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무대 위 인문학] '살짜기 옵서예'로 출발 … '명성황후'는 브로드웨이 올랐죠
[한국 뮤지컬]
54년 전 우리나라 최초 뮤지컬 등장… '배비장전' 각색해 4일 동안 2만 관객
1970~80년대 '아가씨와 건달들' 등 상업 뮤지컬 나타나며 대중화 시작
1990년대 국내 창작극 성장 본격화, '명성황후' 뉴욕 진출해 호평받아
◇한국 최초의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
우리나라 최초의 뮤지컬은 1966년 10월 26일, 지금은 세종문화회관이 된 서울 시민회관 무대에서 막이 오른 '살짜기 옵서예'입니다. 고전 설화 '배비장전'을 원작으로 4일간 단 7회 공연에 1만6000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화제를 모았죠. 가수 패티김뿐만 아니라 코미디언 곽규석, 탤런트 김성원, 소프라노 문혜란 등 유명 연예인과 음악가 100여 명이 동원된 출연진으로 화려한 무대를 선보였어요. 하지만 이런 전례 없는 인기 속에서도 뮤지컬을 계속 이어나갈 만한 공연장이 없어 아쉽게도 7회 공연을 끝으로 막을 내립니다. 이후 몇 차례 앙코르 공연을 하다가 초연 후 47년 만인 2013년에 재연돼 다시 관객과 만나기도 했죠.
이후 1970~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상업적 성격의 뮤지컬 공연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1976년 설립된 극단 '현대극장'이 뮤지컬 붐을 선도했어요. 프랑스의 국민 샹송 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삶을 다룬 뮤지컬 '빠담 빠담 빠담'(1977)은 스타 가수 윤복희가 주연을 맡아 흥행을 이끌었고, '수퍼스타 예수 그리스도'(1980) '사운드 오브 뮤직'(1981) '에비타'(1981)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87) 등 유명 해외 뮤지컬을 번역해 공연을 이어 나갔습니다. 1983년 극단 '민중' '광장' '대중'의 합동공연으로 선보인 '아가씨와 건달들' 역시 큰 흥행 기록을 세우며 한국 뮤지컬의 대중화를 이끈 초석이 되었죠. 하지만 당시만 해도 외국 작품의 판권을 정식으로 구입하지 않고 공연하는 경우가 많아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연이은 대형 작품 성공으로 시장 확대
해외 뮤지컬을 번역한 번역 뮤지컬의 상업적인 성공에 힘입어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국내 창작 뮤지컬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그중 단연 두드러지는 작품이 바로 뮤지컬 제작사 '에이콤'의 '명성황후'(1995)입니다. 이문열의 소설 '여우사냥'을 원작으로 명성황후의 일대기를 담은 이 작품은, 1895년 10월 8일 벌어진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긴박하게 그려냅니다. 4년의 제작 기간과 12억원이라는 제작비 투입은 창작 뮤지컬 역사상 전례 없는 일이었죠. '명성황후'는 우리나라는 물론 아시아 창작 뮤지컬 역사상 처음으로 1997년 8월 15일 미국 뉴욕 링컨센터에서 공연돼 호평을 얻기도 했습니다.
- ▲ 한국 창작 뮤지컬 ‘명성황후’의 2018년 공연 장면. 1995년 제작된 이 작품은 당시 한국 뮤지컬계에서는 전례 없는 시간과 비용을 들여 만들어졌고, 2년 뒤 아시아 창작 뮤지컬로는 처음으로 미국 브로드웨이에 진출했어요. 올해로 54년 역사를 맞은 한국 뮤지컬 시장에서는 해외 대형 라이선스 작품들은 물론 다양한 창작 작품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에이콤
2000년대에 들면서 한국 뮤지컬 시장은 급속도로 성장합니다. 시장과 관객이 성숙하면서 해외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들이 속속 한국에 상륙하기 시작해요. 라이선스 뮤지컬이란 해외 원작자에게 저작료를 내고 판권을 구입한 뒤, 우리말로 공연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중 대표작은 단연 2001년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국내 초연된 '오페라의 유령'을 꼽습니다. 한국 뮤지컬계 사상 최대의 제작비인 150억원이 들어간 초대형 규모였지요. 7개월간 공연을 이어나가며 관객 동원 24만명, 매출 192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오페라의 유령' 성공 이후 '시카고' '캣츠' '맘마미아' 등 영국 웨스트엔드와 미국 브로드웨이의 흥행작들을 한국어로 즐길 수 있게 되었고, 내한 공연 역시 늘어났습니다. 이렇게 확장된 뮤지컬 산업은 많은 창작자와 신인 배우들이 도전하는 기회의 무대이자, 다양한 창작 뮤지컬이 만들어질 수 있는 토대가 되었죠.
[국내 최초 뮤지컬 극단 '예그린악단' 을 아시나요]
'살짜기 옵서예'를 공연한 '예그린 악단'은 1961년 창단된 우리나라 최초의 뮤지컬 극단입니다. 1960년대 말 잠시 해체되었다가 1972년 국립가무단으로 재창단되었고, 1977년 11월 세종문화회관 개관을 계기로 국립가무단을 인수해 서울시립가무단으로 이름을 바꿨어요. 이후 1999년 7월 세종문화회관이 재단법인이 되면서 현재의 이름인 서울시뮤지컬단이 됐습니다.
예그린악단을 기리기 위해 2012년부터 뮤지컬 시상식 '예그린어워드'가 개최되고 있어요. 한국 창작 뮤지컬의 발전에 기여하고 그해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에 예그린 대상이 주어집니다.
- 최여정 '이럴 때, 연극' 저자 기획·구성=양승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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