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유익균과 유해균 사이

최만섭 2020. 1. 28. 04:45



I. 행복의 조건

우리는 흔히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이야기한다. 과연 그럴까? 나는 어떤 주제를 놓고 토론을 벌일 때, 과거 자신이 습득한 지식이나 경험을 바탕으로 결론을 내리는 관습은 비합리적이라는 생각이다. 세상은 무섭게 변화하고 발전하고 있는데, 우리의 사고는 급변하는 첨단 기술에 적응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예를 들면 행복은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이나 또는 그러한 상태를 의미한다는 사전적인 해석은 장에서 생성된 행복호르몬이 뇌로 전달된 상태라는 신체적인 활동이 첨가 되어야 만이 행복에 대한 의미를 보다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시형 박사는 인간이 행복할 때를 세라토닌이라는 행복 호르몬이 충만할 때라고 정의하면서 다음과 같이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세라토닌은 본능적 욕구가 충족될 때 분비되는 호르몬이다. 그럼으로써 우리를 기분좋게 하고 행복감을 선물한다. 배가 고플 때를 상상해보라. 형당이 떨어져 항상성의 균형이 무너질 위험에 처하면서, 뇌에 있는 시상하부에 비상이 걸린다. 이때 먹어보라. 행복해진다. 항상성을 회복함으로써 다시 본래의 편안하고 쾌적한 느낌으로 돌아온다. 세로토닌은 뇌에서 이런 조정 역활을 하는 50여 조의 신경전달물질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호르몬이다. 세로토닉은 우리의 뇌가 극단적으로 치우치지 않게 균형을 잡아준다. 공격성, 끝없는 욕심, 환희, 우울증에 빠지지 않게 조절한다. 항중력 근육을 조절해 반듯한 자세를 유지해주며, 생기발랄한 표정을 만들어 미인 호르몬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밖에 기쁨을 주는 앤도르핀’, 평화로운 수면을 안겨주는 멜라토닌등의 호르몬 등은 모두 인간을 기쁘게 만들어 주는 호르몬으로, 모두 장에서 생성되어서 뇌로 전파된다. 나는 행복은 정신적인 언어와 물질적인 언어와의 합성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마음을 다스리는 것만으로는 결코 행복을 느낄 수 없으며, 건강한 장에서 행복 호르몬을 공급받아야 만이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행복한 상태란 몸과 마음의 조화가 어우러질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인체의 세포 수가 70조 개인 데 비해 장내 세균의 수는 무려 100조 개가 살고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장 속에는 유익균과 유해균이 공존하고 있다. 보통 여기서 나쁜 균인 유해균을 완전히 없애고, 착한 균인 유익균만 늘려야 장이 건강해진다는 오해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 둘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고 있어야만 비로소 건강한 상태가 된다. , 이 균들의 황금 비율이 필요하단 얘기다. 구체적인 수치로 보자면, 장 속 유익균이 85%, 유해균아 15% 비율로 존재할 때 가장 이상적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유익균만 100% 존재할 경우에는 면역기능이 망가져서 작은 질병조차도 물리치지 못하고 사망에 이르게 된다. 독감 예방주사를 맞는 것과 같은 논리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장내 세균의 분포를 살펴보면, 유익균 25% 중도 균 60% 유해균 15%

비율이 가장 바람직한 세균의 존재 비율이다. 내가 가장 유심히 관찰한 것은 중도균이다. 중도균은 보통 유익균으로 분류하는데, 장내 유해균이 득세할 경우에는 유해균을 도와서 우리 몸을 병들게 하고 파괴 하는 유해균으로 돌변한다. 따라서 중도균을 잘 다스리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그 포인트는 유익균과 유해균의 비율이 25%15%를 유지하지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를 장내 세균의 황금비율 법칙 또는 2515의 법칙이라 명명하고자 한다.

 

 

II. 유익균 늘리는 방법

식습관 개선-유익균은 탄수화물과 식이섬유를 즐겨 먹고, 유해균은 단백질과 지방을 좋아한다. 고단백, 고지방 음식을 피하고 과일과 채소를 섭취하면 자연스럽게 유익균이 세력을 키울 수 있다. 이와 더불어 평소 우유(젖산)를 포함한 유산균 음료나 발효식품을 챙겨 먹는 것이 좋고, 또한 설탕 대신에 올리고당을 사용하는 것도 장내 유익균을 증가 시켜 장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다

 

III. 나는 중도균 집단에 속한 사람

나는 나 자신을 전형적인 중도균형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단 한 번도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경험이 없다. 젊은 날 나의 걱정과 관심은 오직 배고픔을 달래기 위한 쌀값과 추위를 이겨낼 연탄값을 마련하는 일뿐이었다. 나는 천신 마고 끝에 대기업의 기능공으로 취직해서 주야간 교대근무를 하면서 배고픔에서 탈출 할 수가 있었다

 

태생이 근심 걱정덩어리인 나에게 겨울밤은 너무나 길었다. 나는 밤마다 교대근무를 탈출하는 꿈을 꾸다가 배고픈 과거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진퇴양난에 빠졌고, 이러한 절망적인 환경에서 탈출하기 위하여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시간이 나는 대로 참선에 들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일상인 하루하루가 내게는 고행이며 수행이었다. 내가 깨달음의 문지방을 넘었다고 나 자신에게 선언하면서부터 나의 모든 일상은 나의 역사이며 잠재의식 속의 나의

역사는 세세생생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앞에 백척간두(百尺竿頭)에 놓인 대한민국이 성난 노도같이 이 밀려오는

