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판 닫힌 성장산업 "체질개선 위한 10년 플랜 필요"
조선일보
입력 2020.06.02 03:00
[코로나 빅뱅, 위기와 기회] [3] 생존 갈림길에 선 기간산업
최근 현대차그룹 경영진은 중국에서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가장 먼저 봉쇄를 푼 중국의 지난 4월 자동차 내수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2.5% 수준으로 거의 회복됐는데, 현대·기아차는 -26%를 기록한 것이다. 중국 자동차 시장 10위권 업체 중 가장 감소 폭이 컸고, 순위도 지난해 7위에서 10위로 3계단이나 내려갔다. 2016년까지만 해도 '빅3'였던 현대·기아차는 중국 지리·장안·장성자동차에도 밀리며 순위가 계속 뒷걸음질치고 있다.
신동빈 롯데 회장은 최근 롯데케미칼에 "신산업을 발굴하라"는 특명을 내렸다. 폴리에틸렌 등 기존 전통 석유화학사업만으로는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더라도 향후 성장을 담보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 '벌크(대량생산·박리다매)' 경쟁력으로 승부하던 시대는 지났고, 그런 식으론 더 이상 살아남기 힘들다"며 "코로나 사태로 전환의 시기가 더 앞당겨졌다"고 말했다.
지난 4월 중국 저장성 닝보에 있는 지리자동차 공장에서 근로자들이 작업하는 모습. 지난 2016년 중국 시장점유율 10위였던 지리차는 올해 1~4월 순위가 4위로 올라섰다. 같은 기간 현대·기아차는 3위에서 10위로 순위가 내려앉았다. 이 기간 현대·기아차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10.2%에서 3.6%로 떨어졌다. /블룸버그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더라도, 우리 기간산업의 경쟁력이 회복되지 않을 것이란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그동안 내수 규모가 작은 한국은 중국을 앞마당으로 삼아 고속성장의 과실을 누려왔지만, 이제 중국이 우리에게 '제2의 내수시장'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코로나 위기 이전부터 우리 주요 산업의 성장판은 닫히고 있었다"며 "코로나 위기 이후에도 쉽게 회복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 커보지도 못하고… 성장판이 닫혔다
코로나가 퍼지기 전부터 자동차·석유화학·정유·철강 등 한국을 제조업 강국으로 이끈 성장산업들은 심각한 '기저 질환'을 앓고 있었다. 무리한 주 52시간제 강행,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같은 반(反)기업 정책으로 우리 기업들의 기초 체력은 바닥 난 상태였다. 기업들은 그렇게 면역력이 떨어진 채 코로나 바이러스를 만나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기업들은 코로나 종식 후 수요 회복을 기다리고 있지만, 수요가 회복되더라도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거대한 기회의 땅이었던 중국 내수 시장을 중국 기업들이 더 폭넓게 장악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가장 빨리 봉쇄를 푼 중국은 생산을 늘리면서 아직 소비가 회복되지 않은 시장에서 공급과잉을 일으키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생산 설비를 늘리고 품질 수준을 끌어올리며 우리를 밀어내고 있다.
국내 정유업은 최근 급격히 추락했다. 원래 중국은 세계 1위 석유 수입국으로 한국에서도 상당량을 수입했다. 그런데 최근 수년간 자체 정제설비를 추가하며 자급 규모를 확대했고, 정제량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의 지난달 대(對)중국 석유제품 수출은 43% 감소했다. 중국은 남아도는 석유제품을 수출까지 하고 있고, 한국 정유 4사의 1분기 영업적자는 4조원을 넘어섰다.
석유화학도 마찬가지다. 국내 화학업체들은 일본의 콤비나트(석유화학단지) 방식을 본뜬 '벌크' 체제를 경쟁력으로 삼아왔다. 하지만 중국도 비슷한 능력을 갖췄다. 중국의 생산 설비 능력은 연간 2800만t으로 한국(980만t)의 3배 수준으로 커졌다.
한국 철강산업은 내수·수출·생산 동반 감소에 중국발(發) 철광석 가격 상승까지 4중고에 처해 있다. 전 세계 철강업체는 감산 중인데, 중국의 올해 1~4월 조강 생산량(3억1946만t)은 오히려 전년 동기 대비 1.3% 늘었다. 중국의 증산 때문에 원재료 가격은 코로나 유행 직전보다 20% 치솟았다.
◇"신산업 전환에 10년… 장기 플랜 필요"
전문가들은 '양적 성장'의 시대는 끝났다고 지적한다. 과감하게 신산업으로 전환해 고부가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 고도화로 독보적인 '소재·부품·장비' 산업을 일군 일본의 모델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화학업계 관계자는 "특수고무·탄소섬유 등 고부가 가치 제품으로 체질 개선을 하려면 10년은 걸린다"며 "연구·개발을 사실상 가로막는 화학물질등록평가법, 화학물질관리법 등 규제를 빨리 풀고 단기 생존뿐 아니라 장기 지원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업 관계자는 "일본처럼 작고 강한 화학기업을 만들려면 밤새 연구실을 돌려도 될까 말까 한데, 오후 6시가 되면 퇴근하는 나라에서 그게 되겠느냐"면서 "주 52시간제를 빨리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업은 기술 혁신, 정부는 노동시장 혁신과 규제 완화를 통해 '경쟁력'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02/202006020021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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