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의 100세일기] 말 17마리를 자식에게 물려줄때… 수학이 모르는 지혜
조선일보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입력 2020.06.13 03:00
[아무튼, 주말]
일러스트= 김영석
'한국 문예학술 저작권 협회'라는 기관이 있다. 누군가의 글을 옮겨 사용하고 싶은데 저자와 직접 연락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행해 주는 기관이다. 나도 저자로서 그 회원의 한 사람이다.
나는 비교적 많은 글이 전재되는 편이다. 그중에서 지난 몇 해 동안 예상외로 널리 인용되는 글이 하나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우화(寓話)이면서 내가 간추려 '수학이 모르는 지혜'로 알려진 글이다. 아마 유례가 없을 정도로 많은 독자를 차지한 글인 것 같다.
아라비아에 한 상인이 있었다. 늙어 임종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감지한 상인은 아들 셋을 불러 모으고 유언을 했다. "너희에게 물려줄 재산으로 말 17마리가 있는데 내가 죽거든 큰아들은 그 2분의 1을 가져라. 둘째는 17마리의 3분의 1을 가져라. 그리고 막내는 9분의 1을 차지하라"고 말했다.
부친의 사후에 큰아들은 말 9필을 갖겠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은 두 동생은 그것은 아버지의 유언인 2분의 1을 초과하기 때문에 안 된다고 반대했다. 둘째는 나는 3분의 1에서 손해를 볼 수는 없으니까 6마리를 가져야 한다고 고집했다. 형들의 욕심을 알아챈 막내는 나도 한 마리로 만족할 수 없으니까 9분의 1은 좀 넘지만 2마리를 가질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며칠을 두고 논쟁하고 싸웠으나 이들의 재산 분쟁은 해결되지 않았다. 아버지가 남겨 준 사랑의 유산이 삼형제 사이의 우애를 허물고 대립과 싸움으로 번질 상황이 되었다.
그러던 어떤 날 그 집 앞을 지나가던 한 사제(司祭)가 나타났다. 먼 길을 떠나 왔는데 타고 온 말과 함께 좀 쉬어갈 수 있겠는가 요청했다. 손님이 사제이기 때문에 삼형제는 기꺼이 하루를 머물고 가는 대신에 자기네가 겪고 있는 재산 싸움을 해결해주면 사제의 요청을 들어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사제는 "그러면 내가 타고 온 말 한 필을 줄 테니까 모두 18마리 중에서 큰형은 9마리, 둘째는 6마리, 막내는 2마리를 가지라"고 했다. 모두가 갖기를 원했던 것보다는 조금씩 많아졌다. 삼형제는 그러겠다고 수락했다.
다음 날 아침, 9마리, 6마리, 2마리씩 나누어 가졌는데 말 한 마리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사제는 "나는 걸어서 떠나겠다"고 뜰 밖으로 나섰다. 그때 삼형제가 "사제님, 우리가 원하는 대로 가졌는데도 사제께서 타고 온 말이 남았습니다. 먼 길인데 도로 타 고 가셔야겠습니다" 하고 내주었다. 사제는 "나에게도 한 마리를 주니까 감사히 타고 가겠다"면서 작별인사를 했다.
이 이야기가 한국에서 왜 그렇게 많은 독자의 관심을 끌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우리가 '더불어 삶'의 가치를 잃어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원하는 것은 더불어 사는 지혜와 모범을 보여줄 수 있는 지도자 아니겠는가.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12/202006120274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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