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통상과 안보는 다른데… 김현종 스타일은 여전히 '미국에 세게 나가야'

최만섭 2019. 10. 17. 05:18

통상과 안보는 다른데… 김현종 스타일은 여전히 '미국에 세게 나가야'

조선일보

입력 2019.10.17 03:00

[외교·안보 이슈 중심에 선 김현종]

盧정부 시절 한미 FTA 협상때 서류까지 던지며 美압박해 성과
독도방어훈련·지소미아 파기 등 안보정책도 강하게 밀고나갔지만
美서 공개비판 나오는 등 부작용…
차기 외교장관 가능성 높은 金, 해외 나가려던 최측근 간부에 '차관 맡아달라' 제안했다는 소문도

임민혁 논설위원
임민혁 논설위원

"김 차장이 정말 (외교)장관을 하고 싶은 모양이네요."

지난달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2차장이 소셜미디어에 '반성문'을 올렸을 때 그와 과거에 함께 일했던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당시 김 차장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대통령 해외순방 행사 도중 싸운 사실이 논란이 되자 "제 덕이 부족했다. 앞으로 나를 더 낮추겠다"는 글을 올렸다. 이 인사에 따르면 이런 후퇴는 김현종 스타일과 거리가 한참 멀다. 김 차장은 평소 "마음이 안 맞는 사람과는 10분 이상 같이 못 앉아 있는다"는 말을 대놓고 할 정도로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김 차장이 부정적인 여론에 반격을 안 하고 바짝 엎드린 것은 더 '큰 꿈'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현종 장관'은 시간문제?

이번 외교부 가을 인사 때 주요국 대사로 나갈 것으로 점쳐지던 모 고위 간부가 본인 희망에 따라 본부에 남았다. 이 간부는 '김현종 라인'으로 분류된다. 그가 예상과 달리 공관장 지원을 하지 않은 것은 김 차장으로부터 "내가 (장관으로) 내려가면 차관으로 날 도와달라"는 제안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김 차장과 인연이 있는 과장급 간부도 "해외 공관 나가지 말고 장관 보좌관 맡는 것을 생각해보라"는 말을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차장은 외교부 주니어 인사에도 적극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한다. 강경화 장관이 만든 외교부 혁신 계획에는 인사 형평을 위해 이른바 '청·비·총'(청와대, 장관비서실, 총무과) 근무자가 바로 워싱턴·유엔 등 최고 선호 공관에 나가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김 차장은 이와 상관없이 자신이 데리고 있는 직원을 핵심 공관에 밀고 있다는 것이다. 한 간부는 "장관이 될 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 아니겠냐"고 했다.

외교가 안팎의 말을 종합해보면 얼마 전까지도 '김현종 외교장관 기용'은 시간문제로 여겨졌다. 잇단 외교 실책이 불거지면서 외교 라인 교체 여론이 높았고, 그 경우가 아니더라도 강 장관이 총선 차출 명분으로 자연스럽게 빠질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김현종과 악연이 있는 간부들은 짐 쌀 준비를 한다는 말도 나왔다. 다만 최근에는 미묘한 기류 변화도 감지된다. '조국 사태'로 인한 '청문회 공포증' 때문이라고 한다. 한 여권 관계자는 "김현종은 워낙 캐릭터가 세서 야당의 주요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靑에서 영역 확실히 구축

김 차장은 청와대에 들어오기 전 통상교섭본부장 때부터 강 장관에게 전화로 몇 차례 대미(對美)·북핵 정책에 대한 제안과 비판을 했다고 한다. 강 장관이 이를 달가워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그렇게 쌓였던 두 사람 사이 감정이 최근 화제가 된 '영어 싸움' 해프닝으로 외부에 노출됐다. 김 차장은 대통령 말씀 자료가 형편없다며 외교부 출신 비서관과 국장을 강하게 질책했고, 강 장관은 '상대국 관료들도 있는 자리에서 왜 일을 키우냐'며 김 차장을 제지하다 고성이 오갔다고 한다.

김 차장은 청와대 입성 후 빠르게 자신의 영역을 구축했다. 전임 2차장인 남관표 주일 대사가 거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은 반면, 김 차장은 직속 상관인 정의용 안보실장보다 더 자주 마이크를 잡고 나섰다. 특히 1차장 산하에 있던 최종건 평화기획비서관을 자신 밑으로 데려와 힘을 실어주고 기존 외교부 라인을 배제했다. 최 비서관은 '연정(연대 정외과) 라인' 막내 격으로, 대선 캠프 출신이다. 현재 우리 외교안보 업무의 핵심인 북핵, 대북 제재, 동맹 이슈는 모두 최 비서관이 맡고 있다. 외교부 출신이 주축인 외교비서관실 직원들 사이에선 한때 "우린 제2 의전비서관실"이라는 자조적인 말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 4월 대통령 방미 행사 때 외교비서관실이 김정숙 여사 일정을 주로 담당한 이후 나온 푸념이다.

