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주호영 폭로 ‘비밀합의서’는 진짜다!

최만섭 2020. 9. 7. 08:34

주호영 폭로 ‘비밀합의서’는 진짜다!

글 : 조갑제  조갑제닷컴·조갑제TV 대표

고위 공직자 출신이 기억해낸 자 출신이 기억해낸 내용과 일치했다
⊙ 두 배석자 김보현·서훈의 침묵이 수상하다
⊙ 김정은에게 약점 잡혔다. 김이 공개하면 끝장이고 안 하면 협박 수단

지난 7월 27일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 청문회에서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경제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폭로해 박지원 후보자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사진=조선DB

  지난 7월27일 박지원(朴智元) 국정원장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기습을 당했다. 박지원 후보자는 주호영(朱豪英)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를 향하여 “우려를 가지고 ‘내통한다’ 이런 식으로 몰아붙여서는 안 되죠”라면서 역공을 펴다가 의외의 문서가 등장하면서 수세(守勢)로 몰린다.
 
  〈주호영: 이제부터 제가 증거를 댈 테니까 한번 보세요. 제가 증거 없이 이야기하는 거 아닙니다. 후보자는 6·15 평양회담 특사로서 역할을 했을 뿐이고 5억 불이 간 건 전혀 모른다는 거 아닙니까? 그렇죠?
 
  박지원: 그렇습니다.
 
  주: 그렇죠? 5억 불을 보내겠다고 약속하는 데 관여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박: 저는 안 했습니다.
 
  주: 안 했습니까? (남북합의서 한번 띄워보세요. 하나만 띄워 봐. 불 좀 꺼주고.)
 
  ‘남북합의서’라는 문건이 있습니다.
 
  〈남과 북은 역사적인 7·4 남북공동성명의…〉 죽 내려가고 〈‘상부의 뜻을 받들어 남측 문화관광부 장관 박지원’ ‘상부의 뜻을 받들어 북측 조선아시아태평양위원회 부위원장 송호경’ 2000년 4월 8일〉
 
  이런 문건 본 적 있습니까?
 
  박: 제가 서명했습니다. 그게 바로 그 유명한 4·8 합의서입니다.
 
  주: 맞죠?
 
  박: 거기에 어디가 5억 불 들어가 있습니까?
 
  주: 경제협력에 관한….
 
  박: 그걸 공개를 하시려면 똑똑히 하세요.
 
  주: 자, 보십시오.
 
  박: 5억 불 문제 제기를 해놓고, 거기에 있는 것처럼 국민을 속이면 안 되죠.
 
  주: ‘경제협력에 관한 합의서’ 한번 보십시오. 이런 문건 본 적 있습니까?
 
  박: 그건 제가 서명했습니까?
 
  (다른 의원: 서명 있잖아요!)
 
  주: 〈남과 북은 민족의 화해와 협력, 민족공동의 번영 및 인도주의 문제해결에 이바지할 의지를 담아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첫째, 남측은 민족적 협력과 상부상조의 정신에 입각하여 북측에 2000년 6월부터 3년 동안 25억 딸라 규모의 투자 및 경제협력 차관을 사회 간접 부문에 제공한다. 둘째, 남측은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인도주의 정신에 입각하여 5억 딸라분을 제공한다. 셋째, 이와 관련한 실무적 문제들은 차후 협의하기로 하였다.〉
 
  ‘상부의 뜻를 받들어’는 남북합의서와 똑같고 사인도 똑같습니다. 이런 문건 사인하신 적 있습니까?
 
  박: 그러한 것은… 없는데요?
 
  주: 아주 중요합니다.
 
  박: 네… 그러한 것은 제가 한 거 없습니다.
 
  주: 없습니까?
 
  박: 예에.
 
  주: 이게 만약에 사실이라면 지금까지 후보자가 하셨던 말은 다 틀린 말입니다.
 
  박: 사실이 아닙니다.
 
  주: 사실이 아닙니까?
 
  박: 예에.
 
  주: 그래서 이후 시간에는 제가 이 5억 달러분이 어떻게 갔는지는 지금까지 다 나와 있어요. 25억 달러가 갔는지 안 갔는지도 따져 물어볼 텐데, 다시 한 번 묻습니다. (마이크 꺼짐)
 
  박: 그런 적은 없습니다. 예.
 
