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노조, 쇠사슬 묶고 투쟁… 하도급 물량 회수까지 주장
"연봉 9600만원 받는 분들이…" 하도급업체 직원, 눈물로 호소
깔끔하게 도장(塗裝)돼 컨베이어 벨트에 오른 흰색 자동차는 벌겋게 녹슨 쇠사슬에 묶였다. 쇠사슬엔 큼직한 자물쇠까지 채워졌다. 50대 노조 대의원은 이 차에 들어가 또 다른 쇠줄로 손목을 묶고 차체와 연결했다. 결사항전 태세다. 컨베이어 벨트가 멈춰 서고 공장 업무가 마비된 건 물론이다. 노사로 갈린 직원들은 이로 깨물거나 밀치고, 발길질까지 했다. 24일 현대차 울산 공장 작업장에서 벌어진 광경이라고 한다.
노동계 폭력이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민노총이 "나라 전체를 마비시킬 수 있다"며 쇠파이프로 경찰관을 때리고 경찰 버스에 방화까지 시도한 게 2년 전이다. 그 전엔 '희망 버스' 시위대가 울산에서 죽창을 휘둘러 수십 명이 다쳤다. 이번 현대차 폭력 사태는 여기 비하면 하찮은 수준이다. 그러나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곪아 터진 노동 문제가 있다.
사달이 난 원인 가운데 하나가 일감 나누기였다. 현대차는 신차 '코나'를 양산하기 위해 일부 부품 생산을 하도급업체에 발주하고, 일감이 적어진 직원들을 다른 공정에 배치하려 했다. 이 문제에 대한 노조 협의가 한 달 넘도록 지지부진했기 때문이다. 급기야 양산 일정에 맞추기 위해 몇몇 간부 사원이 공정에 임시 투입되자 노조가 쇠사슬 투쟁으로 맞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고령화된 노조원들이 편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이미 오래전에 하도급업체에 준 단순조립 같은 물량까지 되가져오라는 노조 요구도 있었다. 임금 삭감이나 고용 불안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현대차 노조가 노조원들 편하게 하자고 영세업체에게 이미 준 하도급 물량까지 회수하라고 요구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현대차 노사 대표단이 올 6월 코나 출시를 앞두고 부품 생산을 맡긴 울산 효문공단 2차 하도급업체를 찾아갔을 때 일이다. 생산 현황을 살펴보러 갔는데, 하도급 준 물량을 회수하러 온 줄로 지레짐작한 여성 근로자가 울먹이며 말했다고 한다. "(당신들은) 이 일감 없어도 연봉 9600만원 받지 않느냐. 겨우 일 좀 하려는데 돈 잘 버는 분들이 왜 이러시느냐." 끽해야 한 달 200만원도 못 벌 이 여성 노동자 눈에는 현대차 노조가 자신의 노동을 부당하게 수탈하려는 악덕 자본가처럼 보였을 것이다.
이번 파업에 대해 현대차 측은 "노조 불법 행위에 대해 법률과 사규에 따른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다. '무노동 무임금' 원칙 적용도 고수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과거 패턴을 보면 이 약속이 끝까지 지켜질지는 미지수다. 노조가 무리한 요구를 하면 사측이 강경 대응하다 생산 일정 차질이나 경영 타격이 우려되면 어느 순간 양보하고 협상을 마무리하곤 했다. 생산직과 고위 임원, 연구원, 하도급업체 직원 등 50여 현대차 관계자를 인터뷰한 결과를 정리해 올해 초 책으로 펴낸 송호근 서울대 교수는 사측 문제를 이렇게 짚었다. "경영진은 노동자들에게 '입 다물고 나를 따르라'는 식이다. 시대착오적 소통 방식"이라고 했다.
현대차 노사가 체결한 단협 조항은 문제투성이다. 이를테면 노조가 반대하면 하도급업체에 생산 물량을 주기도, 해외에 공장을 신설하기도 어렵다. "A볼트 조이는 노조원을 B볼트 조이도록 자리를 옮길 수도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장기근속 퇴직자 자녀를 우선 채용하는 등 대(代)를 이어 일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고용 세습' 조항이 법원에서 무효 판결 난 게 2013년이다. 그래도 현대기아차를 비롯한 상당수 대기업 노사는 이 조항을 끄떡 않고 유지하는 중이다. 대다수 청년 구직자, 실업자는 피눈물이 쏟아질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 대폭 상승 같은 굵직한 친노동 정책이 이 정부 들어 몰아치듯 진행되고 있다. 주로 기업에 부담을 지우는 형태로 추진되고 있다. '노동 적폐' 청산이 목적이라면 그 리스트에 기득권 노조도 들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