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쓴소리 유튜브'에 조회수 62만… 2030, 꼰대는 싫지만 멘토는 필요하죠

최만섭 2019. 12. 28. 09:51

'쓴소리 유튜브'에 조회수 62만… 2030, 꼰대는 싫지만 멘토는 필요하죠

조선일보
입력 2019.12.28 03:00

[아무튼, 주말] 꼰대와 멘토 차이 2000명이 응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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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안병현
"내가 너희한테 부탁하는 건, 뭐든 정말 후회 없이 해야 해. 다시 기회를 줘도 내가 이렇게는 못 할 거야. '아 또 재수하느니 죽어버릴래'라는 생각이 들 때까지 하면…."

수능 사회탐구 영역 인터넷 강의 도중 강사가 이런 말을 한다. 그런데 이 강의를 듣는 건 고3 수험생이 아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10년이 지난, 5년 차 직장인 이소연(가명·29)씨다. 이씨는 "수능 강의 중 나오는 내용이지만 직장생활 하는데도 적용할 수 있는 조언이 많아서 도움이 된다"며 "심리적으로 위축돼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이 강의를 찾아 듣는다"고 했다. 이 영상의 제목은 '○○쌤의 쓴소리'.

○○쌤은 사교육 업계에서 소위 말하는 '일타 강사'다. '일타'란 담당 과목에서 학원 내 매출 1위를 기록한 강사를 칭하는 사교육 업계 은어. ○○쌤이 수능 강의 도중 쓴소리하는 내용만을 편집해 유튜브 등 동영상 사이트에 올린 것이 '○○쌤의 쓴소리'다. 이 영상의 조회 수는 현재 62만회에 달한다.

흔히 2030으로 대변되는 밀레니얼 세대는 잔소리를 싫어한다고 생각한다. 잔소리하는 어른은 다 '꼰대'로 취급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밀레니얼 세대도 필요한 잔소리, 심지어 쓴소리를 스스로 찾아 듣는다. 꼰대는 싫지만, 이들에게도 여전히 멘토는 필요하다.

꼰대와 멘토를 나누는 기준은 무엇일까. 꼰대와 멘토를 둘러싼 밀레니얼 세대의 속마음을 '아무튼, 주말'이 들여다봤다. SM C&C 플랫폼 '틸리언 프로(Tillion Pro)'를 통해 20~30대 남녀 2009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도 곁들였다.

꼰대는 50대 남자?

2030 응답자 10명 중 7명(70%)은 '주변에 꼰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성별로 따졌을 땐 '남자 꼰대'(50%)가 '여자 꼰대'(13%)보다 많았다.

최근에 결혼한 직장 5년 차 박선영(가명·31)씨는 일을 다 끝내고 정시에 퇴근했다가 남자 부장에게서 "그렇게 살면 회사에서 성공 못 한다"는 조언(?)을 들었다. 그 말을 한 부장은 다른 직원들과 단합을 꾀한다며 퇴근 후 맥줏집으로 떠났다. 회식 자리에서는 '아이는 언제 낳을 거냐' '아이는 엄마가 키우는 게 좋다'는 말이 수시로 날아든다. 박씨는 "남성은 육아나 가정에서 아무래도 좀 더 자유롭다"며 "애초에 사회가 남성에게 주는 제약이 적다 보니 눈치 안 보고 자기 소리를 내는 남자가 더 많은 것 같다"고 했다. 대학원생 김성호(가명·29)씨도 비슷한 생각이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 교수나 직장 상사 등 꼰대가 되기 쉬운 사회적 위치에 남자가 더 많잖아요. 그렇다 보니 상대적으로 남자 꼰대가 더 많은 것처럼 보이는 것 같아요."

