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연두 기자회견에서 “고용 지표가 나쁜 건 가장 아픈 대목”이라며 “정부가 할 말이 없게 됐다”라고 말했습니다. 일자리 정부를 자처한 이 정부의 반성문이라고 할 만합니다.
원인을 놓고 다양한 분석이 나옵니다. 자동차·조선 등 주력 산업의 부진에다 인구구조 변화 등을 꼽습니다. 최저임금 급격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같은 명분에 치우친 이상론을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도입한 탓도 큽니다. 맞는 말입니다만 저는 더 본질적인 질문을 하려 합니다. 위험 수준까지 간 한국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문제의 핵심 아닐까요.
한국에서는 대기업 정규직이 1차 노동시장을, 대기업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정규직ㆍ비정규직 등이 2차 노동시장을 차지한다고 봅니다. 한국은행 장근호 거시경제연구실 부연구위원의 분석에 따르면 1차 노동시장 종사자는 전체 임금 근로자의 11%인 213만 명에 그칩니다. 반면에 전체 임금 근로자의 89%인 1787만 명이 2차 노동시장에 속합니다. (2017년 8월 기준)
1차 노동시장 종사자의 월평균 임금은 398만원이고, 근속연수는 12년 정도입니다. 2차 노동시장에서 일하는 대기업 비정규직은 월평균 258만원을 받고, 4년 정도 근속합니다.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은 152만원이고 근속연수는 2.5년입니다. 1차와 2차 노동시장 종사자의 임금 격차는 해를 거듭할수록 확대되고 있습니다.
2차 노동시장에서 1차 노동시장으로의 이동이 수월하면 얘기는 달라집니다만 한국의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한국의 임시직 또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율은 평균 2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습니다. 좋은 직장으로 연결해주는 ‘희망의 사다리’가 끊어지거나 아예 없는 현실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산업 구조의 변화로 인해 인력이 과거처럼 많이 필요하지 않은 탓도 있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원ㆍ하청 관계의 불공정성 등도 있지만 대기업 노조의 밥그릇 지키기가 큰 몫을 차지한다는 점, 분명합니다. 잘 조직된 대기업 노조는 남이 절대로 성 안에 못 들어오도록 높은 장벽을 칩니다.
문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노동자의 삶을 향상시키는 것도 경제가 살아나야 가능하다”며 “노동계가 열린 마음으로 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맞는 말이지만 말 한마디로 대기업 노조의 양보를 끌어낼 수 있을까요. 민노총과 한국노총 등은 아직도 ‘촛불혁명 청구서’를 들이댑니다. 이 청구서의 유효기간은 끝났습니다.
대신 새로운 청구서가 현 정부에 전달돼야 합니다. 정치적 셈법에서 벗어나 이 사회에 거대한 전환의 초석을 놓을 수 있는 ‘노동시장 개혁’이라는 청구서입니다. 발신인은 국민입니다. 집권 3년 차에 접어든 대통령과 정권의 의지를 기대해 보겠습니다.
지난주 중앙SUNDAY는 20세기 초 예술과 기술을 융합한 지식혁명을 이끈 독일 바우하우스 100년 기념 시리즈를 시작했습니다. 글쓴이인 김정운 박사는 전통의 가치관을 뒤집어 지식혁명으로 이끈 바우하우스의 정신을 살부(殺父)의 철학으로 설명했습니다. 많은 성원 바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