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유현준의 도시 이야기] 155% 늘어난 집의 의무

최만섭 2020. 4. 10. 05:30

[유현준의 도시 이야기] 155% 늘어난 집의 의무

조선일보
  •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입력 2020.04.09 21:30 | 수정 2020.04.09 23:54

밥 먹고 돌아서면 밥 먹을 때라는 '돌밥돌밥'
좋을 줄 알았던 재택근무로 '집 스트레스' 급상승

집·학교·회사란 무엇인가…
당연시했던 것들에 대해 코로나가 던지는 질문들

제대로 된 방향으로 힘차게 뛸 수 있도록
개구리가 움츠리는 것처럼 미래 준비할 시간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사상 초유의 4월 개학이 발표되었다. 심지어 일부는 온라인 개학이다. 코로나19가 바꾼 세상의 풍경이다. 정부에서는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말을 쓰지만 이 말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물리적 거리 두기'라는 말을 사용한다. 우리가 거리를 두는 것은 물리적 거리이지 사회적 거리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Distant Socializing'이라는 말을 만들기도 했다. 직역하면 '거리를 둔 사회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단어의 무게중심이 '거리 두기'보다는 '사회화'에 있는 좋은 말이다. 기후변화나 인공지능으로 세상이 바뀔 거라고 할 때도 다가올 미래를 감당할 수 있었는데, 지금의 코로나 사태는 더 정신없이 빠르게 전 세계를 압박하고 있다. 그 압박의 중심에 학교와 회사가 있다. 인터넷은 20년 전부터 쇼핑의 형태와 공간을 바꿔왔지만 학교와 회사는 상대적으로 변화가 적었다가 이제 와서 밀린 숙제 하듯 서두르는 중이다.

변화 느렸던 학교·회사, 코로나가 압박

지금의 학교는 근대 산업화의 산물로 몇 가지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졌다. 첫째, 지식 전달이다. 기본적인 읽기, 쓰기, 셈하기를 학교에서 가르쳤다. 둘째, 시간에 맞추어 사는 훈련이다. 산업혁명 이후 만들어진 공장에 시간 맞춰 출퇴근하고 실내에 갇혀서도 일 잘하는 노동자를 양산하기 위해 학교가 만들어졌다. 그래서 우리는 학교에 가서 처음 배우는 노래가 '학교종'이다. 셋째, 탁아소 기능이다. 어른들이 낮에 밖에서 일하기 위해서 미성년자를 국가가 맡아주는 기능이다. 요즘 개학이 늦어져서 집에서 아이를 돌봐야 하는 시간이 늘자 학교의 탁아소 기능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는 사람이 많다. '돌밥돌밥'이라는 말이 생겼다. 밥 먹고 돌아서면 밥 먹을 때라는 거다. 하루 종일 가족과 집에서 지내다 보니 만들어진 말이다. 재택근무가 되면 좋기만 할 줄 알았는데, 집에서 더 스트레스받는 직장인들이 의외로 많다. 집이라는 공간은 저녁 7시부터 아침 7시까지 12시간과 주말 48시간 포함, 일주일에 총 108시간 정도 사용되었다. 나머지 일주일 중 35%의 시간대에 집은 인구밀도가 낮은 공간이었다. 그러다가 재택근무와 홈스쿨링이라는 기능이 추가되니 집이 감당해야 할 일이 평소보다 155%까지 늘어나는 상황이 되었다. 집이라는 공간에 과부하가 걸리니 사용자도 불편해졌다. 한 사람의 시간과 공간은 집과 회사와 학교가 어느 정도 나누어서 담당해 왔는데, 코로나로 인해 역할 분담이 바뀌어서 우리의 삶과 공간은 새로운 운영 방식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현준의 도시 이야기] 155% 늘어난 집의 의무
/일러스트=백형선

최근 들어서 대학은 온라인 강의로 수업을 진행한다. 이런 사태가 만든 새로운 풍경이 있다. 학생들은 온라인 강의 접속과 동시에 친구들과의 카톡 창을 띄운다. 온라인 강의는 지식을 전달하는 기능만 할 뿐 한 장소에 모여서 같은 수업을 들으며 만들어지는 친구 간의 유대감은 채워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자신들만의 메신저 창으로 온라인상에 공동체 공간을 만든다.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다는 것은 지식 습득 외에 친구들과 사회를 만든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개구리가 뛰기 전 움츠리는 시간

학교는 아이들끼리 더불어 사는 연습을 하는 공간이라는 의미도 있다. 소수의 선생님이 주는 최소한의 통제 아래 자생적으로 사회적 규칙을 만드는 연습을 하는 공간이 학교다. 가끔 왕따 같은 문제도 생겨나지만 그렇다고 자생적인 사회화 연습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래야 훗날 어른이 되었을 때 물려받는 사회를 꾸려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15소년 표류기' 소설에서 아이들이 그들만의 사회를 만드는 것처럼 학교에서 학생들은 그 나름의 사회를 조직한다. 온라인 수업으로 지식 전달 기능은 대체할 수 있지만 학생들의 자생적 사회 구성 연습은 커버하지 못한다. 그 기능을 위한 새로운 형태의 공간이 필요하다. 다양한 스포츠 클럽이나 동아리 모임 등이 그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겠다. 미래의 학교는 온라인 수업과 다핵 구조로 이루어진 새로운 '사회화 공간'의 조합일 것이다. 회사도 개인의 업무만 생각한다면 재택근무로 대체 가능하겠지만,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함께 일하면서 우연히 만들어지는 시너지가 사라진다. 이 부분을 대체할 방법도 찾아야 한다.

코로나는 우리 사회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들에 대해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하고 있다. '학교란 무엇인가' '회사란 무엇인가' '집이란 무엇인가' 같은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개학 연기와 재택근무로 붐비는 집을 보면서 '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집이란 무엇인가'는 '가정이란 무엇인가'로 바꿔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공간에 대한 사유는 공간이 담고 있는 것에 대한 사유이기도 하다. 이번 코로나 사태는 우
리 사회를 받치고 있던 것들에 대해서 근본적 질문을 던질 기회라고 생각하자. 지금은 개구리가 뛰기 전에 움츠리는 시간이다. '물리적 거리 두기'는 혼자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이번 기회에 어떻게 사회를 재구성할지 공간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통해 미래의 비전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면 코로나 이후 제대로 된 방향으로 힘차게 뛸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4/09/202004090433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