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 중국의 홍콩 직접 통치 시작됐다
노석철 특파원
입력 : 2020-06-24 04:06
홍콩은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체제·문화 충돌 현장이다. 자유와 인권을 보장받는 서방의 자유민주주의 시스템이 작동하지만, 체제 안정을 이유로 통제와 감시가 정당화되는 중국식 사회주의 영역에 있다. 서방 시스템에 익숙한 홍콩인들은 중국식 통치에 기나긴 저항을 해왔다. 중국은 외교·국방 외에 홍콩인 스스로 다스리는 ‘고도의 자치’와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를 50년간 약속했다. 2047년까지다. 서방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홍콩의 ‘중국화’ 시도가 두드러지면서 양측의 갈등이 격화됐다. 2015년 시진핑 국가주석을 비판하는 책을 판매한 서점 관계자 5명이 차례로 실종됐던 사건이 대표적이다. 홍콩에서는 언론·출판의 자유가 보장되지만 중국 본토에서 최고 지도자 비판은 목숨 내놓고 해야 하는 일이다. 지난해 범죄인 인도 법안, 즉 송환법 반대 시위도 ‘중국화’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됐다. 송환법 반대 시위에서 최대 200만명이 거리로 나가 ‘반중’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하지만 홍콩 국가보안법이 발효되면 그런 민주화 시위는 더 이상 어려울 전망이다. 보안법 초안을 보면 그동안 홍콩에서 벌어졌던 시위 양상과 행정·사법부의 대응, 서방의 태도까지 치밀하게 분석해 설계한 흔적이 보인다. 우선 초안에는 중국 중앙정부가 홍콩에 국가안보공서를 설치해 국가안보 업무 감독·지도, 정보수집·분석, 범죄사건 처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사실상 각 부처를 지휘할 무소불위의 중국 기관이 홍콩에 설치되는 셈이다. 이는 고도의 자치 약속에 어긋난다. 초안은 또 특정한 국가안보 범죄에 대해 관할권을 행사하는 것은 중앙정부의 통치권이라고 규정했다. 이는 중앙정부가 홍콩의 국가안보 범죄자를 본토로 데려가 수사·재판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홍콩 정부가 설립하는 홍콩 국가안보수호위원회에 중앙정부가 파견하는 ‘국가안보사무 고문’을 두도록 해 중앙정부의 지침을 전달할 창구도 열어뒀다. 게다가 홍콩 행정장관이 국가안보 사건 담당 판사를 지명하도록 해 사법권 침해 논란도 일으켰다.
중국 내에서는 홍콩 보안법을 송환법 반대 시위 등에 소급 적용하고, 면책 특권이 있는 외교관이라도 국가안보 사건에 연루되면 면책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결국 홍콩 보안법은 중국 정부가 홍콩을 직접 통치하겠다는 선언으로 보인다. 미국이 홍콩의 특별지위를 박탈하겠다고 위협하지만 ‘체제 안전’이 지상과제인 중국은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이다. 미국도 홍콩을 함부로 하지 못할 것이란 자신감이 깔려 있다.
중국은 보안법이 시행돼도 자치권이 보장되고 일반 홍콩 시민은 전혀 영향이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보안법 시행 전후의 홍콩은 완전히 다른 세계가 될 수 있다. 홍콩에서는 앞으로 송환법 반대 시위 등 대규모 집회나 정부에 대한 비판, 인권단체들의 활동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 자유로운 홍콩이 중국식 통제와 감시가 일상화되는 사회로 급속히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홍콩 젊은이들은 중국 공산당이 허용하는 범위 내의 자유에 익숙해져야 할지 모른다. 장기간의 시위와 경찰의 강경 진압에 지친 홍콩인들은 이제 보안법에 저항할 힘도 없어 보인다. 최근 민주노조 및 학생 단체가 파업 결의를 시도했으나 참여가 저조해 무산됐다. 홍콩 보안법은 이르면 7월 발효될 수 있다. 서방 세계는 중국에 거듭 경고하지만 딱히 홍콩을 구할 묘안은 없어 보인다. 이제 홍콩인들은 저항의 표시로 이민을 가거나, 중국식 체제를 순순히 받아들여야 할 처지다. 다른 길이 안 보이는 게 안타깝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44223&code=11171225&sid1=c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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