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어리석은 주인이 노새 등을 부러뜨린다
조선일보
입력 2020.07.20 03:16
역대 최저 1.5% 인상 최저임금 겨우 시간당 130원 올렸다지만
마이너스 성장 예상 한국 경제 버거운 짐 지운 것 아닐까 걱정
이진석 사회정책부장
"어리석은 주인은 노새가 '힘들다'고 안 한다고 자꾸 짐을 싣는다."
말 못하는 짐승이라 무거워도 무겁다고 못하는데 그걸 모르고 노새 등에 산더미 같은 짐을 지우는 주인은 참으로 어리석다. 힘에 부쳐 거친 숨을 내쉬는데 "이건 가벼워서 괜찮다"면서 자꾸만 짐을 늘리면 결국엔 등이 부러져 죽게 된다는 걸 모른다. 관료 출신인 한 경제계 인사가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1.5% 오른 것을 이렇게 비유했다.
어려운 경제 상황 감안해서 역대 최저 인상률로 정했다고 했고, 두 해 연속 두 자릿수로 올리던 시퍼렇던 정권 초기와는 달라 보여서 그러려니 했는데 그는 정색을 했다. "이러다 큰일 난다"고 했다. 노새 이야기는 노태우 정부 시절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선배에게 들었다고 했다. 김영삼 정부 때 외환 위기가 닥치자 들려줬다고 했다. "노새 등에 무거운 짐을 싣고 강을 건너다 노새는 강에 빠져 죽고, 짐은 다 잃어버렸다"고 하더란다. 저녁 자리에 동석했던 분이 한마디 보탰다. 영국에는 "낙타 등을 부러뜨리는 건 마지막 지푸라기"라는 속담이 있다고 했다. 무엇이 '마지막 지푸라기'가 될 것인지는 등짐으로 올려놓기 전까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이 정부는 다른 걱정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4일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으로부터 최저임금 1.5% 인상에 대해 보고받으면서 상당히 심각한 표정을 지었고 "국민들께서 어떻게 받아들일 건가"라고 질문했다고 한다. 김 실장은 "노동조합이, 노동자가 많이 비판을 할 것이지만 우리 경제 전체 입장에서는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서 직접 한 얘기다. 대통령은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묻지 않았고, 김 실장은 노조에서 비판받을 일이 걱정이었던 모양이다.
최저임금에 대해서는 노조, 노동자만 불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중소·중견기업, 편의점주 등 자영업자들은 "최저임금 부담을 덜어달라"고 비명을 질러댔다. 그래도 청와대 정책실장은 노조 걱정만 한다. 알바생보다 못 번다는 편의점 주인들의 목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는 모양이다. "올해 경제 성장률은 마이너스일 테니 최저임금도 인하해야 한다"는 소리는 남의 나라 일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IMF 때보다 어렵다"는 중소기업의 비명도 듣지 못했을 것 같다.
정부는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정해졌다"고 하고 싶겠지만, 정부가 다 정했다. 어리석은 주인은 최저임금위원회가 아니라 정부다. 최저임금위원회에는 노동자위원과 사용자위원이 각각 9명씩 참가한다. 그리고 정부가 정하지만 공익위원이라고 부르는 9명이 더 참가한다.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 1.5%는 이 공익위원들이 제안했고, 전원 찬성해서 결정했다. 노동자위원은 9명 모두 불참하거나 퇴장했다. 사용자위원 9명 중에서 소상공인연합회가 추천한 2명은 "어쨌든 내년에도 최저임금을 올린다"고 하자 회의장을 나가버렸다. 나머지 7명은 표결에는 참여했지만 모두 반대표를 던졌다.
지난달 최저임금위원회가 처음 열릴 때부터 경제계에서는 "인상 불가, 최소 동결"이라는 말이 나왔다. 실업자는 늘고, 성장률은 떨어지는 게 보이지 않느냐고 했다. 하지만 정부는 1.5% 역대 최저 인상률이면, 130원이면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힘겹게 걷는 노새를 보고 "견딜 만하니 견디는 것 아니냐"고 하면 틀린 말이다. 짐을 좀 더 실어도 되겠구나 하면 큰일이다. '마지막 지푸라기'가 어떤 것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노새 등이 부러지고, 노새가 강에 빠져 죽은 뒤에야 알게 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7/20/202007200007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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