  주: 이거(경제협력에 관한 합의서) 가져가서 본인 사인이 맞는지 이거(남북합의서)하고 대조해서….
 
  박: (합의서 검토 후) 저는 기억이 없습니다.
 
  주: 이런 중요한 일이 기억이 없을 수가 있습니까?
 
  박: 저는… 저러한 건 없습니다. 우리가 경제협력 부분에 대해서는 강조를 했습니다.
 
  주: 지금 선서하셨고, 경제협력에 관한 합의서는 (남북합의서의) 사인하고 문건, 양식 똑같습니다, 양쪽이. 대북(對北)특사로 가셨다는데 이런 중요한 문건에 사인한지 안 한지 기억이 안 난다는 게 말이 됩니까?
 
  박: 저는 그렇게 사인한 적 없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주: 틀림없습니까?
 
  박: 예~.
 
  주: 이 문건이 위조입니까?
 
  박: 제가 말할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주: 기억이 안 납니까, 사인하신 적이 없습니까?
 
  박: 없습니다.
 
  주: 없습니까? 이 문건의 존재가 만약에 입증이 된다면 지금까지 후보자가 하셨던 말은 사실과 다른….
 
  박: 글쎄 어떠한 경로로 주호영 대표께서 입수를 했는지 모르지마는 4·8 합의서는 지금까지 공개가 됐고 그 다른 문건에 대해서는 저는 기억도 없고 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주: 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까?
 
  박: 예.〉
 
  이후 박지원 후보자는 “사인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라는 애매한 발언에서 강경한 방향으로 선회한다. “원본(原本)을 가져오라, 이 문서는 조작된 것”이라고 했다가 비공개 회의에선 “그런 말은 오고 갔는데 서명한 적은 없다”(정보위 간사 하태경 의원의 전언)로 다시 흔들리다가 다음 날엔 “조작이다. 문서 제공자의 실명을 공개하라. 법적 조치를 검토하겠다”라고 나왔다. 주호영 의원은 “믿을 수밖에 없는 전(前) 정부 고위직 인사가 준 것이다”면서 “제발 나를 고소해달라. 그러면 밝혀질 것 아닌가”라고 맞받았다.
 
 
  침묵하는 남북 비밀접촉 배석자들
 

 
서훈 국가안보실장.

  이 문서가 위조라면 가장 먼저 화를 내면서 발언했어야 할 인물은 서훈(徐薰) 안보실장이었다. 그는 국정원 과장 시절, 대북(對北)전략국장 김보현과 함께 남북비밀 접촉에 나선 정부 대표였던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을 보좌하였다. 2000년 4월 8일, 김대중(金大中)-김정일 회담에 합의한 베이징 회담장에서도 김 국장과 함께 박 장관을 보좌하였다. 그는 주호영 의원이 들고나온 것이 위조라면 가장 권위 있게 화를 내면서 이를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침묵하였다.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확인해본 결과 정부 내엔 그런 문서가 없다”고 했다. 이는 거짓말이 아닐 것이다. 김대중·노무현(盧武鉉) 정권이 비밀합의서를 파기하였다면 정부 내에 보존되어 있을 리가 없다. 통합당은 문서의 진위(眞僞)가 확인될 때까지 임명을 보류해줄 것을 요구하였지만 문재인(文在寅) 대통령은 7월 29일자로 임명을 강행하였다. 언론은 양쪽의 공방전을 병렬적으로 소개하는 데 그쳐 사실 확인의 의무를 포기하였다.
 
  박지원·서훈 이외에 이 문서의 진위 여부를 알 수 있는 김보현 당시 국정원 국장 또한 “위조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위조라면 가만있어선 안 될 사람이다. 2003년 대북(對北)송금 수사 때 특검(特檢)과 검찰에 가장 협조적이었던 이가 김보현씨다. 이 사건으로 구속되어 실형을 선고받았던 박지원씨는 남북비밀 접촉에서 돈 이야기는 나온 적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김보현씨는 5억 달러의 금품(5000만 달러어치 물건 포함)을 주기로 합의하는 과정에 대하여 진술했다. 그의 진술을 종합하면 ‘경제협력에 대한 합의서’는 회담의 맥락에서 자연스러운 작품이고 조작일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김보현 진술의 의의
 

 
2003년 6월 10일 특검 사무실로 출두하는 김보현 전 국정원 3차장. 사진=조선DB

  박지원 장관 배석자였던 김보현 전 국정원 3차장은 2003년 6월 11일 대북송금사건 특검에 불려가 조사를 받는데 특검 검사가 2000년 3월 17일에 있었던 제1차 남북비밀 접촉에 대하여 그때 동행했던 정몽헌(鄭夢憲) 현대그룹 회장의 진술을 근거로 하여 이렇게 묻는다.
 
