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0.01.01 03:01
2020 庚子年, 쥐를 말하다
"쥐다!"
우당탕 요란한 굉음이 나더니 안방 천장의 축 처져 터진 도배지 틈으로 쥐 한 마리가 솜이불 깔린 방바닥으로 떨어졌다. 혼비백산한 생쥐는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잠자리 들려던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며 의자며 책상으로 뛰쳐 올랐다. 느닷없는 한밤의 쥐 소동은 1960년대의 한국, 특히 농촌에선 드물지 않은 풍경이었다.
당시 쥐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이자 공공의 적. '미키마우스'라든지 '톰과 제리' 같은 만화영화 속 쥐들이야 귀여웠지만 내게도 일상의 쥐는 혐오의 대상이었다. 그렇지만 어른이 되면서 쥐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쥐는 특유의 부지런함으로 풍요와 희망을 의미했고, 어둠 속에서 미래를 예지하고 기회를 엿보며, 무엇보다 각종 실험에 동원돼 인류 발전에 기여하는 희생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실은 내가 쥐띠라, 은연중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진짜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저만치 혼자 피어 있는 흰 도라지꽃 같았던 엄마. 엄마는 서울 변두리 '킹스타 양장점'의 재단사 겸 주인이었다. 미싱사며 '오바로꾸' 시다 등 언니 네댓 명과 열심히 옷을 지었다. 양장점과 붙어 있는 살림채엔 삼대(三代)가 모여 살았고 그 대식구의 가장이기도 했다. 서대문 무악재의 아카시아꽃 향기가 환장할 만큼 짙어지는 여름이면 양장점 쇼윈도의 누추한 형광등 아래엔 불빛을 보고 날아든 나방 떼가 푸득거리며 수북이 쌓였다. 킹스타 양장점은 이름과 달리 크게 반짝이지 못한 채 저물었다. 쉰세 살, 고단함에 지쳤는지 엄마는 길지 않은 생을 마치셨다. 쥐띠 엄마는 아마도 밤에 태어나 열심히 움직이는 밤쥐였을 것이다.
아버지도 쥐띠다. 두 분은 동갑이다. 젊음의 대부분을 고시 준비생 신분으로 보내셨다. 큰 존재감 없이 살다 뉘엿뉘엿 해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듯 여든두 살에 고요히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어쩌면 낮에 태어나 휴식하고 있는 편안한 쥐였을 것 같다.
우당탕 요란한 굉음이 나더니 안방 천장의 축 처져 터진 도배지 틈으로 쥐 한 마리가 솜이불 깔린 방바닥으로 떨어졌다. 혼비백산한 생쥐는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잠자리 들려던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며 의자며 책상으로 뛰쳐 올랐다. 느닷없는 한밤의 쥐 소동은 1960년대의 한국, 특히 농촌에선 드물지 않은 풍경이었다.
당시 쥐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이자 공공의 적. '미키마우스'라든지 '톰과 제리' 같은 만화영화 속 쥐들이야 귀여웠지만 내게도 일상의 쥐는 혐오의 대상이었다. 그렇지만 어른이 되면서 쥐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쥐는 특유의 부지런함으로 풍요와 희망을 의미했고, 어둠 속에서 미래를 예지하고 기회를 엿보며, 무엇보다 각종 실험에 동원돼 인류 발전에 기여하는 희생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실은 내가 쥐띠라, 은연중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진짜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저만치 혼자 피어 있는 흰 도라지꽃 같았던 엄마. 엄마는 서울 변두리 '킹스타 양장점'의 재단사 겸 주인이었다. 미싱사며 '오바로꾸' 시다 등 언니 네댓 명과 열심히 옷을 지었다. 양장점과 붙어 있는 살림채엔 삼대(三代)가 모여 살았고 그 대식구의 가장이기도 했다. 서대문 무악재의 아카시아꽃 향기가 환장할 만큼 짙어지는 여름이면 양장점 쇼윈도의 누추한 형광등 아래엔 불빛을 보고 날아든 나방 떼가 푸득거리며 수북이 쌓였다. 킹스타 양장점은 이름과 달리 크게 반짝이지 못한 채 저물었다. 쉰세 살, 고단함에 지쳤는지 엄마는 길지 않은 생을 마치셨다. 쥐띠 엄마는 아마도 밤에 태어나 열심히 움직이는 밤쥐였을 것이다.
