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김정은, 핵과 평화체제 연내 큰 가닥 잡을 생각"

최만섭 2018. 3. 10. 11:52

"김정은, 핵과 평화체제 연내 큰 가닥 잡을 생각"

[서훈 국정원장 단독 인터뷰 - 강인선 특파원 기내 동행]

"주한미군·한미동맹은 북한에 양보할 문제 아니다"
"북 완전한 비핵화 아니라면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다"

서훈 국정원장 단독 인터뷰… 김정은 의도·북핵 문제 직접 언급

Q:4월 남북 정상회담 전망은
한반도 긴장 완화, 비핵화 매우 긍정적 결과 가능할 것

Q:文대통령이 운전석에 앉은 형국인데
과속 않고 '안전운전'할 것, 멈춤신호 있으면 다 서가면서…

Q:이런 급작스러운 전개 예측했나
남북관계 속속들이 얘기못해… 때론 직관 따라 위험 감수해야

강인선 특파원
강인선 특파원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한국·미국과 걸려 있는 현안들, 즉 핵과 미사일, 평화 체제 문제 등에 대해 금년 안에 큰 가닥을 잡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서훈〈사진〉 국가정보원장은 8일 워싱턴행 비행기에서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신년사 이후 김정은 위원장이 보여준 급격한 국면 전환 행보의 배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서 원장은 지난 5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대북 특사단으로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났다. 그 결과를 갖고 이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는 30년 가까이 북한 문제를 다루면서 우리나라에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을 가장 많이 만난 대북 협상 전문가로 꼽힌다.

서 원장은 김 위원장이 대북 특사단에 말한 '비핵화'는 핵 동결이나 핵 확산 방지 차원이 아니라면서, "(진정한 의미의) 비핵화가 아니라면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그러나 북한이 비핵화의 대가로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이야기하기 이르다"면서 "북한은 이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서훈 국가정보원장
서훈 국가정보원장
서 원장은 "한 가지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생기는 직관이란 것이 있다"면서 "4월 판문점에서 갖기로 한 남북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긴장 완화와 비핵화 문제에 매우 긍정적인 결과가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운전석에 앉게 된 상황에 대해 "과속하지 않고 멈춤 신호가 있으면 서는 등 안전운전을 하겠다"고 말했다. 또 자신은 '안보 보수'라면서, "안보 분야에서는 대통령을 포함, 모든 사람이 보수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워싱턴행 기내에서 마주친 서훈 원장은 처음엔 인터뷰를 거절했다. 대북 특사단으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 미국 측에 전하는 메시지를 갖고 있는 그로서는 언론과의 사전 접촉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듭된 인터뷰 요청에 그는 "북한의 메시지 등 구체적인 사안이 아닌 북핵 문제를 둘러싼 배경과 북한 의도 등에 대해 말하는 것"을 전제로 응했다. 그가 국정원장에 취임한 후 첫 언론 인터뷰이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전망하나.

"특사단이 김 위원장을 만난 것은 한반도 문제를 푸는 결정적인 변곡점이 될 것이다. 결국 북한 권력 시스템을 볼 때 본질적으로 중요한 사안은 최고 지도자를 만나야 풀 수 있다. 그래서 정상회담이 그만큼 중요한 계기가 된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이 우려하는, 한·미 동맹에 배치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서 원장이 지난해 8월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북한의 중거리탄도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발언하고 있는 모습.
서훈 국가정보원장은 8일 미국 워싱턴행 비행기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은 서 원장이 지난해 8월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북한의 중거리탄도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발언하고 있는 모습. /이덕훈 기자
―김정은 위원장을 직접 만나 보고 어떤 인상을 받았나.

"김 위원장은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어떤 사안에 대해 말할 때 결단력 있는 모습을 보여준 게 인상적이었다. 본인이 미리 예측하지 않은 사안이 의제로 올라왔을 때도 빠른 판단을 하고 결단했다. 남북 관계뿐 아니라 국제 정세의 배경, 역사에 대해서도 속속들이 다 파악하고 있었다."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이나 미국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던가.

