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이석우의 뉴스 저격] 집값 잡겠다는 분양가 상한제, 시장은 집값 오른다는 신호로 해석

최만섭 2019. 7. 26. 05:46

[이석우의 뉴스 저격] 집값 잡겠다는 분양가 상한제, 시장은 집값 오른다는 신호로 해석

입력 2019.07.26 03:00

서울 집값 다시 꿈틀거리자 국토부, 분양가 상한제 언급… 정부 의도와는 다르게 가고…

다시 꿈틀거리는 서울 아파트값을 잡기 위해 국토교통부 장관이 직접 나서 '민간 택지(宅地) 분양가 상한제' 도입을 공개적으로 밝힌 지 한 달여가 지났다. 분양가 상한제는 감정평가를 기준으로 한 토지 가격에 정부가 정한 표준 건축비를 더해 신규 분양 아파트 가격을 정한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분양 가격이 지금보다 20~30%, 경우에 따라 절반 수준까지 낮아질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정부가 이 대책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이후 서울 주택 시장 분위기가 정부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움직이고 있다. 장관의 발언과 동시에 서울 아파트값 상승세는 더 강해졌고, 매물이 자취를 감추었다. 오히려 시장에선 분양가 상한제를 집값 상승의 '호재(好材)'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여름 휴가철에 접어들면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률이 잠시 꺾일 수는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강한 상승세를 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서울 아파트값 상승세 이끄는 호재로 둔갑하나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분양가 상한제에 대해 공식으로 처음 발언한 것은 지난 6월 26일이다. 그는 이날 열린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공공 아파트는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지만, 민간 아파트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고분양가를 관리하는데, 고분양가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장은 이 말을 정부가 분양가 상한제를 곧 도입할 것이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공교롭게도 장관 발언 직후 부동산 시세를 조사하는 3대 기관 조사에서 서울 아파트값이 일제히 강세로 돌아섰다. KB국민은행 조사에선 장관 발언 전에는(6월 17일, 24일) 서울 아파트값이 주간 단위로 0.01%, 0.06%p(포인트) 상승했다. 장관 발언 직후(7월 1일, 8일, 15일) 조사에선 각각 0.09%, 0.11%, 0.11%p 등 큰 폭으로 올랐다.

'부동산114' 조사에서도 장관의 발언 전 -0.01~0.03%p 수준이었다가, 발언 직후인 7월 5일 조사부터 0.07~0.1%p 수준으로 크게 올랐다. 한국감정원 조사도 마이너스 상승세를 보이다가, 0.01~0.02%p 플러스 상승세로 돌아섰다.

실제 시장 상황도 이런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지난 5월부터 강남권 아파트를 사려고 중개업소를 찾아다녔다던 이모(45)씨는 "7월 들어 갑자기 눈여겨봤던 매물이 갑자기 다 사라져 버렸다. 중개업소에서 '지금 집 사려면 실거래가 최고점을 찍고 사는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이화공인 김태규 대표는 "적어도 우리 동네에선 분양가 상한제로 서울 아파트값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상한제 도입 언급 이후, 재개발·재건축 올스톱

정부는 분양가 상한제를 도입하면 새 아파트 가격이 하락하고, 현재 수요자들이 저렴한 새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 대기 수요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했다. 수요가 줄면 기존 아파트 가격도 하락한다는 것이 정부의 논리다.

시장에선 다르게 해석한다. '분양가 상한제→재개발·재건축 수익성 악화→공급 감소→기존 아파트 가격 상승'이라는 메커니즘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KB국민은행 박원갑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정부가 개입해 가격 상승을 억제하겠다는 메시지를 시장에선 반대로 해석하고 있다"며 "그 결과 매물이 자취를 감추고, 주택 수요자가 불안해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공급 면에서 서울은 재건축·재개발 물량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2009년 이후 10년간 서울에선 아파트 33만1300여 가구가 분양됐고, 이 중 재건축·재개발로 공급된 물량이 22만7700여 가구다(자료 부동산 114). 전체 공급량의 69%가 재건축·재개발 물량이다.

서울의 마지막 대규모 택지 지구인 위례와 마곡 개발도 끝나 서울에선 재개발·재건축이 아니면 새 아파트를 공급할 다른 방법이 거의 없다. 3기 신도시 사례처럼 서울 주택 수요자들은 신도시가 서울을 대체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들고나온 분양가 상한제는 재개발·재건축을 통한 주택 공급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정부 뜻대로 조합들이 싼값에라도 분양에 나서주면 되겠지만, 현실은 다르다. 대형 건설사인 A사 정비 사업 담당 임원은 "사업을 제법 적극적으로 추진하던 조합도 '시장 가격보다 30~40%씩 싸게 분양할 수는 없지 않으냐. 손해를 좀 보더라도 이자를 내면서 버텨보자'는 분위기가 강하다"며 "상황이 급한 일부 사업장을 제외하고는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거의 올스톱"이라고 말했다.

