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자년 새해에 희망을 노래하자!
나는 60대 중반에 되어서야 비로소 인생의 화두는 내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섭리(攝理)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았다.
다스릴 섭(攝)자는 手(손 수)자와 聶(소곤거릴 섭)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聶(섭)자는 귀(耳-귀 이)를 중복해서 그린 것으로 작은 소리로 소곤거린다는 뜻이 있다. 소곤거리는 소리는 가까이하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기에 여기에 手(손 수)자를 결합한 섭(攝)자는 잘 들리지 않아 손으로 끌어당긴다는 뜻을 갖게 되었다. 理(다스릴 이)자는 ‘다스린다’나 ‘이치’를 뜻하는 글자이다.
나는 깨달음이란 섭리(攝理), 자연의 이치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고 이를 실천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김원수 법사님에 의하면, 선지식(깨달은 사람)이란 자기 자신을 분명하게 볼 수 있는 도인(道人)을 말하는바, 몸을 빠져나온 자신의 모습인 성리(性理)를 바라볼 수 있는 경지에 오른 사람이라고 명명한다. 이러한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 수행자는 섭리(攝理)는 나의 뜻이 아니라 신의 뜻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해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모든 사유의 시작은 “나는 모른다.”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모른다.”는 의미는 지식의 유무를 뜻하는 무식(無識)하다는 뜻이 아니라, 모든 선입견을 버린다는 뜻이며 한편으로는 어린아이 같이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을 뜻한다. 지혜(知慧)롭고 겸손한 사람은 난관에 봉착했을 때마다 “나는 모름니다. 모든 난제를 신(神)에게 받치나이다”라고 기도를 드리면서 신(神)이 그 답을 줄 때까지 기다릴줄 아는 사람이다.
“나는 모른다,”라는 화두는 평범한 사람을 지혜(知慧)로운 사람, 깨친 사람으로 연결해 주는 징검다리다. 지혜(知慧)의 슬기로울 혜(慧)자는 彗(비 혜)자와 心(마음 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빗자루로 마음을 깨끗하게 청소한다는 뜻이다. “나는 모른다”는 마음의 빗자루인 것이다.
따라서 모든 문제를 “나는 모른다.”라는 아주 겸손한 자세로 접근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사회는 그만큼 아름다워질 것이다. 집수리를 포기하고 집을 새로 건축 행위만이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최대공약수인 것이다.
트럼프를 제외한 미국의 역대 대통령 대부분이 성인(聖人)의 경지에 오른 인격자라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국가를 경영하는 지도자의 최대 덕목(德目)은 지식이 아니라 깨달음이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지도자는 공산주의, 사회주의 이념에 사로잡혀서 분별력을 상실하고 국민의 의사와 신(神)의 뜻에 반하는 국가정책을 정해놓고서 그 타당성을 합리화시키기 위하여 그의 추종자들을 사주하여 국민을 겁박하고 있다. 빗자루로 이념을 쓸어버리고 세상을 볼 것을 충고드린다.
나는 아주 작은 중소기업의 업무 이사로 근무하면서, “나는 모른다.”를 화두로 기업을 문화를 긍정적이고 활기차게 바꾸고, 회사 매출을 늘리는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
직위나 직책과 관계없이 일단 어떤 의견을 제안하면, 이 사업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토론을 벌였다. 직원들은 처음에는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해보니까 업무 향상에 별 도움이 안 된다면서, 창의적인 제안에 대하여 매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나는 업무를 수행하는데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문제점을 자기들 마음대로 예단한 후에, 그 문제점을 해결할 복안이 있느냐고 비아냥거리며 내게 시비를 거는 직원들의 태도를 비판하면서, 나의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나는 위암으로 4년간 병마와 싸우면서 많은 것을 잃었다. 죽음보다는 통증이 더 견디기 힘들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고, 천신만고 끝에 미 대사관 용역업체에 일자리를 구했다.
나는 지난 사 년간 “나는 모른다.”를 화두로 매일 명상에 잠겼다. 콧구멍으로 길게 숨을 길이 키면서 작은 우주가 내 몸으로 들어와 오장육부를 거쳐서 단전에 이르러 작은 왕국을 건설한다는 상상을 했다. “나는 모른다.” “나는 모른다.” 머리를 하늘로 향한 채, 숨이 가는 길을 쫓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나의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새벽 동녘에 해가 떠오르듯이 환한 기운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원(圓)을 그리는 연습을 했다. 내가 아는 미국 유수 회사의 사장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나는 가족과 친구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중요한 업무를 맡기는 당신의 경영방침에 많은 감동을 하였습니다. 나는 이곳 한국에서 당신의 경영철학을 실현하고 싶습니다. 당신 회사의 한국 대리인으로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가 나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를 기원했다. 몇 번의 우여곡절 끝에 나의 이러한 노력은 수포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에도 전에 알던 지인으로부터 미국대사관 입찰을 하는데, 도와줄 수 없냐는 부탁을 받았다. 그 당시 미 대사관 경비로 야간근무를 마치고 아침에 잠을 자야 함에도, 이를 악물고 종일 그의 일을 아무런 대가 없이 성심껏 도와줬다.
약 이주 후에 나는 미 대사관 입찰이 낙찰되었다는 기쁜 소식과 함께 이왕이면 회사에 와서 일해줄 수 없느냐는 제의까지 받게 되었다.
또 하나의 작은 기적은 직원 간의 갈등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우리는 살다가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을 때, 임의로 부정적인 결정을 내린 후에 그에 맞는 스토리텔링을 만드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사고의 과정을 추구하다 보면, 인생은 슬픈 영화로 정착되기가 십상이다.
나의 충심 어린 경험담을 들은 직원들은 모든 결정을 신(神)에게 맡기기로 나와 약속하였다. “모든 문제를 과거의 경험이나 관습에 따라 쉽게 결정하지 말자! 항상 제로베이스에서 생각하는 습관을 기르자!”라는 것을 입에 달고 지내다 보니, 조직은 의외로 활성화되었고 직원 각자의 의견 의견이 존중되는 성숙한 민주주의 조직이 되어갔다.
나는 깨달음의 문턱을 넘었다고 나 자신에게 선언한 이후에, 내 인생에 대한 대단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세상일도 잘 풀리기 시작했다고 감히 고백하고자 한다. 이만하면 성공한 삶이 아니겠는가? 만약 당신이 “나는 모른다.”를 2020년 화두로 삼는다면, 당신도 성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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