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친구여! 인제 그만 슬픔을 내려놓으시게

최만섭 2018. 11. 18. 15:23


친구여인제 그만 슬픔을 내려놓으시게


지난 9월에 전에 같은 회사에 근무했던 친구가 대장암 수술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을 찾았다. 나도 그가 입원한 병원에서 위암 수술을 받고, 그 후유증으로 폐에 물이 차서 갈비뼈 사이로 구멍을 뚫어 호수를 끼운 후에 이를 폐로 연결하여 고인 물을 몸 밖 호수 주머니로 빼어내는, 이른바 포크테일( Pork Tale)’ 시술을 두 번이 나 받았다. 물이 폐에 차오를수록 서서히 숨이 막혀오는 공포는 마치 수렁에 빠진 몸뚱이가 진흙 속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가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는 것과 같은 지독한 공포 그 자체였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고 할까? 나는 그가 겪었을 두려움과 공포를 상상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암 병동의 문을 열었다. 하얀 바탕에 초록 줄무늬가 새겨진 환자복을 입고 호흡기를 차고 있는 모습을 보니 3년 전에 암과 치열하게 싸우다 잠시 지친 몸을 추수였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대장암 수술 결과가 좋아서 두세 번의 항암 치료만 마치면 건강을 회복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앞으로는 정말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겸손한 자세로 살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했다.

 

병원을 다녀온 지 약 한 달 후에 나는 그와의 전화통화에서 폐로 악성종양이 전이되었다는 마른벼락을 맞는 소식을 접했다. 폐암은 빠르게 퍼진다는데 병원에서 수술을 미루고 있다면서 의사를 원망하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의사가 치료를 포기할 만큼 그의 폐는 이미 심각하게 손상되었으나 그 자신은 코앞에 닥친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태임을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세상과 싸움에서 패배에 익숙해져서 갔고, 그 패배의 원인은 내 부덕의 소치라고 자책하기 시작했다. 회사를 사직할 때도 집사람과 다툼을 벌일 때도 나는 무조건 그들에게 두 손과 두 발을 다 들었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았다고 수백 번 되뇌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은 항상 편치 않았다. 마치 1,500cc 자동차에 3,000cc 엔진을 부착하고 고속도로를 질주하다가 과부하로 차체가 불에 타버리는 것처럼, 내 마음의 기저, 무의식 세계에서는 내가 결정한 모든 행위와 결정을 뒤집었고, 이러한 심적 갈등은 위에 악성종양을 발병케 했을 것이라는 추론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가 대장암과 폐암으로 사형선고를 받게 된 이유도 역시 세상과 싸움에서 패배를 잘못 인식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60대 노인이 될 때까지 자체 부자유자인 누나를 위해서 결혼을 거부했다. 누나를 요양 시설에 보내고 장가를 들라는 주위 사람들의 권유를 단호하게 거부하고 집안 살림을 하면서 직장생활을 하는 고된 생활을 악착같이 견뎌냈다. 세상의 패배자가 되더라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누나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스스로 다그쳤다. 자신에게 희생을 강요하면서 누나에게 전력투구해야 한다는 지나친 의무감은 심적 고통으로 이어졌다.

 

그는 중병에 걸리고 나서야 누나를 요양원에 보내서 스스로 홀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하는 것이 그와 누나 모두를 위하는 올바른 길임을 깨닫고 후회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가 이 세상을 떠나면 누가 사지를 못 쓰는 이 가련한 여인을 돌본단 말인가? 또한 이 늙은 여인은 평생 믿고 의지해온 유일한 피붙인 동생을 잃은 슬픔과 충격을 어떻게 견뎌낸단 말인가?

 

결코 남을 해 코자 한 적이 없으며 나름 정의롭고 인간답게 살려고 몸부림친 결과가 암이라는 중병이라니, 하느님이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나는 조금씩 어둡게 변해가는 세상을 바라보면서 무조건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시간이 나는 대로 그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참선에 들어선 내 눈 안에 그려지는 그의 모습 속에서 내 마음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했던 진실한 마음은 나의 진짜 마음이 아니라 아상(我想) 이었으며, 나의 잠재의식 속에는 글을 써서 명예를 얻겠다는 탐심(貪心)과 꿈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한 짜증을 내는 진심(瞋心)과 나름대로 수작이라고 생각하는 수필 몇 편을 창작했다는 오만한 치심(癡心)으로 가득 차 있었다.

 

훈습(薰習)과 기도가 수반되는 않는 착한 마음은 아상(我想)일 뿐 진짜 마음이 아니며, 모든 중병의 원인은 진짜 마음속에 내재한 탐진치(貪瞋癡)가 표출된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대한 부처님의 답변이었을까? 우연히 김원수 법사의 절체절명의 위기 탈출법이라는 설법을 듣고 그에게 보내줄 마지막 편지를 작성할 수 있었다.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모든 형상 있는 것은 모두가 허망하니 모든 형상을 본래 형상이 아닌 것을 알면 곧 진실한 모습을 보게 된다는 의미다. 김원수 법사 의하면 모든 고난과 위기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며 꿈과 같으니 이를 분명히 반복해서 인식하면 우리가 직면한 고난과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위기를 실제로 받아들이는 한 위기는 우리에게 고통이며 넘지 못할 난관일 수밖에 없다.

 

꿈속에서 한강위에 놓인 외길철도를 홀로 중간 정도 걸어가도 있을 때, 갑자기 빠른 속력으로 달려오는 기차와 맞부닥쳤을 경우에 생명을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꿈에서 깨어나는 것뿐이다. 혹자는 어떻게 실제로 발생한 위기를 꿈으로 받아들인단 말이요?”라고 물을 것이다. ‘믿음과 선택이 그 답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가 꿈이라는 믿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위기탈출의 능력이 배가되며 인생이 즐겁고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체험을 통해서 깨달았다.

 

나같이 생사의 문턱을 몇 번 드나든 경험이 있는 사람은 종교적인 믿음 없이는 행복, 마음의 평화를 결코 얻을 수 없다는 만고의 진리를 자연히 터득하게 된다. “친구여! 인제 그만 슬픔을 거두시게. 본래 삶과 죽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분별심이 만들어낸 착각이라고 믿고 또 믿으시게. 인생은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고 하지 않는가? 꿈에서 깨어나면 그대는 살아날 수 있지 않겠는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신도 부자로 살 수 있다.   (0) 2019.12.04
기해년(己亥年) 새해에 ‘임중도원[ 任重道遠 ]’을 생각한다.  (0) 2019.01.01
경비원의 눈물  (0) 2018.06.29
유언장   (0) 2018.03.25
몸과 마음 사이  (0) 2018.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