◇대미 외교도 '공격이 최선'

김 차장은 인화(人和)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는 비판을 종종 받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신임은 두텁다. '면피' 걱정이 먼저인 기존 외교 관료들과 달리 일을 떠안는 것을 피하지 않는 싸움닭 기질과 추진력을 높이 샀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 차장은 과거 외교부를 비판하면서 "내가 외교부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전례가 없다' '불가능하다' '다시 생각해 봐라' '어렵다' '안 된다'였다"고 했다.

그는 문 대통령과의 교감을 바탕으로 청와대의 '자주(自主)파 이데올로그'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일 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을 파기하거나, 미국 대사를 불러 항의하고 이를 언론에 공개한 것은 기존 외교 관료의 문법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한·일 갈등 국면에서 김 차장이 공개적으로 "미국에 도와달라고 하는 순간 '글로벌 호구'가 된다"고 한 것도 마찬가지다.

과거 김현종과 일했던 전직 관료는 "'미국에도 세게 나가야 한다'는 인식은 통상 협상 경험에서 비롯됐을 것"이라고 했다. 김 차장 저서에는 과거 한·미FTA 협상 때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며 미국을 압박한 일화들이 소개돼 있다. 미국 대사를 불러 "날 바보로 아냐. 당신 얘기는 거짓이다"라고 몰아붙였고, 미측 협상 부대표에게는 "이런 제안 하려고 날 새벽에 불렀냐"며 서류를 집어 던졌다고 한다. 미국이 이런 김현종을 껄끄러워했고, 그 스타일이 먹혀든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통상과는 완전히 다른 안보 영역까지 이런 전략을 너무 단순하게 적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한·미FTA 때 노무현 대통령은 김현종에게 "최대한 협상하고 안 되면 할 수 없다. 정치적 책임은 내가 진다"고 했다고 한다. '파기 옵션'의 유무(有無)는 협상력에서 하늘과 땅 차이다. 하지만 우리 안보 환경상 한·미 동맹에는 이런 파기 옵션이 있을 수 없다. 전직 대사는 "그렇기 때문에 미국과 안보 이슈를 얘기할 때는 훨씬 더 신중할 수밖에 없다"며 "이를 '답답한 관료주의'로 매도하면 다른 무슨 길이 있는가"라고 했다.

실제로 김현종 주도의 대미 강경책은 곳곳에서 부작용을 드러냈다. 정부가 지소미아를 종료한 뒤 대규모 독도 방어 훈련에 나섰을 때 미측에서는 "비생산적"이라는 공개 비판이 나왔다. 외교부가 청와대 지침에 따라 해리스 주한 미 대사를 불러 항의하자 해리스 대사는 "미국은 원래 영토 분쟁에 개입하지 않지만, 이번에는 이를 넘어서는 문제라고 판단했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을 압박해 성과를 내기는커녕, 독도 이슈에서까지 미국을 일본 편으로 밀어내는 듯한 결과를 가져왔다. 미국에서 나오는 신호가 계속 심상치 않자 여러 외교 채널을 동원해 가까스로 미국의 불만을 무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현종, 일본에도 강경 입장… 과거 "한일 FTA는 제2의 韓日강제병합" 주장도]

日, 金이 반일정책 이끈다고 믿어

일본은 최근 우리 정부의 반일(反日) 정책을 김현종 차장이 주도하고 있다고 본다. 김 차장도 일본에 대한 불신을 숨기지 않는다.

그는 일본이 한국을 수출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한 직후 브리핑에서 "일본은 우리 평화 프로세스 구축 과정에서 도움보다 장애를 조성했다"며 "일본은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한·미 연합훈련 연기를 반대했고, 북과 대화가 진행되는 와중에서도 제재·압박만을 강조했고,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전시 대피 연습을 주장하는 등 긴장을 조성했다"고 말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 당시 한·일 FTA를 체결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서는 "제2의 한·일 강제병합이 될 것 같다고 대통령께 보고해 무산시켰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 "아베 신조 총리와 그의 아버지(아베 신타로) 이름에 있는 한자 '신(晋)' 자는 막부 말기 유신 지사였던 다카스기 신사쿠의 '신'에서 유래하고, 그의 스승인 요시다 쇼인으로 연결된다"고 썼다. 그러면서 "일본의 FTA 정책은 요시다 쇼인의 조선침략론, 그 이후 사이고 다카모리의 정한론(征韓論)과 무관하지 않다"고 했다.

김현종은 또 한·미 FTA 협상 당시 일본의 '방해 공작'이 있었다고 책에서 주장했다. 당시 워싱턴의 일본 외교관이 미 당국자를 찾아가 "한국과 FTA 하지 말라. 한국 사람들은 믿을 수 없고 정직하지 않다. 한국 통상장관(김현종)은 나중에 약속을 지키지 않고 미국을 실망시킬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김현종은 이 얘기를 미국 측으로부터 전해들었다
면서 "일본이라는 나라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가쓰라-태프트 밀약 체결 후 100년이 지났는데도 일본의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고 썼다. 결국 한·미 FTA가 타결된 후 일본에서 환영 메시지가 나온 데 대해서도 김현종은 "일본은 한반도 통일도 속으로 반대하면서 막상 되고 나면 지지한다고 발표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0/16/201910160280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