광경이 나타났다. 이 무섭고도 엄숙한 역사의 경고를 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대한민국은 정의를 독점한 유해균 집단이 중도 균 집단을 지배하는 시대가 도래하여, 행복의 사전적 의미를 축소해야 하는 비극적인 사태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혹자는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정책이 서구적인 사회주의 정책을 추구하는 민주주의 정부라고 하고 혹자는 김정은 독재 공산주의 정책을 추구하는 공산주의 독재 정부라고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지금 대한민국이 직면한 위기는 그동안 내가 지금까지 겪은 박정희 정부 때의 10월 유신이나 전두환 정부 때의 광주민주화운동과는 그 성격이 판이하다는 것이다. 나는 감히 선험적인 직감으로 대한민국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처참한 운명이 다가오는 증조라고 선언하고자 한다

        

IV. 2515의 황금비율 법칙

나는 유익균과 유해균의 황금비율인 2515를 변하지 않는 독립변수로, 중도균을 주위 여건에 의해서 변화하는 종속변수라고 생각한다. 건강한 민주국가라는 의미는 중도 균 집단이 유익균 집단을 선택한 경우를 말하며, 반면에 독재국가는 중도균 집단이 유해균을 선택한 경우를 의미한다.

 

나는 독립변수인 유익균 집단이나 유해균 집단이 일방적으로 지배하는 세상은 병든 세상이며 결국 죽음에 이를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따라서 민주주의란 유익균 집단과 유해균 집단 모두에게 중도층 집단을 설득할 균등한 기회를 주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척도는 공중파 방송의 공정 보도의 여부에 따라서 평가된다는 생각이다

 

나는 촛불혁명을 열열하게 지지했지만, 광화문 집회에는 나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텔레비전을 통해서 참가자들의 주장을 여과 없이 보고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서는 나 같이 먹고살기에 바빠서 집회 나가는 것을 사치로만 생각했던 수백만 국민이 광화문 집회에 참석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공중파 방송에서 그 집회에 관한 소식을 전혀 방송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V. 유익균과 유해균의 감별사

조국 사태에 대하여 찬성하는 사람들로만 구성되었거나 침묵을 지키는 사람들로만 구성된 수많은 단체, 예를 들면 일부 대한민국 공중파 방송, 민주노총, 전교조,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불교 조계종 등은 중도균 없이 유익균 혹은 유해균으로만 구성된 기형적인 신체와 비교된다. 이들은 악성종양에 만연되어서 죽음을 기다리는 암 환자거나 아니면 이미 생명을 다한 사체와 같은 조직이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조국 사태에 대해서 찬성과 반대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신도뿐만 아니라 이를 관망하면서 침묵을 지키는 신도 또한 상당수로 황금비율을 이루고 있는 기독교는 건강한 종교 단체라고 평가해 무방할 것이다.

 

나는 조국 사태에 찬성하거나 반대하거나 혹은 관망하는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 모두가 수긍하는 최소공약수가 무엇인가?”를 고심하기 시작했고, 만일 그것을 찾는다면 이 답답한 현실을 타파할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대한민국 상황에 대하여 대한민국 국민이 느끼는 최대공약수는 절망감이다. 대한민국의 현실은 참담하다 못해서 괴이하다는 데에는 모두 동감을 표시헀다.

 

대한민국 국민은 현재 이 나라에서 발생하는 모든 현상을 도깨비에게 홀린 듯이 넋을 잃고 이상하게 바라보고 있다. 한마디로 모두 정상이 아니라고 느낀다는 것이다. 정치한다는 사람들은 다 그 나물에 그 반찬인데 누가 정치를 한들 이 세상이 더 나아지겠냐는 자괴감이 이 나라 대다수 국민의 정서였다. 국민의 대다수는 유익균 집단과 유해균 집단을 감별할 수 있는 기준이 모호하여 어둠 속을 방황하며 애를 태우면서 희망을 안겨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앞에 나타난 메시아는 마크 롱이 아닌 송시렬이었다. 나는 메시아를 대한민국 국민이 만들어야 한다는 역발상적인 제안을 하고자 한다. ‘김육같은 혁명가를 추대하자!

나같이 한평생 참다운 인생이 무엇인가?’를 물으면서 진지하게 살아온 사람들은 난제의 해결방법은 의외로 단순하고 간단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스스로 깨닫는다. 유익균 집단과 유해균 집단을 감별할 수 있는 최고의 노하우는 각자의 마음이 가는 대로 결정하라는 것이다. 물이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마음에 따르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 잣대가 되는 마음이란 도대체 어떤 마음일까? 나는 장경동 목사의 설교를 소개하는 것으로 그 답을 제사하고자 한다. “결혼하고자 만나는 선남선녀가 좋은 배필을 판단하는 기준은 적은 정도나 분량을 나타내는 조금이라는 부사의 중요성을 인지하는 것입니다. 몇 번 만나보니 전체적으로 조금 이상하다고 느낀 사람은 실제로는 많이 이상한 사람입니다. 조금이라도 훌륭한 점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실제로는 매우 훌륭한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조금 이상한 사람을 절대로 선택하지 않습니다!"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잃어버린 이름 그리고 빼앗긴 민주주의”  (0) 2020.06.21
성난 얼굴로 투표장에 가자!  (0) 2020.04.15
한자로 영어를 정복하자!  (0) 2019.10.24
김정은과 조국  (0) 2019.09.14
보상 과 배상 차이   (0) 2019.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