그러나 10명 중 3명 이상(37%)이 '성별은 크게 관계없다'고 했다. 직장 생활 10년 차인 김지연(가명·36)씨는 "이해해 줄 거라 믿었던 여자 상사가 오히려 '나 때는 너보다 더 심했다' '네가 여자인데 남자 선배한테 잘해야지'라며 기존 악습을 더 심하게 강요했다"며 "꼰대와 성별은 크게 상관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나이별로는 어떨까. 2030이 생각하기엔 50대(35%) 중에 꼰대가 가장 많았고, 다음이 40대(21%)였다. 실제 우리 사회에서 '팀장님' '부장님'으로 많이 활동하는 연령대다. 직장인 조모(33)씨는 "아무래도 자신이 살아온 세계관을 주입하려고 하는 사람이 꼰대라는 점에서 나이가 영향을 주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5명 중 1명(20%)은 '나이는 상관없다'고 했다. 실제 70대(4%)보다 30대(7%) 중에 꼰대가 더 많다는 답이 나왔다. 말 그대로 '젊은 꼰대'다. 조씨는 "이들은 자신 세대가 처한 상황에 대해 어떠한 비판의식 없이 기성세대의 시선을 그대로 답습해 이를 더 모질게 주장한다"며 "그런 점에서 젊은 꼰대가 더 싫다"고 했다.

직장 생활 2년 차인 이민정(가명·28)씨는 직장에서보다 대학생 때 꼰대를 더 많이 만났다. "대학생 때 과대(표) 오빠가 '대학 생활에서 성공하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며 대외 활동, 학과 생활 등 자기 기준에 맞는 것을 강요했거든요. 안 따르면 대학 생활 즐길 줄 모른다며 은근히 비난하고요. 오히려 지금 직장에서는 40대, 50대 부장님들도 다들 배려하며 일하는 분위기라 좋아요."


과거 얘기만 하는 사람이 꼰대?

"라떼는 말이야~."

최근 젊은 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얻은 말이다. "나 때는 말이야"의 언어유희로, 이 말을 자주 하는 중장년층을 풍자한 것이다. 이는 꼰대와 멘토를 나누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꼰대는 자신의 과거만을 말하고, 멘토는 미래를 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어떤 사람을 꼰대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때 '과거 얘기만 하는 사람'을 꼰대라 여기는 경우는 12%에 그쳤다.

공기업에 다니는 이승훈(가명·30)씨는 "회식 자리에서 '나 때는 말이야 휴일도 없이 일했어'라고 얘기한다고 그 사람을 당장 꼰대라고 하지는 않는다"면서 "이 말을 불합리한 지시에 악용할 때 '꼰대'가 된다"고 했다. 일반적인 오해와 달리 잔소리가 많은 사람(11%), 나이가 많은 사람(6%)을 꼰대라 생각하는 경우도 적었다. 나이 많고, 잔소리한다고 젊은 사람들이 무조건 '꼰대'라고 여기지 않는다.

대신 2030세대 10명 중 6명 이상(65%)이 '자기 생각만 고집하는 사람'을 꼰대로 꼽았다. 이씨는 "직장 상사가 툭하면 '그렇게 하면 네 경력에 좋지 않다'고 하는데, 가족과의 시간이나 건강을 챙길 틈도 없이 일만 하다 쓸쓸하게 퇴직하는 게 성공한 경력인지 반문하고 싶다"며 "다들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다른데, 자기만 옳다고 생각해 이를 끝없이 주입하는 사람이 '꼰대'"라고 했다.

같은 내용이라도 '말하는 방법'에 따라서 꼰대와 멘토가 나뉜다. 가장 많은 응답자(39%)가 꼰대와 멘토의 가장 큰 차이로 이를 꼽았다. 실제 일타 강사들은 학생들이 강의를 잘 듣게 하기 위해 목소리 톤이나 발성 등을 끝없이 연구한다. 화법뿐 아니라 '지금 너의 상황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한다.

직장인 서동희(가명·31)씨는 "아무리 옳은 얘기라도, 윽박지르고 가르치려는 듯이 얘기하면 누가 받아들이고 싶겠냐"며 "'쓴소리'라서 싫어하는 게 아니라 쓴소리를 하는 방식이 싫은 것"이라고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꼰대와 멘토의 차이'로 가장 많이 꼽히는 것도 이 부분이다. 명령하듯 말하거나, 자기 위주로 말하면 꼰대. 상대방 반응을 살피며 얘기하면 멘토다. 꼰대는 폭언과 고성으로, 멘토는 칭찬과 권유로 상대의 행동을 바꾼다. 꼰대는 '투머치토커(말이 너무 많은 사람)'란 말도 있다. 상대의 잘못을 지적할 때는 간략하게, 조언을 구하지 않은 사생활에 대해선 참견하지 않는 게 좋다.

