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이 넘치는 베트남 모습, 적과도 손잡는 실용주의
메이지 시대 일본, 오늘의 베트남… 半세기 전 우리 모습에서 배워야
![김태훈 논설위원·출판전문기자](https://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912/17/2019121703498_0.jpg)
베트남 U-23 축구 대표팀이 동남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하던 지난 10일, 관련 기사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베트남은 좋겠다. 한국은 이렇게 열광할 일이 당최 없다." 맞는 말이다. 요즘 이 나라에 무슨 신나는 일이 있는가. 경제는 곤두박질치고 실업은 넘쳐나며 청년은 미래를 불안해한다. 반면 베트남엔 지금 흥이 넘친다. 마치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자"며 웅비의 도약대에 섰던 반세기 전 한국을 보는 것 같다.
나라가 흥하고 쇠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박항서 매직'은 베트남이 흥하는 이유를 웅변한다. 핵심은 내게 도움이 되면 어제의 적과도 손을 잡는 실용주의다. 베트남은 자신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눴던 나라의 축구 감독을 초빙해 지난해 스즈키컵에 이어 올해 동남아시안게임을 제패했다.
국제 정치에선 미국과 손잡았다. 베트남 수도 하노이 북서쪽에 자리 잡은 쭉박(Truc Bach) 호수는 베트남전 당시 미 해군 전투기 조종사였던 존 매케인 전 상원의원이 격추당해 추락한 곳이다. 베트남은 전투기 날개 형태의 바탕에 매케인이 굴욕적으로 두 손 든 모습을 새긴 조각상을 호수 앞에 세워 세계 최강국 전투기를 잡은 전과를 자랑했다. 그런데 작년 8월 매케인이 뇌종양으로 사망하자 이번엔 조각상 앞에 헌화하고 향을 사르며 고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미국과 벌인 전쟁으로 북베트남에서만 100만명 넘게 죽은 역사를 잊어서가 아니었다. 과거에 연연하기엔 북쪽 국경에 1979년 전쟁까지 치른 중국이 있었고, 가난을 벗어나려면 미국 시장도 필요했다. 마침 1973년 석방돼 귀국했던 매케인이 12년 만에 베트남을 방문했다. 전쟁 때 폭탄을 싣고 왔던 해군 조종사가 정치인이 되어 "베트남의 친구가 되고 싶다"고 하자 베트남은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우리도 베트남처럼 옛 원수와 손잡은 시절이 있었다. 국권을 빼앗겼던 나라에 찾아가 기술과 돈을 들여와 산업을 일으켰다. 지금 우리가 세계 20위 안에 드는 경제 대국으로 사는 건 국가 중흥이란 큰 꿈을 이루기 위해 상대의 가랑이 사이를 지나며 과하지욕(袴下之辱)을 무릅쓴 할아버지 아버지들 덕분이다.
일본은 본받을 역사와 본받아선 안 될 역사를 모두 가진 나라다. 메이지유신 직전 미·영·프랑스·네덜란드와 전쟁을 벌인 사쓰마번(가고시마)과 조슈번(야마구치)은 서양 함포에 영토가 불타버리자 앞선 기술을 배워야 한다며 적으로 싸웠던 나라들에 유학생을 보냈다. 내부의 적도 포용했다. 도쿠가와 막부의 해군 부총재 에노모토 다케아키가 메이지 정부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지만 대역죄로 다스리긴커녕 그를 풀어주고 해군경, 체신·문부·외무·농상무 대신으로 중용했다. 네덜란드에서 화학·지질학·국제법을 공부했으며, 영어·독어·불어까지 구사하던 당대 최고 인재의 쓸모를 두고 메이지 편이니 막부 편이니 따지지 않았다. 그랬던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앞두고선 서로 배척하고 죽이는 나라로 추락했다. 군부는 황도파와 통제파로 분열돼 동료 간에 암살을 자행했고, 미국과의 국력 차이를 들어 전쟁에 반대하는 여론엔 '친미파'라며 배신자 낙인을 찍었다.
박항서 감독의 베트남 축구팀이 14일 입국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