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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받은 7300만표 놓고… 美공화 ‘왕좌의 게임’

최만섭 2020. 11. 16. 05:26

국제

트럼프가 받은 7300만표 놓고… 美공화 ‘왕좌의 게임’

“트럼프 가도, 트럼피즘은 남는다”

워싱턴= 조의준 특파원

입력 2020.11.16 04:11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각) 펜실베이니아주 뉴타운에서 유세 연설을 마친 뒤 지지자들을 향해 주먹을 들어 보이고 있다. /AP 연합뉴스

 

“트럼프는 졌지만 트럼피즘(Trumpism·트럼프주의)은 지지 않았다.”

AP통신은 최근 올해 미국 대선을 분석한 기사에서 이같이 밝혔다. 트럼프는 졌지만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와 반(反)이민, 경제·외교적 고립주의 등을 기반으로 한 트럼피즘은 남아있다는 것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대 교수도 최근 미 CNBC방송에서 “트럼피즘은 지속된다. 그건 (국민 마음속) 뿌리 깊은 분노를 건드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AP통신에 따르면 14일(현지 시각) 현재 트럼프는 총 7300만표를 득표했다. 4년 전 대선에서 받은 표(6300만)보다 약 1000만표 많다. 역대 공화당 대선 후보 중 최다 득표일 뿐 아니라, 역대 최다 득표였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2008년 대선 6950만표)의 기록보다 많다. 바이든 당선인(7860만표)에게 졌지만, 트럼프에 대한 지지는 과거 어느 공화당 후보보다 탄탄했던 것이다. 여론조사기관들은 선거 당일(3일)까지 바이든이 전국 지지율에서 평균 7.2%포인트 차로 이길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론 2.7%포인트 차에 그쳤다.

백악관 앞 수만명 선거불복 시위… 트럼프는 ‘엄지 척’ -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지지자들이 14일(현지 시각) 워싱턴 DC 백악관 인근 ‘프리덤 플라자’에서 대선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트럼프·펜스 2020’ 등의 깃발을 흔들면서 “(선거) 도난을 멈춰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날 차량을 타고 집회 현장에 들른 트럼프는 지지자들을 향해 양손 엄지를 들어 보였다. 미국 언론은 이날 시위에 수천~수만 명이 참가한 것으로 추산했다. /AP 연합뉴스

 

이는 트럼프가 그동안 경제 발전 과정에서 소외됐던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분노, 중산층의 위기와 이번 선거에서 쟁점으로 부상한 ‘중국 위협론’을 잘 담아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이를 통해 저소득 백인과 노동자 계층의 지지를 유지했고, 히스패닉 유권자 표심까지 파고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워싱턴포스트가 출구조사를 분석한 결과 트럼프는 공화당원의 94%를 결집시켜 2016년(88%)보다 오히려 6%포인트 높아졌다. 여기에 올해 대선에선 트럼프의 아시아계 득표율(34%)은 4년 전보다 7%포인트, 히스패닉(32%)은 4%포인트, 흑인(12%)도 4%포인트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유색인종 지지율은 전체적으론 낮은 편이지만, 4년 전보다 저변을 확장한 것이다. 올해 인종 차별 반대 시위가 미 전역에서 벌어졌지만, 흑인들 사이에서도 트럼프 인기가 올라갔다.

이런 상황 탓에 미 언론들은 트럼프의 2024년 대선 재도전을 당연시하는 분위기다. 인터넷 매체 액시오스는 “트럼프가 측근들에게 차기 대선 재출마 의사를 언급했다”고 보도했다. CNN도 최근 “트럼프가 2024년 공화당 대선 후보 레이스에서 명확한 선두 주자”라고 했다. 미국 헌법은 한 사람이 대통령을 두 번 초과해 할 수 없다고만 규정하고 있어, 연임을 못했을 경우 ‘징검다리 재임’도 가능하다.

                                                       트럼프 미 대통령의 득표율 변화

 

이 때문에 공화당 차기 대선 주자급 인사들은 트럼프의 눈치를 보고 있다. 누가 트럼프의 지지층을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만드느냐는 이른바 ‘왕좌의 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주인공은 또 트럼프가 될 수도 있고, 공화당의 다른 주자나 트럼프 가족이 될 수도 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대선 불복을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최근 “(대선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고 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또 다른 차기 주자로 꼽히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한발 더 나아갔다. 최근 정권 이양 준비와 관련해 “2기 트럼프 행정부로의 순조로운 전환이 있을 것”이라며 바이든의 당선 자체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차기 주자군인 공화당 중진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도 최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여전히 (이번 대선에서) 이길 길이 있다”고 했다. 모두 트럼프 지지층을 의식해 트럼프와 거리를 두기보다 동조하는 듯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공화당이 트럼프의 대선 불복에 찬성도 반대도 아닌 “모든 표는 세어봐야 한다”는 어정쩡한 입장을 보이는 것도 트럼프의 정치적 영향력을 감안한 것이다.

 

CNN은 펜스와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 등 친(親)트럼프 성향 차기 주자군은 트럼프가 재선 출마를 공식화할 경우 아예 경선에 뛰어들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트럼프에게 맞서기보다 그의 지지자들을 확보해 차차기를 노리는 것이 정치적으로 이득이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보수 성향 뉴욕포스트는 전문가를 인용해 ‘트럼프 없는 트럼피즘’을 차기 대선의 승리 공식으로 들기도 했다. 트럼프에 대해선 중도층의 비호감이 큰 만큼, 트럼피즘을 계승하는 새로운 인물을 내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화려한 외모로 대중적 호감을 얻을 수 있는 트럼프의 장녀 이방카와 트럼프의 비선(秘線) 책사로 꼽히며 트럼프보다 쇼맨십이 더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 폭스뉴스 진행자 터커 칼슨 등이 차기 주자로 거론되기도 했다.

 

워싱턴= 조의준 특파원 편집국 주워싱턴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