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한 손엔 배달앱… 한 손엔 간편식… 외식인류

최만섭 2017. 12. 16. 07:33

한 손엔 배달앱… 한 손엔 간편식… 외식인류

식재료와 음식 조리 도구보단 맛집 신메뉴에 관심이 많으며 TV 맛집 방송 프로그램에 열광한다. 외식 선호 DNA를 지닌 신인류, 외식인류(外食人類)의 출현이다.
아침에 먹는 시리얼 하나도 전문점에 가 외식하는 외식인류. 국내 외식 산업 시장 규모 108조원 시대에 외식인류들은 외친다. "우리 사회가 외식을 권하고 있다"고.

[Cover Story] 푸드코트서, 편의점서, 식당서… 한국인의 '외식 DNA'는 진화 중

편도족·점푸족·半외식족… '화려한 외식' 줄어들고 '집밥 같은 외식' 늘어나

집밥 열풍, 그 후…
요리에 서툰 1인 가구 바쁜 맞벌이 부부 등은
직접 차려 먹기 쉽지 않아 집밥 같은 밥 사먹어

확 달라진 외식 트렌드
편의점 도시락에 간편식 미역국 곁들이고
포장·반조리 식품 사와 집에서 간단히 먹기도

3년새 외식횟수 20% 증가
외식은 세계적 현상이지만 밥·국·반찬 필요한 한식
요리할 때 특히 손 많이 가 "식사 방식 변화 고민해야"

적게는 삼시 한 끼, 많게는 삼시 세끼를 모두 남이 요리해준 외식으로 해결한다. 식재료와 음식 조리 도구보단 맛집 신메뉴에 관심이 많으며 TV 맛집 방송 프로그램에 열광한다. 외식 선호 DNA를 지닌 신인류, 외식인류(外食人類)의 출현이다.
불을 쓰고 도구를 활용해 음식을 만드는 '요리 인류'가 음식 문화를 꽃피웠다면, 외식을 일상화한 '외식 인류'는 현대 사회를 반영해 외식 문화를 진화시키고 있다. / 일러스트= 안병현
불을 쓰고 도구를 활용해 음식을 만드는 '요리 인류'가 음식 문화를 꽃피웠다면, 외식을 일상화한 '외식 인류'는 현대 사회를 반영해 외식 문화를 진화시키고 있다. / 일러스트= 안병현

외식인류는 여러 종족으로 나뉜다. '편도족(편의점 도시락을 애용하는 사람들)' '점푸족(점심을 푸드코트에서 먹는 사람들)' '반(半)외식족(포장·배달 음식을 집에서 먹는 사람들)' 등이 대표적이다. 1인 가구 증가와 맞물려 꾸준히 증가 추세인 '편도족'은 하루 한 끼 정도는 가뿐하게 편의점 도시락을 애용하는 종족이다. 각 편의점 도시락의 가격을 꼼꼼히 따지고 편의점마다 베스트셀러 도시락을 줄줄 꿰고 있다. 도시락뿐만 아니라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라면, 햄 등 식료품을 자유자재로 섞거나 조합해 전혀 새로운 메뉴로 탄생시키는 창의력을 지녔다. 최근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카카오스토리 등 소셜미디어에서 큰 인기를 끈 편의점표 이색 요리가 모두 편도족의 두뇌에서 나온 예. 이 때문에 외식인류 중 가장 진화한 인류라 평가받고 있다.

'점푸족'은 점심을 푸드코트에서 해결하는 종족. 주로 백화점이나 복합 쇼핑몰 푸드코트에 출몰하며 찾아다니는 외식에 지쳐 한곳에서 원하는 음식을 마음껏 즐기려는 성향이 강하다. 이들은 둘 이상 모였을 경우 같은 메뉴를 주문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각기 다른 것을 주문해 나눠 먹는 것을 선호한다. 셀프 서빙에 익숙해 팔 근육이 발달해 있으며 1인 가구, 젊은 층에 집중된 편도족보다 남녀노소 연령 및 세대층이 다양한 편이다.

이에 비해 '반외식족'은 외식인류 중 조금 난해한 성향을 띤다. '외식=집 밖에서 먹는 음식'이란 공식부터 깼다. 음식은 외부에서 사오되 식사는 집에서 즐긴다. 배달앱을 이용해 배달 음식을 시켜 외식처럼 즐기는 '배달음식파'가 있는가 하면, 백화점·마트의 식료품 코너에서 가정 간편식 등이나 포장 음식을 사와 약간 조리하거나 차리기만 해서 먹는 '포장음식파'등 다양하다. 완전히 외식인류로 진화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논란도 있으나 '바깥 음식을 즐긴다'는 점에서 외식인류로 봐야 한다는 관점이 지배적이다.

