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칼럼 > 전체
[빛과 소금] ‘무쉬이미’가 보고 싶다
신상목 미션영상부장
입력 : 2020-06-13 04:02
1980년대 초반이었다. 다니던 교회는 꽤 일찍부터 아프리카 선교를 했다. 어느 주일 케냐에서 온 목사님이 설교했다. 책이나 TV에서만 보던 아프리카 흑인을 눈앞에서 처음 목격했다. 그 목사님 이름이 아직도 생각난다. 무쉬이미 목사. 친구들과 나는 무쉬이미 목사님의 설교를 듣기보다 그분 외모를 살피느라 바빴다. 무쉬이미 목사님은 예배 후 교인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인사했다. 아프리카인 목사님과의 악수. 손에 느껴지는 질감은 낯설었지만 푸근하고 정이 넘쳤다. 한국 촌놈은 그렇게 아프리카를 만났다.
하지만 그 후 보고 들은 아프리카는 푸근하지 않았다. 1달러가 없어 굶주리는 사람들, 뼈만 앙상한 아이들, 더러운 물을 마시는 사람들, 가뭄과 홍수로 쓰러진 그들의 터전 등은 TV 신문 잡지 어디서나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알게 된 아프리카인의 고난 역사. 말끔한 양복을 입고 우리 손을 잡아준 무쉬이미 목사는 예외인 듯했다.
아프리카의 이런 현실에 대해 어떤 목회자들은 창세기 9장에 나오는 함의 저주라고 했다. 노아가 술에 취해 벌거벗은 채로 누워있었는데 셋째 아들 함이 이 모습을 본 것에 관한 결과라는 것이다. 반면 형들인 셈과 야벳은 부친의 모습을 보지 않으려고 뒷걸음쳐 들어가 옷으로 덮었다. 노아는 나중에 이 일을 알고서 “가나안(함의 자손)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 가장 천한 종이 되어 저희 형제들을 섬길 것이다…”(창 9:25~27, 새번역)라고 선언했다. 일부 목회자들은 이 구절이 인종의 기원이라고도 했다. 노아의 칭찬을 받은 셈은 황인, 야벳은 백인, 함은 흑인이 되어 저주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지금도 인터넷에 널려 있다.
하지만 성경을 아무리 읽어봐도 이 구절에서 인종은 언급되지 않는다. 그저 인류가 시작됐다고 밝힐 뿐이다. “이 세 사람이 노아의 아들인데 이들에게서 인류가 나와서, 온 땅 위에 퍼져나갔다”(창 9:19, 새번역). 종교개혁 정신을 충실하게 반영한 것으로 이름난 ‘ESV 스터디 바이블’에 따르면 해당 구절은 과거 수 세기에 걸쳐 아프리카인들의 노예화를 정당화하기 위해 잘못 해석돼왔다. 스터디 바이블은 “이 통탄할 오용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들에게 불평등과 비인간적 행위를 초래했다”고 설명한다.
모든 인간은 아담의 후손이자 하나님의 창조물이다. 하나님은 흙으로 인간을 만드시고 생기(숨)를 그 코에 불어 넣으셨다. ‘숨을 쉴 수 없다’며 호소하다가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은 하나님의 창조를 거스르는 죄악 된 인간 상태를 반영한다. 미국 일이라고, 흑백 갈등이라고만 치부하지 말자. 우리 역시 얼마나 차별하는가. 아프리카는 헐벗고 굶주린 대륙이라고 얼마나 잘못 알고 있는가.
5년 전 아프리카로 가족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여행에서 우리가 목격한 것은 가난과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들, 더럽고 황무지 같은 땅이 아니었다. 휴대폰이 없는 사람이 없었고 미국에서나 볼 수 있는 대형 쇼핑몰이 도시마다 즐비했다. 관광지엔 전 세계 사람들로 넘쳤다. 푸른 하늘과 나무들, 그 아래에서 번성하는 온갖 동물의 세계는 이 지구상에서 꽃피는 생명의 현장이었다. 잠비아 수도 루사카에서는 새벽 5시부터 출근하는 사람들을 봤다. 현지 선교사는 “7시부터 회사가 시작된다. 교통비를 아끼려고 새벽부터 나와 걸어서 출근한다. 누가 아프리카인들을 게으르다 하는가”라며 반문했다.
우리는 도움도 받았다. 한밤에 숙소를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를 때 한국에서 유학했다고 소개하며 ‘툭툭이’를 잡아 숙소까지 데려다준 탄자니아 대학교수,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국립공원 현지인 가이드, 남아프리카공화국 국경에서 버스를 놓쳐 헤맬 때 부인이 중국인이라며 빨리 타라고 부르던 운전기사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들의 이름은 모르지만, 무쉬이미라고 부르고 싶다. 멋진 미소를 지닌 무쉬이미들을 다시 만나고 싶다.
신상목 미션영상부장 smshin@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42449&code=11171419&sid1=col
'종교-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사초롱] ‘노빈손 세대’와 수평적 리더십 (0) | 2020.06.18 |
---|---|
"문명의 속성은 야만… 이에 맞서는 생명 그리려 했다" (0) | 2020.06.17 |
흑인 폭동 시 ‘백인 공격’은 처음, ‘백인이 책임지라’는 메시지 (0) | 2020.06.14 |
[김형석의 100세일기] 말 17마리를 자식에게 물려줄때… 수학이 모르는 지혜 (0) | 2020.06.13 |
[윤평중 칼럼] 한국 진보, 양심의 절대화가 惡을 부른다 (0) | 2020.06.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