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내 속에 너, 네 속의 나' 깨닫는 것이 수행

최만섭 2020. 1. 10. 05:15

'내 속에 너, 네 속의 나' 깨닫는 것이 수행

조선일보

['깨어남의 시간들' 펴낸 이강옥 교수]

송광사서 시작한 20년 참선 기록… 동료 숨소리도 수행 도구로 삼아
"수행법·단계 두고 말 많지만 부처님 가르침대로 언행일치… 최고의 깨달음이겠지요"

이강옥 교수가 수행하고 경전 공부하면서 느낀 점을 적은 일기.
이강옥 교수가 수행하고 경전 공부하면서 느낀 점을 적은 일기.

참선 수행은 그의 오랜 꿈이었다. 대학생 때 잠시 출가한 적도 있다. 박사 학위를 받고 경남대와 영남대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도 꿈을 잊지는 않았다. 아내가 유학한 11년 동안 혼자 아이를 키운 그는 아내가 귀국하자 2001년 여름 송광사 여름수련회에 참가하면서 그 첫걸음을 뗐다. 영남대 이강옥(64) 교수다.

그는 20년에 걸친 자신의 수행 체험기를 모아 최근 '깨어남의 시간들'(돌베개)이란 책으로 발간했다. 책에는 송광사(2001), 거금도 송광암(2003), 미국 롱아일랜드(2010), 부산 안국선원(2012), 봉화 금봉암(2017), 홍천 행복공장 무문관(2018)에서 수행한 체험이 오롯이 담겼다. 이 교수는 "수행을 하면서 느꼈던 환희심의 기록"이라 했다.

매번 수행 때마다 몸과 마음의 변화를 꼼꼼하게 기록했다. 함께 좌선하는 동료들의 숨소리, 코 고는 소리 하나도 놓치지 않고 수행 도구로 삼았다. '관찰 수행'이다. '아침에 일어나 좌선했다. 졸음이 몰려오곤 했지만 잘 견제했다. 가짜 나를 걷어내고 진짜 나를 찾아, 중생에서 부처로 나아가라는 가르침을 떠올렸다'(2003년 7월)는 등의 일기 조각들이 모여 책이 됐다. 문청(文靑)이었던 덕에, 독자들은 책장을 넘기며 산사(山寺)의 선방(禪房) 혹은 미국 대서양 바닷가에서 좌선하는 듯한 느낌도 받는다.


송광사 여름수련회가 입문이었다면 이후는 심화 과정이다. 교환 교수로 미국 롱아일랜드에 머물 때는 일본 조동종 계열의 수행을 하는 서양 사람들과 함께했다. 바닷가에서 돌 하나를 돌려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10여명이 손에서 손으로 전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돌은 따뜻해졌다. 그 온기는 도반(道伴)들의 지혜와 신심이었다. 부산 안국선원 집중 수행 과정에서는 수불 스님으로부터 '인가(印可)'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이를 '깨달음을 얻었다'는 허가가 아닌 '더 열심히 하라는 격려' 정도로 받아들인다. "미국에서 숭산 스님에게 인가받았다는 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다른 사람들에게 3배(拜)를 강요하더군요. 자비심보다는 아만(我慢)이 느껴졌습니다."

이강옥 교수는 “수행을 하면서 성찰과 참회를 통해 화, 미움, 불만이 생겨나지 않게 됐다”며 “매일 10분씩이라도 수행하면 일상생활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강옥 교수는 “수행을 하면서 성찰과 참회를 통해 화, 미움, 불만이 생겨나지 않게 됐다”며 “매일 10분씩이라도 수행하면 일상생활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대부분의 참선 수행은 묵언(默言)으로 이뤄진다. 그는 묵언을 하면서 '우리 시대 말의 타락'을 떠올린다. 말이란 대상을 정확하게 지칭하거나 진실한 의미를 담아야 하는데, 우리의 말은 그런 전제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온갖 걱정 번뇌가 많았던 제가 수행을 통해 일상이 달라졌다"고 했다. 단적으로 화를 내지 않게 됐다고 한다. 운전 중 누군가 갑자기 끼어들어도 놀라기는 하지만 '무슨 사정이 있겠지' 하며 이해하게 됐다. '내 속에 너, 네 속의 나'를 느끼게 됐고 남을 사랑하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것임을 알게 됐다.

책에는 수행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내 방식이 옳다'며 다투는 모습도 나온다. 재가자뿐 아니라 출가자 사이에서도 수행법과 '몽중일여(夢中一如)' '오매일여(寤寐一如)' 등 수행 단계를 놓고 논란은 지금도 계속된다. 그렇지만 이 교수는 봉화 금봉암 고우 스님의 '언행일치'를 최고 가르침으로 새기고 있다. "고우 스님이 말씀한 '언행'의 '언(言)'은 부처님 가르침입니
다.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 수 있다면 최고의 깨달음이겠지요."

그는 서문에서 "제 수행이 어디에 이르렀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이생이 다하도록, 그 이후라도 이 일을 이어가겠습니다. 저의 수행이 저와 타인에게 위안이 되고 전환의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적었다. 퇴임 후에는 사찰이나 일상 공간에서 수행을 돕고, 우울증 무료 상담 등을 하고 싶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1/10/202001100025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