'투머치토커'인 꼰대는 정작 다른 사람의 얘기엔 귀를 닫는다. 2030 세대 4명 중 1명이 멘토와 꼰대의 차이점으로 '내 말을 경청하는지 여부'(25%)를 꼽았다. 어떤 사람이 멘토라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도 '조언을 잘해주는 사람'(37%) 다음으로, '내 말을 경청하는 사람'(33%)이 뽑혔다.

꼰대라는 말을 방패로 삼지 않길

그렇다면 멘토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2030은 책 등 인쇄매체(33.0%)에서 멘토를 가장 많이 찾는다고 했다. 그다음이 '일타 강사의 쓴소리' 같은 영상매체(27%)다. 이어 회사(15%), 가정(13%), 학교(9%) 순이었다. 언뜻 보면 적은 것 같지만, 여전히 3명 중 1명 이상이 오프라인 공간에서 멘토를 만난다는 얘기다. 특히 직장 상사는 모두 꼰대로 여길 것 같았는데, 가정·학교보다 직장에서 멘토를 더 많이 만났다.

대기업에서 일하는 송모(27)씨는 "입사 1년 차 때 만난 부장님처럼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며 "잘못이 생기면 항상 자신이 먼저 나서고, 팀 내부에서는 혼을 내더라도 외부에 나가면 팀원들 칭찬만 하시던 분"이라고 했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김은경(가명·27)씨는 영원한 잔소리꾼인 '부모님'이 인생의 멘토라고 했다. "가부장적이고 잔소리가 많으시지만, 아버지가 우리를 키우려 분투한 노력을 20년간 봐 왔거든요. 자신이 잠 못 주무시고, 식사 제때 못 하시며, 투잡 스리잡 뛰는 모습을 봤기 때문에 아버지의 잔소리가 우리를 사랑해서 하는 말인 걸 알아요."

2030세대 70%는 여전히 "인생에서 멘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주변에 꼰대가 있다'(70%)고 생각하는 만큼이었다. 27세 송씨는 '꼰대에게 바라는 것'으로 다음을 얘기했다. "꼰대라고 자칭하며 더는 자신의 행동을 방패 삼지 않기를." 당신도 꼰대가 아닌 멘토가 될 수 있다.


"요즘에는 '역꼰대' '젊은 꼰대'가 더 문제다"

英BBC 'Kkondae' 오늘의 단어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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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는 지난 9월 23일 오늘의 단어로 Kkondae를 선정했다. 꼰대를 한국어 발음 그대로 옮긴 것이다./BBC 페이스북 캡처
BBC는 지난 9월 23일 오늘의 단어로 Kkondae를 선정했다. 꼰대를 한국어 발음 그대로 옮긴 것이다./BBC 페이스북 캡처
과거에도 ‘꼰대’란 말이 없었던 건 아니다. 주로 권위적인 사고를 가진 아버지나 선생님을 비하하는 은어였다. 90년대 소설과 영화를 보면 친구의 아버지를 ‘꼰대’라 부르거나, 담임선생님을 ‘꼰대’라 칭하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2000년 이후부터 ‘그 아저씨는 완전 꼰대야’처럼 권위주의적이거나 잔소리를 많이 하는 등 상대의 특징을 잡아 비하하는 표현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아버지나 선생님을 꼰대라고 하는 경우는 이제 드물다. 대신 2010년 무렵부터 직장에서 이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

꼰대의 어원에 대해서는 이런 가설이 있다. ‘주름이 많다(나이가 많다)’는 의미인 ‘번데기’의 경상도 방언인 꼰데기에서 왔다는 설이다. 또 나이 든 세대의 상징인 ‘곰방대’를 줄인 말이라는 설도 있지만, 워낙 은어로 사용되는 용어인 만큼 확인하기는 어렵다.

‘꼰대’는 해외에도 알려져, 지난 9월 영국 BBC방송은 ‘Kkondae’를 ‘오늘의 단어’로 선정했다. 꼰대를 한국어 발음 그대로 옮긴 것이다. 그 뜻으
로는 ‘자신이 항상 옳다고 믿는 나이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최근에는 꼰대란 말이 너무 무분별하게 쓰이면서 ‘역꼰대’란 말이 나오기도 한다. 나이 든 모든 연장자나 윗사람을 꼰대로 규정하고, 그들과 소통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젊은 세대를 칭하는 말이다. 이들은 기본적인 예절이나 도덕적인 규범 등을 조언하는 것도 꼰대가 하는 짓이라며 비하하고 귀를 막는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2/27/201912270207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