  “정몽헌 회장은 남북 당국 간 회담이 끝난 직후 현대와 북측 간 접촉 결과에 대해서 아태(북한 아태평화위원회-편집자 주) 송호경 부위원장으로부터 이야기를 듣는 자리에서 ‘남측에서 베를린 선언을 이야기하면서 정상회담이 잘되면 비료든지 쌀이든지 지원할 수 있고, SOC(사회간접자본시설) 사업을 하는 데 남측이 도와줄 수 있다는 제의를 했다’는 말을 들었고, ‘다음 회담은 2000년 3월 23일 중국 북경에서 갖기로 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는데 그러한 제의를 한 바 있는가요.”
 
  김보현씨는 시인한다.
 
  “저희 측에서는 북측을 협상의 자리로 나오게 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방안을 강구하였는데, 2000년 2월경 대통령께서 김정일 위원장을 식견이 높다는 등의 방법으로 대접해주기도 하고, 물자지원 등의 방안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1차 회담에서도 인도적 차원의 지원 방안과 SOC 사업 지원 약속 등의 선제공격적인 제안을 한 바 있습니다. 북측은 구체적으로 계량화하여 말한 적은 없지만 가급적 많이 도와달라고 하였습니다.”
 
  박지원씨는 특검 조사에서 1차 회담 때 “일반론적인 이야기 외에 구체적인 지원 방법에 대하여는 언급이 없었습니다”라고 부정하였다. 나중에 법원은 판결 과정에서 김보현 진술을 사실로 인정하고 박지원 주장은 배척하였다.
 
  김보현 진술이 중요한 것은 이번에 공개된 비밀합의서의 구조가 나오기 때문이다. 박 장관이 북측에 먼저 던졌다는, “인도적 차원의 지원 방안과 SOC 사업 지원 약속 등의 선제공격적인 제안”이 그것이다. 비밀합의서엔 “남측은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인도주의 정신에 입각하여 5억 딸라분을 제공한다”고 적혀 있는데 이는 “인도적 차원의 지원 방안” 내용이라 볼 수 있다. 비밀합의서의 “2000년 6월부터 3년 동안 25억 딸라 규모의 투자 및 경제협력 차관을 사회 간접 부문에 제공한다”는, 박지원 장관이 북측에 제의하였다는 “SOC(사회간접자본) 사업 지원 약속”의 구체적 표현으로 해석된다.
 
 
  정몽헌·김보현 “北, 현금 5억 불 요구”
 

 
2003년 5월 30일 대북송금 의혹과 관련해 특검에 출두하는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사진=조선DB

  남북 비밀접촉 2차 회담은 2000년 3월 23일 베이징의 장성쉐라톤 호텔에서 열렸다. 박지원 장관을 수행하였던 김보현 국장은 특검 신문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회담을 하던 중에 돌연히 북한 측의 송호경이 정상회담을 하게 되니까 남측 당국에 경제협력자금으로 5억 불을 현금으로 요구하였습니다. 이런 말을 듣고 저와 박 장관이 거의 동시에 ‘어떻게 그런 큰돈을 줄 수 있겠느냐’고 강하게 우겼습니다. 북측은 재차 같은 내용을 요구하였고, 저희 당국자들은 ‘그러면 우리는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회의장을 박차고 나왔습니다.”
 
  특검 검사는 더 구체적으로 묻는다.
 
