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김기철의 아웃룩] 김원봉, 친일 경찰에게 뺨 맞고 월북?… 근거없는 說이 교과서에

최만섭 2020. 1. 15. 05:48

[김기철의 아웃룩] 김원봉, 친일 경찰에게 뺨 맞고 월북?… 근거없는 說이 교과서에

입력 2020.01.15 03:14

새 학기 고교 한국사 교과서, 해방 이후 김원봉 행적에 초점
월북 동기 엄격한 검증 없이 '~했다더라'식 수난설 제기
현대사 필자 중 75% 현직 교사 전교조 막강한 영향권 논란

김기철 학술전문기자
김기철 학술전문기자
올 3월 새 학기부터 쓸 고교 한국사 교과서(8종)는 문재인 대통령의 '코드'를 꿰뚫어 본 것 같다. 대통령이 존경한다는 김원봉을 앞다퉈 소개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인 2015년 8월 15일 "광복 70주년을 맞아 약산 김원봉 선생에게 마음속으로나마 독립 유공자 훈장을 달아 드리고 술 한잔 바치고 싶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런 대통령 뜻을 헤아린 국가보훈처는 작년 김원봉에게 건국훈장 서훈을 검토하다 중단했다. 북한 초대 내각에서 국가검열상을 지냈고 6·25전쟁 공로로 김일성에게 훈장까지 받은 사람이 어떻게 대한민국 건국훈장 서훈자가 될 수 있느냐는 반대가 거셌기 때문이다.

대통령 '코드' 맞춘 한국사 교과서

일제강점기 김원봉의 활약은 예전 교과서들도 주요하게 다뤘다. 의열단·조선의용대·임시정부 활동이 중심이었고 이 시기 그의 독립운동 업적은 충분히 평가할 만하다. 새 교과서는 일제강점기뿐 아니라 해방 이후 김원봉의 행적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 다르다. 미래엔·해냄 교과서는 김원봉이 해방 이후 '친일 경찰'에게 붙잡혀 수모를 겪었다고 썼다. 특히 미래엔 교과서는 '모멸감과 신변 위협에 시달린' 김원봉이 남북 협상에 참여한 후 북한에 머물렀고, 이후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해 고위직에 올랐다고 했다. 남쪽에서 친일 경찰에게 박해받았기 때문에 북으로 갔다는 것이다.

친일 경찰에게 수모당해 북행?

미래엔 교과서는 '남북에서 외면받은 비운의 독립운동가, 김원봉'(254쪽)이란 코너에 이렇게 썼다. '1947년 3월, 친일 경찰 출신의 미 군정청 경찰 노덕술에게 체포돼 뺨을 맞고 모욕을 당하였다. 충격에 빠진 김원봉은 "내가 일본 놈들한테도 이런 수모를 받은 적이 없는데, 해방된 조국에서 친일파 경찰 손에 수갑을 찼다"며 사흘 밤낮을 울었다고 한다.' 해냄 교과서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김원봉은 광복된 나라에 와서 약 20일간 친일 경찰 출신에게 붙잡힌 채로 수모를 당했다' '무혐의로 풀려난 후 전 의열단원 유석현에게 가서 꼬박 3일간을 울었다고 전해진다'고 썼다. 김원봉이 친일 세력에 희생당한 피해자라는 프레임을 씌운 것이다. 그가 '친일 경찰'에게 수모를 겪었기 때문에 북으로 갔다는 건 사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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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야당 대표 시절 보고 감동했다는 영화 '암살'에서 김원봉 역을 맡은 배우 조승우(왼쪽). /쇼박스
송건호의 책 '의열단'에 등장

