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두 아이 아빠의 비극을 함부로 취급하지 말라
[중앙일보] 입력 2020.09.30 00:23 | 종합 29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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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광 전 국가정보대학원 교수·범죄학
대한민국군이 지켜보는 가운데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 모씨(47)가 북한군에 의해 총살당했다. 시신은 참혹하게 불태워졌다. 그런데도 국방부와 해경은 월북으로 몰아가기 바쁘다.
군·경, 섣부른 “자진 월북” 판단
우발 사건 가능성 철저히 조사해야
어떤 정치인은 북한의 엽기적 만행을 두고도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를 말한다. 어떤 작가는 사과문 한장 달랑 보내온 김정은을 계몽 군주라 칭송한다. 아! 내가 저 공무원이었다면?
대북 업무를 오래 해본 경험으로 볼 때 사전 계획된 월북이라면 많은 흔적을 남긴다. 목숨 건 인생 최고의 중대사에 신변 정리는 기본이다. 재산부터 정리한다. 가족사진도 챙긴다. 지인들에겐 이런저런 메시지도 남긴다.
그러나 우발적 월북은 흔적을 찾기 어렵다. 중국 여행 중 만취한 소설가가 취흥에 두만강을 건넌 적이 있다. 보름 만에 송환됐는데 대공 수사관도, 본인도 왜 갔는지 납득을 못 했다. 술김에 넘었고 술 깨니 북한이더라고 했다.
우발적 월북은 대부분 술이 화근이다. 이도 저도 아니면 정신질환이나 납치, 또는 사건·사고에 의한 월북이다. 10여발의 총을 맞고 처참하게 살해된 우리 공무원 이씨의 선실에는 수첩·지갑·신분증·공무원증·옷가지와 지인 사진 등이 어지러이 널려있다. 소지품에도 통화 기록에도 월북을 의심할 만한 특이 사항은 없었다.
신변 정리 흔적은 그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이씨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지난 21일 새벽 1시 35분 당시, 이씨가 술을 마셨다는 얘기도 전혀 들리지 않는다. 정신 질환이나 납치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그렇다면 단순 추론으로도 사고일 개연성이 가장 높은데, 우리 군과 정부는 계속 월북이라고 몰아가고 있다. 투명하고 철저하게 밝혀야 한다.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있었다”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놓고 갔다” “부유물을 타고 있었다” 등은 정확한 실종시간 파악이 안 된 지금 시점에선 보기 나름이다. 실종이 인지된 21일 오전 11시 30분까지 실종 시점에 따라 조류의 방향이 다르므로 월북의 근거로도, 사고의 근거로도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군은 감청 자료에 근거해 ‘자진 월북’이라고 판단한 것 같은데, 단정 짓기는 이르다. 북한군에 발견됐을 당시 이씨가 느꼈을 극도의 공포심을 고려하면 섣부른 결론은 위험하다.
수영해 월북하려 했다면, 북한과 가장 근접한 지점을 놔두고 왜 하필 배가 남쪽에 있을 때 뛰어내렸는지도 의문이다. 군의 성급한 정보 판단과 대통령의 ‘종전 선언’ 연설을 고려한 듯한 정무적 대응이 공분과 불신을 자초했다.
정부의 사과 요구 하루 만에 북한 최고 통치자가 사과한 것을 두고 통일부 장관은 대단히 이례적이라고 평가했지만, 대남통지문 자체가 의혹투성이다. 최소 북한 해군사령부까지 보고됐다고 한 우리 군 발표와는 달리 북한은 정장(艇長)의 결심으로 총격을 가했다고 했다.
특히 불에 태운 것도 시신이 아니라 부유물이었으며, 의거 입북이 아닌 불법 침입이라고 주장했다. 북측이 80m 거리에서 신분을 확인했다고 주장했지만, 파도 소리와 선박 소음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하다. 부유물에 의지해 겨우 떠 있는 사람이 고속정 앞에서 도주하려 했다는 것도 가당찮은 해명이다.
두 아이의 아빠인 공무원 이씨가 북측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 군이 포착한 지 6시간 만에, 대통령에 보고된 지 3시간 만에 끔찍하게 살해됐다. “북남 관계에 재미없는 작용을 일으킨 불법 침입자”이자 “자진 월북자”로 낙인 찍힌 채 해상에서 소각됐다.
그리고 4시간 뒤 대통령의 종전 선언 녹화 연설이 유엔에서 시작됐고, 다음 날 대통령은 태연히 아카펠라 공연을 관람했다. 군과 해경은 이미 잿더미가 됐을 시신을 열심히 수색하고 있다. 이런 코미디가 없다.
장석광 전 국가정보대학원 교수·범죄학
[출처: 중앙일보] [시론] 두 아이 아빠의 비극을 함부로 취급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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