종족으로 분류할 순 없지만 외식인류 중 가장 발 빠르고 트렌드에 민감한 부류가 있으니 '얼리어먹터'('얼리 어답터'와 '먹다'의 합성어로 남들보다 먼저 신메뉴를 먹어보는 사람)다. 이들은 신메뉴가 출시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외식을 즐기고 스마트폰으로 인증샷을 찍어 인스타그램 등에 '#먹스타그램' '#외식스타그램'이란 해시태그를 걸어 사진을 올린다. 최근 '푸스펙족'도 등장했다. 음식(food)으로 건강의 스펙(spec)을 쌓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신조어로 건강한 식품을 깐깐하게 골라 먹는 습성을 지녔다.

아침에 대충 먹는 시리얼 하나도 시리얼 전문점에 가 외식하는 외식인류. 국내 외식 산업 시장 규모 108조원(농림축산식품부 '2017 식품산업 주요 통계', 2015년 기준) 시대에 수많은 신조어를 낳고 있는 외식인류들은 외친다. "우리 사회가 외식을 권하고 있다"고.

오늘 뭐 먹지
그래픽=김의균 기자

번거로운 '집밥' 대신 '집밥 같은 외식'

출판 편집디자이너 최예지(30)씨는 얼마 전 이사하며 주방 조리 도구를 몽땅 처분했다. '더 이상 집에서 밥해 먹을 일이 없을 것 같다'는 판단에서다. "결혼 적령기의 여자가 혼자 살면서 밥을 안 해 먹으니 삐딱한 시선으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아침은 회사 근처 편의점이나 카페에서 간편식으로 해결하고 점심은 회사 식당, 저녁은 업무상 미팅이나 모임에서 해결하다 보니 집에서 밥해 먹을 일이 거의 없더라고요." 최씨는 "한때 집밥 열풍에 휩쓸려 야심 차게 밥솥까지 좋은 것으로 바꿨으나 바쁜 일상에 집밥 해 먹는 것은 사치 같았다"고 하소연했다.

워킹맘 박나혜(40)씨는 퇴근길 서둘러 백화점 식품관부터 들른다. '마감 세일'하는 음식을 반값에 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박씨는 "정시에 퇴근해도 집에 도착하면 이미 밤 8~9시쯤 되다 보니 애들 재우기 바빠 저녁밥 해 먹을 시간이 없다"며 "주중엔 백화점 식품관에서 산 음식들이나 데우기만 하면 되는 간편식을 사다 반(半)외식으로 저녁을 해결하는 날이 많다"고 했다. 주말 저녁은 거의 외식. 주중에 가족들 모두 제대로 못 챙겨 먹었단 생각에 보상 심리로 웬만하면 뷔페나 고깃집 가서 폭식하게 된단다. "솔직히 한식은 밥, 국, 반찬 등 어느 하나 조리법이 쉬운 것이 없죠. 조리 시간이 긴 슬로푸드(slow food)인 것도 많은 데다 식재료 값도 만만치 않다 보니 사 먹는 게 더 경제적일 때도 있어요. 집밥은 많아야 일주일에 대여섯 끼 되려나. 그마저도 시간과 경제 사정을 생각하면 버거운 게 사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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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몰과 백화점 푸드코트는 외식인류들에게 ‘가성비 맛 집결지’로 통하는 곳이다. 점심을 푸드코트에서 해결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점푸족’이란 말도 생겼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2013년 즈음부터 시작해 '먹방'(먹는 것을 주제로 한 방송)에 이어 '집밥' '쿡방'(요리를 주제로 한 방송) 열풍이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TV를 켜면 집밥 해 먹는 장면, 유명 셰프들이 등장해 냉장고 속 썩기 일보 직전의 재료를 새로운 음식으로 환생시켜내는 장면, 집밥을 해 손님에게 대접하는 장면이 나왔고 TV를 본 시청자들의 다음 동선은 주방으로 향했다. 서점엔 각종 요리책이, 인터넷상엔 요리 사진·동영상이 쏟아졌다.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엔 한동안 집집이 밥해 먹은 사진, 요리 솜씨를 자랑한 식탁 사진이 '도배' 됐다. 팍팍한 사회 속 따뜻한 집밥 챙겨 먹자는 분위기는 훈풍을 탔다.

그러나 1인 가구, 맞벌이 가정 등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요리가 어려운 사람들에겐 꿈같은 얘기였다. 집밥에 허기진 사람들은 쉬운 레시피, 간단한 조리만으로 집밥처럼 차려 먹을 수 있는 간편식에 눈을 돌렸다. 오히려 집밥을 외식으로 먹는 붐이 일었다. 가정식 맛집이나 프랜차이즈 한식 뷔페가 호황을 누린 것도 이즈음. '대한민국을 이끄는 외식 트렌드'를 펴낸 이윤화 다이어리R 대표는 "집밥 열풍 이전에 외식은 특별한 공간에서 평소 먹을 수 없었던 특별식을 먹는다는 인식이 강했다면 집밥 열풍 이후부터 외식으로 집밥을 먹는 '외내식(집 밖에서 집에서 먹는 것 같은 식사를 하는 것)'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했다.

