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이상 탄생 110주년… 세대 바뀔 때마다 재조명 뜨거운 열기
장르 경계 넘어선 '전방위' 창의력, 21세기 시인으로 손색없어
전위적 실험 정신과 언어 감각, 한국 문학의 영원한 수수께끼
올해 하반기 문학 출판물 중에서도 이상을 재조명한 책들이 두드러졌다. 화가와 북디자이너로도 활동해온 박상순 시인이 이상의 시를 재해석한 시선집 '나는 장난감 신부와 결혼한다'를 냈고, 소설가 이승우를 비롯한 작가 6명이 이상의 단편 소설 '날개' 뒷이야기를 상상해 덧붙인 소설집 '정오의 사이렌이 울릴 때'를 출간했다. 이상 전집(전 4권)을 엮은 적이 있는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가 800쪽짜리 방대한 저서 '이상 연구'를 내놓기도 했다.
새해는 이상 탄생 110주년이 된다. '이상 다시 읽기' 현상은 더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이상의 텍스트는 다시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울뿐더러 그것이 지닌 전위적 실험 정신과 언어 감각이 오늘날에도 참신한 풍미를 잔뜩 흩뿌리기 때문이다. 이상은 건축가였고, 화가였다. 활자의 시각 효과에도 일찍 눈을 떴고, 시인답게 언어의 음악성에도 민감했다. 그런 점에서 그의 예술 세계를 언어와 기호, 시각과 음향을 종합화한 것으로 풀이하려는 작업이 더 활발해지는 추세다. 이상을 낭만적 기인(奇人)이라거나 '요절한 천재'의 신화에 가둬놓고 신비화하는 것은 요즘 촌스러운 짓으로 여겨진다. 이상이 활동했던 1930년대 식민지 경성의 자본주의 형성기와 한국 모더니즘 문학의 태동기를 엮어서 연구하는 작업도 활발하다. 이상은 과거 어느 때보다 더 창조성의 아이콘으로 주목받고 있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장르의 경계를 넘어선 '전방위(全方位) 창의력'을 펼쳤기 때문에 21세기의 시인으로 꼽아도 무리가 없다.
이상은 1936년 10월 4일부터 9일까지 조선일보에 연작시를 연재한 적이 있다. 그는 당시 일본 유학 중인 김기림 시인에게 편지를 보내 연작시의 의도를 털어놓았다. '요새 조선일보 학예란에 근작시(近作詩) '위독(危篤)' 연재 중이오. 기능어, 조직어, 구성어, 사색어로 된 한글 문자 추구시험이오. 다행히 고평(高評)을 비오. 요다음쯤 일맥의 혈로가 보일 듯하오'라고 썼다. 이상은 한국어의 다양한 실험을 통해 기존 언어의 틀을 벗어나려고 했다. 연작시 '위독' 12편 중 '절벽'이 훗날 한국 시인들에게 널리 읽히고 큰 영향을 미쳤다. '꽃이보이지않는다. 꽃이향기롭다. 향기가만개한다. 나는거기묘혈(墓穴)을판다…'라고 중얼거리듯이 이어지는 작품이다. '절벽'이란 제목부터 절망의 표출이고, 시의 화자가 제 무덤을 파는 과정을 웅얼거린다. 보이지 않는 꽃이 만개했다면서 그 향기를 맡는 행위는 몽환적 중독을 떠올리게 한다. 이 연작시의 전체 제목이 '위독'이란 것은 절망의 중독으로 인해 위독한 상태에 빠진 시인의 정신 상태를 가리키는 듯하다. 띄어쓰기를 무시했지만 간결한 문장들 사이에 놓인 마침표들이 시구(詩句)를 끊고 이어주면서 리듬을 살린다. 시의 화자는 무덤을 파는 운동에 이어 주검이 돼 정지하지만 꽃향기를 느끼는 후각(嗅覺) 운동으로 다시 살아났다가 그 꽃을 깜빡 잊어버리고 다시 죽었다가 또 살아난다. 그러나 꽃은 끝내 보이지 않는 꽃으로 남는다. 올해 동인문학상 수상작가 최수철의 소설 '독(毒)의 꽃'과 함께 읽어보시길 권한다.
이상은 '위독' 연작시 연재를 마친 뒤 느닷없이, 뚜렷한 계획도 없이 일본 도쿄로 떠났다. 그는 서양을 모방한 일본의 근대성에 실망해 그것을 조롱하는 편지를 김기림 시인에게 보내면서 작품을 썼다. 그런데 그는 어처구니없게도 거동이 수상한 자로 몰려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한 달 가까이 차가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