  “정몽헌 회장은 이날 남북 당국자 간 회담이 끝난 직후 현대와 북측 간에 접촉이 있었으며, 아태 송호경 부위원장으로부터 ‘남쪽에서 비료든, 쌀이든 인도적인 지원을 해주겠다고 하였고, 잘되면 SOC사업을 지원해줄 수 있다고 하였다’면서, ‘남측이 향후 잘되면 10억 불이든 20억 불이든 몇 년에 걸쳐서라도 지원해줄 수 있다’라고 하더라는 말을 들었다고 하였으며, 정몽헌 회장이 ‘당신들은 뭐라고 했느냐’라고 하니까 송호경 부위원장이 ‘캐시(현금)를 요구했다’라고 하여, ‘얼마나 요구했느냐’라고 하니까 ‘캐시로 5억 불을 요구했다’라고 하여, 자신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정부가 어떻게 돈을 줄 수 있겠느냐. 그것은 불가능할 거다’라는 말을 하였다고 하는데, 진술인도 그런 내용을 알고 있는가요.”
 
  김보현씨는 “정몽헌과 송호경이 어떠한 내용으로 말을 하였는지에 대하여 아는 바가 없습니다. 정부 측은 현금을 줄 수는 없고, 인도적 차원의 식량·비료 지원과 SOC 사업 지원은 하겠다고 제안을 하였던 것입니다”라고 했다.
 
  특검 검사는 박지원씨에게도 물었다.
 
  “진술인과 함께 회담에 참여하였던 당시 김보현 국장의 진술에 의하면 ‘회담을 하던 중에 돌연히 북한 측 송호경 아태 부위원장이 정상회담을 하게 되니까 남측 당국에 경제협력자금으로 현금 5억 불을 요구하였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박지원씨는 “그런 이야기가 없었습니다”고 답했다.
 
 
  김보현, “3차 회담에서 현금 지급 문제 논의”
 
  김보현씨는 2000년 4월 8일 베이징의 차이나 월드 호텔에서 열린 제3차 회담과 관련된 특검의 신문에 상당히 구체적 실토를 한다. 검사가 “3차 회담에서는 현금 지급 문제가 논의되지 않았는가요”라고 물으니 “논의되었습니다”라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합의문 작성을 하기 전에 북측에서는 5억 불을 요구하다가 우리 측의 1억 불이 맥시멈이라는 주장을 듣고 다시 2억~3억 불이라도 주었으면 좋겠다고 줄다리기를 하다가 약 1시간 반 정도가 경과될 무렵 우리 측의 1억 불 지원을 수용하였습니다.”
 
  검사는 더 추궁한다.
 
  “그런데 정몽헌 회장은 이날 같은 호텔의 다른 객실에서 회담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는데, 송호경 부위원장이 자신이 기다리고 있는 객실로 찾아와서 하는 말이 ‘남측의 입장이 지난번과 바뀐 것이 없어서 더 이상 회담을 진행할 수 없어 끝내고 왔다’면서 사실상 회담이 결렬되었음을 알려주었으며, 그러면서 현대 측에 다시 대북사업권에 대한 대가 10억 불 이야기를 꺼내 놓으면서 송 부위원장이 현대에 7억 불을 요구하였으나 현대가 이를 거절하자 다시 5억 불을 요구하였다가 결국 현대가 4억 불을 지급기로 합의를 하였으며, 북측은 이 자금을 언제까지 줄 것인지를 놓고 다시 논의를 하였는데, 북측은 ‘4억 불을 정상회담 전까지 달라’고 요구하여, 정몽헌 회장이 ‘회담 전까지 4억 불을 주는 것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하니까, 송 부위원장이 ‘그럼 정상회담 추진을 그만두겠다’면서 지급 시기를 회담 전까지로 못을 박으려고 하여, 이왕 4억 불을 주기로 하는 마당에 정상회담은 성사시켜야겠다는 생각에서 ‘그럼 회담 전에 이 자금을 주면 우리 정부 측과 계속 협의를 하겠느냐’라고 하니까, 송 부위원장도 ‘그렇게 약속을 한다면 계속하겠다’라고 하여, 저희는 한발 더 나아가 이 돈을 이달 전까지 주는 대신에 금액을 3억5천만 불로 제의하여 그 부분까지 합의가 이루어져 그날 결렬되었던 남북 당국자 간 회담이 재개되었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김보현씨는 “현대가 북측과 합의한 내용에 대해서 그 당시에는 들은 바가 없고 현대와 북측이 잠정합의서를 만든 2000년 5월 초순경 김윤규로부터 들었습니다”라고 했다.
 