반면 서울 주택 시장의 수요는 넘쳐난다. 서울 아파트(167만 가구) 중 3분의 1가량이 30년 이상 된 노후 주택이어서 새 아파트 수요가 풍부하다. 게다가 최근 2~3년 사이에는 서울 아파트가 안전 자산으로 떠올라 서울 외 다른 지역에서 서울 아파트를 구입하는 비율이 20% 수준까지 높아졌다(국토부 자료). 홍춘욱(숭실대 겸임교수) 애널리스트는 "신규 주택의 수요는 넘쳐나는데, 공급의 거의 유일한 통로인 재건축·재개발을 막아 버리면 가격이 더 가파르게 오르는 것은 상식"이라고 말했다.

"지지층이 좋아하는 정치 행위"

현재 일부 시민 단체를 제외하고는 분양가 상한제 도입을 지지하는 학자와 연구 기관은 거의 없다. 정부 정책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국책 연구 기관들도 입을 다물고 있다. 국토부 공무원들도 말을 아낀다. "분양가 상한제를 실시하면 서울 아파트값을 잡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국토부 고위 관계자는 "과거 분양가 상한제 시행 사례를 면밀히 검토하고 보완해 정책이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하겠다"며 원론적 얘기만 하고 답변을 피했다.

그럼에도 정부가 이 정책을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이유에 대해서는 정치적 목적이 더 크지 않겠느냐는 해석이 나온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비싼 강남 아파트값을 정부가 때려잡겠다고 하면 좋아하는 국민이 많다 보니 지지층이 선호하는 정치 행위를 하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현 정부는 정책의 실질 효과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명분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 면에서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되면, 부작용이 아무리 많아도 현 정부가 고집스럽게 매달리고 있는 소득 주도 성장과 운명이 비슷한 정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역대 정부 분양가 규제… 로또 아파트만 양산, 집값 잡기 성공한 적 없어]

박정희 정부 '정부 고시 분양가', 부동산 대란 일어나 1989년 폐지
노무현 정부 '분양가 상한제', 판교신도시를 투기판으로

분양가 상한제는 과거 정부 시절에도 여러 차례 모습을 바꿔가며 도입된 바 있다. 시장 상황에 따라 때로는 효과를 내기도 했지만, 과거 사례를 보면 정부가 분양가 규제로 주택 시장 가격을 잡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가 처음 도입된 것은 박정희 정부 시절이었던 1977년이다. 당시는 중동 건설 시장에서 벌어들인 자금이 부동산 시장에 유입되면서 아파트값 급등이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박정희 정부는 '행정지도'를 통해 '정부 고시 분양가' 제도를 도입했다. 첫해에는 모든 아파트의 분양 가격을 3.3㎡(1평)당 55만원으로 정했다. 도입 초기에는 가격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잠시 했지만, 1980년대부터 아파트 시장에 투자자가 몰려들면서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미 이때부터 '로또 아파트'를 양산했다. 결국 1980년대 말 전세금 폭등 등 '부동산 대란'이 일어나면서 1989년 폐지됐다.

2000년대 중반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뒤 부동산 가격이 다시 치솟자 2005년 2월, 2기 신도시 공급과 함께 현재의 제도와 거의 비슷한 '분양가 상한제'를 도입했다. 공공 택지에 먼저 적용했는데, 첫 사례였던 판교신도시는 분양가 상한제로 인해 막대한 시세 차익이 보장되면서 도시 전체가 투기판으로 변질된 사례가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민간 택지까지 포함하는 분양가 상한제'와 동일한 방식은 2007~2015년 사이에 시행됐다. 이 시기에 분양했던 분양가 상한제 아파트는 '로또'로 평가받는다. 서울 대치동 '래미안대치팰 리스' 아파트는 2013년 10월 3.3㎡당 3200만원에 분양됐는데, 현재 이 아파트 가격은 3.3㎡당 7500만원 정도로 약 2.5배 뛰었다. 결국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는 2015년 4월부터 최근 3개월간 주택가격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의 2배 초과 등의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할 때만 적용하는 것으로 규정이 바뀌어 사실상 폐지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7/25/201907250306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