"그건 좀 조심스러운데…. 미국과의 문제에 대해 진정성과 의지가 담긴 입장을 이야기했다는 것 정도만 말하겠다."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한국에 유화 제스처를 보낸 것은 자신이 구상하고 있던 장기 전략의 일환이라고 보나, 아니면 트럼프 행정부와 유엔 등 국제사회가 대북 제재와 압박을 높인 효과가 나타난 결과라고 보나.

"여러 가지가 다 조금씩 이유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기본적으론 김 위원장이 그런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북한에 대해 관찰해온 바를 얘기하자면, 김 위원장이 금년 안에 큰 가닥을 잡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국, 미국과 현재 걸려 있는 걸림돌이 되는 모든 현안, 즉 핵과 미사일, 평화체제 문제에 대해 금년 안에 큰 가닥을 잡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신년사부터 시작해 동생 김여정, 김영철(통일전선부장)을 한국에 내려보내고 한국 특사단을 만나고 그런 과정을 보면 김 위원장이 갖고 있는 구상을 읽을 수 있다. 특히 김여정은 김 위원장의 신임을 받는 참모라는 인상을 받았다. 앞으로 이뤄질 합의의 주체도, 실행의 주체도 남·북·미가 모두 참여하는 것이 돼야 한다."

―북한의 대화 제의에 트럼프 대통령은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워싱턴엔 '이번에도 또 북한에 속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있다.

"과거에 그랬다고 다시 만나지 않겠다는 것은 처방이 아니다. 속은 경험이 있다면 다시 속지 않는 과정으로 끌고 가는 재료로 삼아야 한다."

―북한이 비핵화를 얘기할 땐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이란 조건이 붙는다. 한·미 연합훈련 중단과 주한미군 철수처럼 한국 안보를 뒤흔드는 요구를 하려는 것 아닌가.

"주한미군은 우리가 북한에 양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한·미 연합훈련도 북한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게 한 상태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한국 안보와 경제의 근간인 한·미 동맹은 건드리지 말라는 것이다. 북한은 한·미 동맹이 있으면 한·미 연합훈련이 있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 입장에서 북한과 대화하려는 것이다."

―김정은의 대남 유화공세는 핵 무력 완성 선언과 관련이 있다고 보나.

"우리는 북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중요한 것은 김 위원장이 특사단에 북한의 궁극적인 비핵화 목표를 명백히 밝혔다는 점이다."

―김정은이 이번에 대북 특사단에 말한 '비핵화'는 '핵 동결'이나 '핵 확산 방지'가 아닌, 정말 완전한 비핵화를 말하나.

"그게 아니라면 우리가 받아들일 수가 없다. 김정은 위원장이 처음으로 직접 비핵화를 약속한 것에 의미를 둬야 한다."

―김정은이 정말로 진정성 있는 비핵화 의지를 갖고 있다고 판단하나.

"이런 일을 할 때는 상대의 의지를 가지고 판단하지 않는다. 상대가 한 말 중에서 의미 있는 것을 끄집어내 실천할 수 있게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에 전달하려는 북한의 메시지로 미국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나.

"트럼프 행정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정확한 설명을 하려고 한다. 북한 입장과 한반도 상황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이다. 미국과 북한이 서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계기를 빨리 만들어야 한다."

―북한이 비핵화하는 대가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얘기를 하기는 아직 이르다. 이번에 북한은 이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미·북 대화는 언제쯤 가능할까.

"남북 관계와 미·북 관계는 서로 떨어져 혼자 멀리 갈 수 없다. 남북, 미·북 대화가 수레의 두 바퀴처럼 함께 굴러가야 한반도의 실질적 변화가 가능하다. 그 점에 대해서는 미국에도, 북한에도 확실하게 하고 있다."

―미·북 관계가 기대만큼 진도가 나가지 않을 경우엔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면 남북 관계도 한계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정의용 실장과 내가 죽기 살기로 같이 온 거 아닌가. 이번 미국 방문은 한반도 운명을 가르는 분기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미·북 간의 뿌리 깊은 불신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의논해봐야 알겠지만 북핵 문제라는 문을 열려면 두 개의 열쇠가 필요하다. 우리가 하나의 열쇠를, 또 트럼프 대통령이 다른 하나를 갖고 있다."