 
 

 

송호경, “당신들이 보증 서라”
 

 
2000년 4월 8일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은 남북 정상회담 논의를 위해 중국 베이징에서 송호경 북한 아태평화위 부위원장과 만났다. 사진=조선DB

  특검 검사의 신문은 계속된다.
 
  “그리고 정몽헌 회장은 송호경이 남북 당국 간 회담을 재개하고서 한참 시간이 흘러서 정몽헌 회장이 머물고 있는 객실로 다시 찾아와서 ‘남측이 한 장(1억 불)을 주기로 했다’면서 ‘남측이 안 줄 경우 너희가 대신 지불하라’는 말을 하였고, 그래서 자신이 ‘정부가 주겠다고 했으면 그쪽에서 줘야지 어떻게 우리가 대신 내놓느냐’라고 하니까, 송호경 부위원장이 ‘그럼 당신들이 보증을 서라’고 하여, 제가 ‘그건 거기(정부) 거고, 우린 우리 건데, 어떻게 우리보고 책임을 지라고 하는 거냐’면서 거절을 하니까 송호경이 ‘정부의 보증이 되지 않으면 정상회담도 할 수 없다’면서 강경 입장을 보이기에 한발 물러서는 척하면서 ‘좋다. 남측 정부가 못 줄 경우 우리가 책임을 지겠다. 그렇다면 당신들도 우리에게 주기로 한 사업권에 통신사업을 추가하여 포함시키고, 독점권까지 넣어달라’고 하니까, 북측에서도 자기들 쪽에 연락을 하는 등 고심을 하다가 결국 현대 측의 요구를 들어주게 되었으며, 다시 남쪽 당국자 간 테이블로 돌아간 이후에 남북 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합의문에 서명을 하게 된 것이라고 하는데 어떤가요.”
 
  김보현씨는 “그러한 과정을 저는 전혀 알지 못하고, 당시 회담이 수차례 정회를 반복하다가 합의에 이른 것은 사실입니다”라고 했다. 특검과 검찰의 보강조사로 정몽헌 회장의 진술이 사실에 부합되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김보현씨는 현금 지원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했다.
 
  “돈을 직접 주는 것은 첫째, 국민적 비판여론을 감내하기가 어렵고, 둘째 혹시 북측이 군사비로 전용할 우려가 있다는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1억 불 정도를 주더라도 남북 정상회담을 열어서 해빙 무드를 조성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박지원씨와 事前에 입을 맞추었다”
 
  특검은 박지원씨에 대하여도 3차 회담의 경과를 묻는다.
 
  “이날 회담에 참석하였던 김보현 국장의 진술에 의하더라도 ‘합의문 작성을 하기 전에 북측에서 5억 불을 요구하다가 우리 측의 1억 불이 맥시멈이라는 주장을 듣고서 다시 2억~3억 불이라도 주었으면 좋겠다고 줄다리기를 하다가 약 1시간 반 정도가 경과될 무렵 우리 측의 1억 불 지원을 수용하게 되었던 것이다’라고 하는데 어떤가요.”
 
  박지원씨는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라고 했다. 검사가 “이 부분에 대하여도 김보현 국장의 진술과 정몽헌 회장의 진술이 일치함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사실이 아니라고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라고 추궁했다. 박씨는 “그런 내용을 제가 모르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다.
 
  김보현씨는 특검에서 신문을 받을 때, 박지원씨와 사전에 거짓말하기로 입을 맞추었다고 진술했다.
 
  “2003년 4월 하순경 봉은사 앞에 있는 코엑스 인터콘티넨탈 호텔 1250호에서 제가 연락하여 저녁 식사 후에 박지원을 만나서 당시의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다가 결국 1억 불에 관해서는 조사를 받더라도 말을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점이 알려지면 정상회담을 돈 주고 샀다는 오명을 들을 것이고 남북관계에도 나쁜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검사가 “진술인이 말하기 어려운 점을 오늘 말한 이유는 무엇인가요”라고 물으니 이렇게 답했다.
 
  “첫째는 특검에 나와보니 더이상 감출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둘째는 제가 진술을 하지 아니하면 제 부하직원들이 나와서 (필자 註-한 줄 보이지 않음)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을 한 것에 대하여 자책감을 가집니다. 다만 특검에서 남북관계를 고려하셔서 지혜로운 판단을 하여주시기 바랍니다.”
 