편의점 도시락·반(半)외식… 외식의 진화

'식탁 위의 한국사'(주영하)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외식 공간이 본격적으로 탄생한 시기는 1890년대 이후부터 1940년대까지라고 한다. 이 시기 조선요리옥·선술집·대폿집 등 근대적 외식 공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피란민들이 각 지역의 토속 음식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말부터 1980년대까지는 급격한 이농과 도시화로 타지에서 향수를 달래기 위한 고향 음식이 크게 유행하던 시기.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배달 음식과 다국적 음식이 속속 등장했다. 가정마다 '외식 줄이기' 운동을 펼친 IMF를 거쳐 20년이 흐른 지금,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외식인류는 대한민국의 식탁 풍경을 바꿔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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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은 현대인들이 빠르고 간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외식 공간. 편의점 도시락 매출은 최근 1~2년 사이 급증했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조재원(26)씨는 주 4~5일 점심을 편의점 도시락으로 해결한다. "식당에 가면 식사 나오기까지 시간적 여유가 없어 빨리 먹을 수 있는 편의점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다"는 조씨는 "1년 전만 해도 편의점 도시락 먹는 사람이 주위에 별로 없어 메뉴를 고를 때 선택의 자유가 있었는데 요즘엔 점심시간 시작과 동시에 편의점에 가도 원하는 메뉴를 못 먹을 때가 많다"고 했다. 조씨 같은 이들을 일컬어 '편도족(편의점 도시락을 애용하는 사람들)'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지난달 19일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발간한 '2017 가공식품 세분시장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편의점 도시락 매출은 전년 대비63.1%나 급증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편의점 도시락은 '만들어진 음식'이란 거부감이 있었지만 요즘 원룸, 사무실 밀집 지역에 자리한 편의점에선 정오가 되기 전 품절 사태가 벌어지곤 한다. 서울 광화문에 있는 CU 편의점 코리아나호텔점 직원은 "하루에 도시락을 서른 개 정도 진열해 놓는데 점심 시간 이후엔 거의 다 없어진다"며 "스파게티, 햄버거 스테이크 등 도시락 말고 간편식까지 인기"라고 했다. 이 편의점 도시락은 3900원 선. 편도족들은 여기에 물만 부어 바로 먹을 수 있는 미역국 간편식이나 비빔장을 옵션으로 선택해 자신만의 식단으로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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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11일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푸드코트의 풍경.
서울 삼성동에 사는 김명희(69)·안재석(75)씨 부부는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푸드코트에서 외식을 즐기는 '점푸족(점심을 푸드코트에서 해결하는 사람들)'이다. 은퇴자 부부인 이들은 "쇼핑은 하지 않지만 주 3~4일 점심을 고정적으로 푸드코트에서 해결하고 있다"고 했다.

최용구 현대백화점 상품본부 바이어는 "푸드코트는 유명 맛집 메뉴를 한곳에서 먹을 수 있는 데다 메뉴 가격이 6000~1만원 안팎이니 요즘같은 시기에도 합리적인 외식 공간으로 인기를 끈다"며 "인근 직장인들뿐만 아니라 고정적으로 즐겨 찾는 '키즈맘', 어르신 고객들도 많다"고 했다. 인기 메뉴는 비빔밥, 국밥 등 한식류. 주중·주말, 점심·저녁할 것 없이 온 가족 외식하는 풍경도 흔하다. 이 푸드코트는 소비 심리 위축에도 최근 3년간 매출이 13% 정도 증가했다.

집 밖에서 외식하는 것은 아니지만 포장 음식을 사오거나 배달 음식을 주문해 집에서 먹는 형태인 '반외식'도 뜨겁다. 배달 음식 주문 플랫폼인 '배달의 민족'의 경우 한 달 주문 건수는 1300만 건. 지난달부터 서울 전역의 맛집 메뉴도 '배민라이더스'를 통해 배달 서비스하면서 자연산 회, 빙수도 집 안에서 외식하는 시대를 맞았다.

바뀐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식사 방식 고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외식 횟수는 2013년 월 12.5회에서 지난해 월 15회로 20% 증가했다('2016년 외식 소비 행태'). 국내 외식 산업 시장 규모도 100조원(2015년 기준)을 넘어섰다. "외식의 증가는 산업혁명 이후 세계적인 현상"이라는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현재의 밥, 국, 반찬을 갖춰 먹는 한국식 식사 방식은 1000년을 유지해온 것이어서 바쁜 일상을 사는 현대의 한국인들에겐 적합하지 않다"며 "이것 때문에 외식 의존도가 높아진다면 되살리려 하기보다는 현대에 맞는 새로운 식사 방식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기"라고 주장한다.

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각박한 일상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외식은 '탈(脫)일상 욕구'를 가장 쉽게 채워주는 행위"라면서 "사회가 각박해질수록 외식인류는 계속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