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산업부 규제 넘자 복지부 규제, 한발짝도 못나가는 '바이오 사업'

최만섭 2019. 7. 30. 05:38



산업부 규제 넘자 복지부 규제, 한발짝도 못나가는 '바이오 사업'

입력 2019.07.30 01:32

[혁신 성장의 적들] [1] 첩첩규제와 기득권
美선 유전자 120항목 허가없이 검사 가능, 한국선 25항목조차 막혀

한국 유전자 검사 기업 마크로젠은 5개월 전 산업통상자원부의 규제 샌드박스를 통과했다. 12종인 검사 항목을 25종으로 늘리는 규제 완화였다. 해외에선 120항목 이상을 허가 없이 검사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회사 연구개발·서비스팀은 '개점휴업' 상태다. 마크로젠 관계자는 "막상 서비스를 하려다 보니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공용 IRB(기관생명연구윤리위원회)의 심의도 통과해야 했다"며 "연구계획서를 보내놓고 승인만 기약 없이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했다.

지난 3월 서울 강남구 선릉로 '디 캠프'에서 열린 '제2 벤처 붐 확산전략 보고회'에서 문재인(앞줄 오른쪽에서 둘째) 대통령이 벤처기업 대표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넉달 전 제2 벤처 붐 외쳤지만… ‐ 지난 3월 서울 강남구 선릉로 '디 캠프'에서 열린 '제2 벤처 붐 확산전략 보고회'에서 문재인(앞줄 오른쪽에서 둘째) 대통령이 벤처기업 대표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규제 개혁에 대해 스타트업(창업 초기 기업) 업계는 "현실과 온도 차가 있다"고 평한다. 이익집단 실력 행사에 따라 널뛰는 규제, 합법·불법이 모호한 '회색지대', 현실성 없는 낡은 규제 등 장애물 곳곳을 뚫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정부의 개혁 속도가 너무나도 느리다"며 "이젠 '혁신 성장'이라는 말의 진정성도 믿어야 할지 헷갈린다"고 말했다.

널뛰는 규제에 사업 접는 스타트업

유료 회원 3000여명이 가입한 야식·주류 정기 구독 스타트업 '벨루가'는 지난 22일 사업을 중단했다. 벨루가는 매달 두 번 유료 회원에 간단한 안주와 수제 맥주를 배송하는 서비스 업체다. 2017년 9월 온라인에서는 주류를 팔 수 없지만, 음식값이 더 비싸면 가능하다는 국세청의 해석을 받았다. 올해 들어 매출이 작년보다 3배 넘게 늘었다. 그런데 5월 국세청에서 '선결제 주류 정기 배달은 불법'이라는 통보를 받고 고민하다가 접은 것이다.

규제에 막힌 대한민국의 혁신 성장
회원 100만명인 카풀 업체 '풀러스'도 사실상 영업을 중단했다. 3년 전 시작한 '풀러스'는 이용자가 카풀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택하도록 해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택시업계 반발로 3월 '택시·카풀 사회적 대타협 합의안'이 나오면서 더는 사업하기 어려워졌다. 아침·저녁의 4시간만 카풀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서영우 풀러스 대표는 "우리도 한때는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 이상) 후보였는데, 합의안 문구 하나 때문에 사업을 못 할지는 몰랐다"며 "관료나 정치인 모두 기득권인 택시 이야기밖에 안 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검증된 혁신 사업도 국내에선 시작도 못 하는 사례도 많다. 아산나눔재단과 구글캠퍼스 서울의 '스타트업 코리아'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100대 스타트업 사업 모델 중 한국에서 '합법'인 것은 43개에 불과하다. 에어비앤비(공유 숙박 업체), 우버 등 13개 업체는 '불법', 모데나(유전 정보 활용한 건강관리 서비스) 등 44개사는 위법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정부에서 혁신 사례로 꼽아 온 공유 숙박 스타트업 '다자요'는 최근 농어촌정비법 위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다자요는 농촌의 빈집을 장기 임차해 민박으로 운영한다. 2017년 국토부 산하 공기업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의 청년 창업 아이템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막상 사업을 시작하니 1990년대 중반 도입된 농어촌 민박 제도가 발목을 잡았다. 실거주자만 농어촌 민박업을 할 수 있다는 규제다.

규제 환경은 세계 45위

정부는 혁신을 말하지만 한국의 규제 환경은 남아공보다 낙후됐다. UN 산하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 등이 2007년부터 발표하는 글로벌 혁신지수(GII)에서 한국은 2019년 11위(전체 129개국 대상)를 차지했다. 일본(15위)·프랑스(16위)·중국(14위)보다 앞섰고, 싱가포르(8위)에 이어 아시아 2위다. 하지만 세부 항목 중 규제 환경은 45위다. 남아공(43위)보다도 낮았다.

지난 16일 스타트업 대표 10여명이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국회로 찾아가 "규제를 풀어달라"고 읍소하는 일도 있었다. 보험 스타트업인 보맵의 류준우 대표는 이날 "새로운 보험 상품 개 발은 과도한 보험금 요건(300억원 이상)에, 맞춤형 보험 상품 추천은 개인 정보 활용 제한에 막혀 있다"고 말했다.

이군희 서강대 경영대 교수는 "해외 선진국은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무조건 혁신을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는데, 한국은 신기술에서 사고가 났을 때 책임질 사람만 찾는다"며 "혁신을 하기보다는 뒤처지고 안주하는 분위기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7/30/201907300008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