 
 

 

미리 알았던 ‘비밀합의서’
 

 
인사 청문회 며칠 전 제보자와 만나 작성한 필자의 메모와 ‘경제협력에 관한 합의서’의 내용을 보면 핵심 내용이 일치한다.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지난 7월 27일로 확정된 무렵, 정부 고위직 출신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다음 날 시내 모처에서 만났다. 그는 내가 《월간조선》 편집장 시절 김대중 정권과 현대그룹에 의한 5억 달러(물자 5000만 달러어치 포함) 불법송금 사건을 취재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이날 걱정을 많이 했다. 박지원씨가 국정원장으로 임명되면 김정은 정권에 약점이 잡힐 것이라면서 공개되지 않는 비밀합의서가 있다고 했다. 그는 기억을 더듬어 비밀합의서 내용을 불러주었다. 묻지는 않았지만 그는 이 합의서의 사본이나 원본을 직접 읽어본 것 같았다.
 
  나는 메모는 하지 않고 그의 말을 머리에 담았다가 사무실로 돌아와 기사 프린트 용지 뒷면에 메모를 했다. 7월20일자 조선닷컴 기사 프린트였는데 기사 제목은 〈주호영 ‘北이 원한 대로 다 해준 박지원, 그게 국정원장 전문성?’(이슬비 기자)〉이었다.
 
  그날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주 원내대표가 전날 박지원 후보자에 대하여 “적과 내통했다”고 말한 것을 두고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말했고, 주 대표는 기사 제목과 같은 요지의 이야기를 했었다. 내가 메모한 것을 옮기면 이렇다.
 
  〈2000년 6월부터 25억 달러를 투자 및 경제협력 차관으로 제공한다.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인도적 차원에서 5억 달러를 제공한다. 상부의 뜻을 받들어 박지원, 송호경. 2000년 4월 8일〉
 
  7월 26일, 청문회를 하루 앞둔 날 통합당이 비밀합의서를 입수하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합의서 사본을 얻었다. 그 내용의 핵심은 그 며칠 전 내가 듣고 메모한 것과 같았다.
 
  〈남과 북은 민족의 화해와 협력, 민족 공동의 번영 및 인도주의 문제해결에 이바지할 의지를 담아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첫째, 남측은 민족적 협력과 상부상조의 정신에 입각하여 북측에 2000년 6월부터 3년 동안 25억 딸라 규모의 투자 및 경제협력 차관을 사회 간접 부문에 제공한다.
 
  둘째, 남측은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인도주의 정신에 입각하여 5억 딸라분을 제공한다.
 
  셋째, 이와 관련한 실무적 문제들은 차후 협의하기로 하였다.〉
 
 
  문서에 쓰인 용어와 맞춤법이 북한식
 

 
박지원 국정원장은 대북 불법송금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2004년 5월 17일 항소심 결심공판에 출석하는 박 원장. 사진=조선DB

  나는 7월 27일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리기 40여 분 전 조갑제닷컴에 비밀합의서를 사실로 단정하는 기사를 올렸다.
 
  〈남북 정상회담 관련 비밀합의서가 있었다! 북한에 30억 달러 제공 밀약!
 
  : 5억 달러는 무상으로, 25억 달러는 차관 등으로 제공. 2000년 4월 8일 북경에서 박지원-송호경이 상부의 뜻을 받들어 서명하였다.
 
  2000년 4월8일자 남북 간 비밀합의서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북경에서 김대중-김정일 정상회담을 논의하던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과 북한의 아태평화위 부위원장 송호경이 서명한 밀약이다. 이 문서는 김대중 정부가 국회나 국민에게 공개한 적이 없고, 2003년 대북송금 수사 때도 제출된 적이 없다. 핵무기를 개발하던 적(敵)과 비밀합의를 하고 30억 달러의 지원을 약속하고 집행하면서도 그 내용을 국회와 국민에게 알리지 않고 속인 것은 국가반역죄에 해당할 것이다.
 