이 이야기는 언론인 송건호가 1985년 낸 책 '의열단'에 소개되면서 널리 유포됐다. 김원봉이 '화장실에 있다가 일을 다 끝마치지도 못한 채 친일 역적 노덕술에게 수갑을 채여' 끌려갔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왜놈 등쌀에 언제 죽을지 모르겠다'며 울던 그는 1948년 4월 남북 협상 때 김구와 같이 월북한 후 돌아오지 않았다고 썼다. 송건호는 머리말에서 '특별히 새로 연구한 것은 없다'며 해방 직후 나온 소설가 박태원의 '약산과 의열단' '(의열단 부단장) 이종암전' 두 권을 토대로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박태원 책은 김원봉이 월북하기 전인 1947년 나왔고, 1970년 나온 '이종암전'은 이종암 동생이 후손들에게 전하기 위해 쓴 것으로 김원봉의 월북 이유를 밝혀줄 1차 사료는 아니다. 1984년 언론인 길진현이 쓴 '역사에 다시 묻는다'에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 이 책은 '이강훈·유석현 증언'이라고만 주를 달아 언제 어디서 누가 이런 증언을 들었는지 밝히지 않았다. 김원봉이 1947년 3월 미 군정 경찰에게 체포된 적은 있지만 뺨을 맞거나 고문을 당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학계에서는 이 사건을 김원봉의 월북과 연결하는 건 근거가 부족하다고 본다.

무정부주의자 정화암의 증언

김원봉과 중국에서 수십 년간 독립 투쟁을 함께한 무정부주의자 정화암(1896~ 1981)은 김원봉의 월북 동기를 달리 설명한다. 정화암은 '(김원봉이) 해방 직후 북한에 갔습니다만 그게 공산주의가 좋아서가 아닐 것'이라며 '그 사람은 기본적으로 정치인이다. 남한에 있어 보아야 정치적으로 큰 무엇이 없겠고, 지난날 관계했던 사람들 대부분은 이북에 있어 이북으로 갔을 겁니다'라고 증언했다. 원로 한국 현대사 연구자 이정식 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가 1967년 정화암을 인터뷰한 '혁명가들의 항일 회상'에 나오는 내용이다. 정화암은 김원봉이 자신이 이끌던 정치 세력인 '민족혁명당' '조선의용대' 출신이 많은 북으로 갔다고 설명한다.

미래엔·해냄 교과서는 김원봉의 '친일 경찰' 수난설을 '울었다고 전해진다' '울었다고 한다'고 썼다. 정확한 사실을 가르쳐야 할 역사 교과서에 '했다더라'식(式) 전언이 실린 것이다. 이런 걸 검증 없이 소개한 필자의 자질 부족과 검정 과정에서 걸러내지 못한 교육부의 직무 유기를 따져야 한다.

현대사 필자 4분의 3이 현직 교사

이번 한국사 검정 교과서의 해방 이후 현대사는 현직 교사들이 주로 썼다. 교과서 8종 현대사 필자 24명 중 75%인 18명이 중·고교 교사(전직 1명 포함)다. 대학교수는 6명뿐이다. 작년까지 쓴 한국사 교과서 8종은 현대사 집필자(17명) 중 현직 교사 비율이 65%(11명)였다. 교사 필자 비율이 더 올라갔다. 대학원을 다니거나 박사 학위를 받은 교사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1차 사료를 읽거나 최신 학계 성과를 반영할 수 있는 전문성은 떨어진다.

현대사처럼 정치적 대립이 첨예한 시기의 일을 다룬 교과서는 엄격한 학문적 훈련을 거친 전문가가 참여해야 한다. 특히 전교조의
막대한 영향권 아래 있는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이 현대사 서술까지 독점하는 것은 편향 논란을 빚을 수밖에 없다. 김일성이 일으킨 6·25전쟁에도 책임 있는 김원봉을 '친일 세력'의 희생자로만 소개하는 걸 학부모들이 수긍할 수 있을까. '남(南)은 친일파가 득세하고, 북(北)은 독립운동가가 선택한 나라'라는 식의 엉터리 사관을 학생들에게 가르쳐도 되는 건가.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1/14/202001140365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