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 노조

2년째 활동하는 수배자… 檢警은 알고도 안잡고, 장관은 그를 면담했다

최만섭 2017. 12. 20. 09:45

2년째 활동하는 수배자… 檢警은 알고도 안잡고, 장관은 그를 면담했다

입력 : 2017.12.20 03:13 | 수정 : 2017.12.20 07:39

[이영주, 2년전 '한상균 조계사 은신'과 판박이]

민주당사 무단 점거한 이영주… 올 8월 고용부 장관 만나기도
경찰, 그동안 위치 파악하고도 민노총 반발 두려워 체포 안해

민주당사 점거 장기화될 듯

수배 중인 이영주(52) 민노총 사무총장 등 민노총 조합원 4명이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를 점거한 지 이틀째인 19일 검찰과 경찰은 "체포 계획이 아직 없다"고 했다. 이 사무총장은 2015년 서울 광화문 일대를 마비시킨 '민중 총궐기' 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수배자다. 이 시위로 경찰관 76명이 다치고 경찰 버스 43대가 파손됐다. 시위를 함께 주도했던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은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수감돼 있다. 이 사무총장은 당시 경찰이 한 위원장을 쫓자 한 위원장에게 승복(僧服)을 주고 조계사로 도피시킨 혐의도 받고 있다. 그런 수배자를 눈앞에 두고도 경찰은 아무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19일 경찰 수배를 받고 있는 이영주 민노총 사무총장이 이틀째 농성 중인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을 경찰이 통제하고 있다.
19일 경찰 수배를 받고 있는 이영주 민노총 사무총장이 이틀째 농성 중인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을 경찰이 통제하고 있다. 이영주 사무총장은 지난 18일 민노총 간부 두 명과 함께 오전 민주당 당대표실을 기습 점거한 뒤 한상균 위원장을 석방하고 자신의 수배를 해제할 것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성형주 기자
그는 체포영장 발부 뒤 2년여 동안 민노총 사무실에 은신했다. 그곳에서 언론과 인터뷰를 했고, 지난 8월엔 민노총을 방문한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과 간담회를 갖기도 했다. 체포영장이 발부된 수배자는 외국 대사관 등 이른바 치외법권(治外法權)이 적용되는 장소를 제외하면 어디서든 체포할 수 있다. 검경은 그의 민노총 은신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민노총 반발이 두려워 체포영장을 집행하지 못했다.

경찰 관계자는 "2013년 민노총에 은신한 철도노조 지도부를 체포하려고 강제 진입했다가 충돌을 빚어 논란이 됐다"며 "이 사무총장이 민노총 밖으로 나오면 체포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움직임을 주시해 왔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공권력을 비웃듯 2년 만에 민노총 사무실을 나와 민주당사를 점거했다. 경찰은 그런 범법자를 눈앞에 두고도 이젠 정당 반발을 우려해 체포하지 않고 있다. 공권력의 무력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영주 장관 옆 수배자 이영주
김영주 장관 옆 수배자 이영주 - 민주당 당사를 무단 점거 중인 이영주(수배 중·사진 위) 민노총 사무총장이 지난 8월 민노총 사무실을 방문한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과 간담회를 마치고 걸어 나오고 있다(아래 사진). 김 장관 오른쪽 옆이 이영주 사무총장이다. /김지호 기자
민주당도 이영주 사무총장을 보호할 것인지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그 흔한 논평 하나 내지 않았다. 민주당 관계자들은 "난처하다"고만 하고 있다. 그가 이번에 민주당사를 기습 점거한 상황은 2015년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이 조계사로 도망쳐 은신했을 때와 비슷하다. 당시 경찰이 전방위로 압박했지만 한 위원장이 조계사를 나오기까지 25일이 걸렸다. 이 사무총장의 민주당사 점거도 장기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그는 당사 점거 후 페이스북에 '민주당 측의 물품은 사양한다. 동지들의 방문을 기다리겠다'는 글을 올렸다.

한 위원장은 2015년 조계사에 신변 보호를 요청하면서 "부처님 자비로 보듬어 달라"며 스스로를 약자(弱者)라고 했다. 그런데 이 사무총장은 "민주당의 정권 교체는 민노총이 앞장서서 투쟁해 왔기 때문"이라며 '점령군' 행세를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수배 해제와 한 위원장 석방을 요구했다. '촛불 청구서'를 내밀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검경은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민주당사 주변에 경찰 20여 명만 배치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2015년 한 위원장이 조계사에 은신했을 때 120여 명을 동원해 조계사를 봉쇄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당시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폭력시위 주동자에 대해 엄정 대응하겠다"고 했다.

검찰과 경찰은 그동안 수배자가 종교 시설이나 정당에 은신하면 관례적으로 해당 시설 측과 체포 문제를 협의하는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검경과 민주당 모두 서로 지켜만 보고 있다. 경찰은 "민주당 쪽에서 아무 연락이 없는데 우리가 먼저 나서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나 검경이 수사 목적으로 정당 당사에 진입을 시도한 전례가 없지 않다. 2012년 검찰은 국회의원 후보 경선에서 부정 선거 의혹이 불거진 통합진보당 당사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지난 8월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세력이 창당한 새누리당 당사를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정부는 지난 12일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공사를 방해한 시위대를 상대로 냈던 34억여원 구상금 청구 소송을 포기했다. 사실상 불법 시위대에 면죄부를 준 것이다. 일각에선 불법 시위대 처벌에 미온적인 정부의 이런 모습이 이번 점거 사태를 불렀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장은 "이번 사건을 정치적 판단에 따라 대충 넘어가면 앞으로 법치(法治)를 바로 세우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2/20/201712200013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