―4월 남북 정상회담 의제는 무엇인가.

"4월 정상회담에선 한반도 긴장 완화와 비핵화 문제에서 매우 긍정적인 결과가 가능하다고 본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한반도 정책의 목표가 있다면 실천적 비핵화를 최대한 앞당기는 것이다. 그리고 전쟁의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국민이 편안하게 남북 간 왕래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음 정권이 이런 토대 위에서 통일 문제에 대한 실천적 논의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왜 판문점을 남북 정상회담 장소로 선택했나.

"판문점은 대결과 분단의 상징이다. 그걸 평화와 화해의 상징으로 바꾸고 싶다."

―미국 방문 결과를 북한에 어떻게 전달하나.

"이렇게 한 번 왔다 갔다고 해서 북핵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보지는 않는다. 서로 의구심을 갖고 있는 상태인 만큼 진의와 진정성을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자주 만나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 말대로 한국이 운전석에 앉아 미·북을 끌고 가고 있다.

"안전 운전을 하려고 한다. 과속하지 않고 멈춤 신호 있으면 다 서고 하면서 갈 것이다. 위험 부담은 어디에나 있는 것이다."

―김정은 신년사 이후 이 같은 급작스러운 상황 전개를 미리 예상하고 있었나.

"남북 관계에 관한 일은 당대에 속속들이 다 얘기하고 갈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북한 문제를 30년 다뤘다. 한 가지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생기는 직관이란 것이 있다. 때론 직관을 따라 위험을 감수하면서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서훈의 국정원이 국민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치길 바라나.

"이제 국정원은 정치·경제·사회 분야에 절대 개입하지 않는다. 북한·해외·산업안보·대테러·대공 이런 일만 한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테러 제로(zero) 올림픽'으로 치르는 데 모든 역량을 투입했다. 안보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 중에 진보는 없다. 대통령도 안보에 있어선 보수다. 나도 '안보 보수'다. 안보에선 단 한 번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된다. 안보엔 실험이 있을 수 없다."

―간첩 잡는 조직의 우두머리가 전면에 나서는 데 대한 비판도 있다.

"간첩 잡는 일도 국가 안보다. 지금 한반도 안보 상황은 위중하다. 북한 핵 문제보다 더 시급한 안보 현안이 있나."


서훈 국정원장은… 국정원서 28년 일한 대북통… 남북·미북 대화 막후 '키 맨'

서훈(64) 국정원장은 작년 말부터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과 미국 중앙정보국(CIA) 고위 채널을 직간접으로 접촉하며 남북, 미·북 대화 국면을 이끌어낸 막후 '키 맨(key man)'이다.

서 원장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남북 대화 의사를 밝힌 이후 판문점에서 김영철과 한두 차례 만나 비공개 대화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김영철을 통해 파악한 북한의 입장을 갖고 미·북 간 물밑 접촉을 주선했다고 한다. 정보 소식통은 "평창올림픽 기간에 CIA 고위 관계자 등이 비밀리에 방한한 것도 그 때문인 것으로 안다"고 했다.

서 원장이 취임 이후 언론 인터뷰를 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더구나 남북, 미·북 정상회담이 추진되는 민감한 상황에서 현직 국정원장이 인터뷰에 응한 것은 이례적이다.

서 원장은 지난 대선 때 문재인 캠프에서 현 정부 대북 정책 구상을 마련하는 데 깊숙이 관여했다. 문 대통령이 평창올림픽 북한 대표단으로 방남한 김여정을 접견할 때 배석했고 이후 대북 특별사절단 멤버로 방북해 김정은을 면담했다. 그는 200
8년 국정원 3차장으로 퇴직할 때까지 국정원에서 28년간 근무한 대북 전문가다. 국정원 공채로 들어가 대북전략국장을 거쳐 3차장을 지낸 그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두 차례 남북 정상회담에서 기획 및 실무 협상에 참여했다. 1997~1999년 북한 신포에 경수로 건설을 지원하던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금호사무소 대표로 북한에 2년간 상주하기도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3/10/201803100013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