아버지도 쥐띠다. 두 분은 동갑이다. 젊음의 대부분을 고시 준비생 신분으로 보내셨다. 큰 존재감 없이 살다 뉘엿뉘엿 해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듯 여든두 살에 고요히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어쩌면 낮에 태어나 휴식하고 있는 편안한 쥐였을 것 같다.
나도 쥐다. 내가 태어났을 때 "집안에 쥐가 셋이면 잘산다"며 어른들이 무척 좋아하셨다고 한다. 엄마는 그런 속설을 굳게 믿으셨고 어린 쥐인 나 역시 은근 기대를 했다. 그래서 지금은 보잘것없어도 언젠가 새카만 밤하늘의 왕별처럼 빛날 것이라며 다짐하고 또 기도했다. "잘살게 해주세요, 꼭!"
지난 내 삶의 궤적은 쥐에 관한 여러 비유와 닮아 있다. 독 안에 든 쥐처럼 답답한 현실이지만 도시 한 구석에서 쥐 죽은 듯 조용히 스스로를 유배시켜 화가의 꿈을 키웠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쥐처럼 그리고 또 그렸다. 쥐꼬리 같은 실력은 조금씩 나아졌고, 쥐뿔도 없던 남루한 형편도 차츰 펴졌다. 아침에 출근하는 직장 생활은 해본 적 없이 쥐처럼 낮엔 잠에 취해 있었고 밤엔 일하며 뒷골목을 헤매고 다녔다.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다고 하던가. 결국 나는 화가가 되었다.
새해는 쥐의 해다. 그것도 흰쥐다. 쥐는 십이지(十二支) 중 맨 첫째고 흰쥐는 쥐 중에서도 우두머리 쥐다. 힘도 세지만 지혜롭다고 한다.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힘세고 영특한 쥐라고 한다. 또한 새해인 경자년(庚子年)의 뜻은 큰 바위같 이 꿋꿋하며 바위 사이로 콸콸 물이 솟아나 천지에 싹 틔우는 생명력 충만한 해라 전해진다. 그야말로 크게 길한 해다.
경자생인 나는 비로소 환갑을 맞이한다. 비록 청춘은 옛사랑의 그림자처럼 희미해진 황혼기에 들어섰지만, 다시 눈망울 반짝이는 어린 쥐로 돌아가 기도한다. "과분한 사랑과 인연에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세상입니다!"라고…. 새날이 벅차게 다가온다.
지난 내 삶의 궤적은 쥐에 관한 여러 비유와 닮아 있다. 독 안에 든 쥐처럼 답답한 현실이지만 도시 한 구석에서 쥐 죽은 듯 조용히 스스로를 유배시켜 화가의 꿈을 키웠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쥐처럼 그리고 또 그렸다. 쥐꼬리 같은 실력은 조금씩 나아졌고, 쥐뿔도 없던 남루한 형편도 차츰 펴졌다. 아침에 출근하는 직장 생활은 해본 적 없이 쥐처럼 낮엔 잠에 취해 있었고 밤엔 일하며 뒷골목을 헤매고 다녔다.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다고 하던가. 결국 나는 화가가 되었다.
새해는 쥐의 해다. 그것도 흰쥐다. 쥐는 십이지(十二支) 중 맨 첫째고 흰쥐는 쥐 중에서도 우두머리 쥐다. 힘도 세지만 지혜롭다고 한다.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힘세고 영특한 쥐라고 한다. 또한 새해인 경자년(庚子年)의 뜻은 큰 바위같
경자생인 나는 비로소 환갑을 맞이한다. 비록 청춘은 옛사랑의 그림자처럼 희미해진 황혼기에 들어섰지만, 다시 눈망울 반짝이는 어린 쥐로 돌아가 기도한다. "과분한 사랑과 인연에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세상입니다!"라고…. 새날이 벅차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