 대통령은 레바논을 두 차례 방문하며 마치 프랑스가 큰형인 것처럼 행세했다. 고깝게 보는 이들이 있다. 리비아와 동지중해서는 터키와 각을 세우며 군사 작전에 열을 올린다. 명암이 갈린다. 공세적인 프랑스의 행보는 100년 전 영국과 함께 마음대로 중동의 판을 짰던 모습의 데자뷔로 비치기도 한다.

 

원칙의 유연성 놓고 치열하게 논쟁 중

빈발하는 테러에 마주한 프랑스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고한 생명을 위협하는 폭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 가차 없이 응징해야 한다. 외과 수술 같은 결연하고 정밀한 대응과 함께 악순환의 구조와 체질을 바꾸는 내과 처방도 필요하다. 역사를 되돌릴 재간이 없고, 무슬림 인구를 인위적으로 줄일 도리도 없다. 결국 고민해야 할 지점은 원칙의 유연성 여부다. 치열하게 논쟁 중이다. 한편에서는 무슬림 이민 공동체의 심리와 감성을 읽어내고 그들의 종교를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성찰이 있다. 프랑스 관용의 전통, 즉 톨레랑스라는 주장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금기 없는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테러의 협박도 기꺼이 감수하자고 한다. 프랑스의 세속주의 원칙은 곧 프랑스 자체라는 신념이다. 폭력에 굴복하여 원칙을 저버리면 안 된다는 주장이다. 선택은 결국 프랑스인들의 몫이다.

 

인남식 교수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