  문서에 쓰인 용어와 맞춤법이 북한식이다. 이는 북한 측 주도로 작성되었음을 시사한다. 30억 달러 제공 약속 중 5억 달러는 집행되었는데, 나머지 25억 달러는 어떻게 되었는지 국가적 조사가 필요하다. ‘민족적 협력과 상부상조의 정신에 입각하여’ 제공하는 차관이라면 갚을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 아닌가? 25억 달러가 제공되지 않았으면 서명 당사자가 국정원장에 임명될 경우, 북한 당국은 채권자 입장에서 채무 이행을 재촉하지 않을까? 적에게 약점 잡힌 사람이 국가정보기관의 장이 되는 수도 있나? 문재인 대통령은 이 비밀문서를 알고 지명한 것인가 모르고 한 것인가? 알고 했다면 의도가 불순하고 모르고 했다면 지명을 취소해야 한다.
 
  물을 게 많다.
 
  1. 국회는 대북송금사건 특검을 다시 결의해야 한다. 2003년의 수사는 이 비밀합의서의 존재를 모르고 진행되어 틀린 결론을 내렸다. 현대그룹이 김정일의 해외비자금 계좌 등으로 보낸 5억 달러는 사업 이권 확보용이 아니라 ‘인도적 지원’으로 위장한 뇌물로서 사실상 핵미사일 개발 지원금이 되었음이 밝혀진 것이다. 아웅산 테러와 대한항공기 폭파를 지령하고 핵개발하던 김정일이 인도적 지원 대상이라니!
 
  2. 나머지 25억 달러는 어떻게 처리되었는가? 북한 정권으로 비밀리에 보내졌는가? 25억 달러를 2000년 6월부터 3년간 제공한다고 했는데, 현대 이외에 다른 대기업들을 내세워 현대식으로 송금을 하도록 한 것은 아닌가?
 
  3. 국정원이 2009~2012년 사이 추적하였던 13억5000만 달러 추정 미국 내 김대중 비자금 의혹과는 어떤 관계인가? 국정원은, 그중 1억 달러가 김홍걸의 중국 내 투자를 통하여 북한으로 들어가는 구조임을 파악하고 미국 FBI와 공조, 추적하였고 김홍걸 관련 1억 달러 수표 사본도 확보하였다.
 
  4. 이 합의문은 노무현 정부에 인계되었는가?
 
  5. 박지원씨가 국정원장이 되면 북한은 이 합의서를 근거로 약속 이행을 압박할 가능성은 없는가?
 
  6. 문재인 대통령은 이런 합의서의 존재를 알고도 지명한 것인가?
 
  7. 이렇게 약점 잡힌 사람을 국정원장으로 지명한 의도는 무엇인가?〉
 
 
  박지원의 치명적 말실수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장에서 치명적 말실수를 했다. 민감한 질문이 들어올 경우 세계의 전통 있는 국가정보기관들은 답변 공식이 있다. NCND(Neither confirm, nor deny).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다’이다. 박 후보자는 이렇게 말했어야 한다.
 
  “남북관계의 특수성으로 해서 그런 문제에 대하여는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저희의 공식 입장입니다. 아무리 질문해도 이 답밖에 드리지 못하는 점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핵보유국, 특히 이스라엘 같은 나라가 핵 문제에 관련한 질문에 답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박지원씨는 주호영 의원의 기습적인 질문에 대비할 시간이 없었기에 “서명한 기억이 없다” “원본을 가져오라” “그런 말을 한 적은 있으나 서명은 안 했다”(하태경 의원의 전언)는 취지로 말을 바꿨다.
 
  더 큰 문제는 이 문서를 가지고 있을 북한 정권에 약점이 잡히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북한이 문서를 공개하면 박지원 원장은 그가 약속한 대로 그만두어야 한다. 수사대상이 될 수도 있다. 공개하지 않고 협박자료로 쓴다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어쨌든 대한민국을 북한 노동당 정권으로부터 지켜야 할 국가정보원장으로선 쓸모가 없어진 정도가 아니라 부담이 되어버린 셈이다. 임면권(任免權)을 김정은에게 주어버린 실언(失言)이었다. 그 문서가 진짜임을 모를 리 없는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한 데 대하여 주권자인 국민은 그 의도가 국가정보원의 정보자산과 막대한 예산을 대한민국이 아닌 반(反)국가단체 수괴 김정은을 위하여 쓰라는 것이라고 의심할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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