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friday] 부모가 되어서야 깨달은 '부모 마음'

최만섭 2017. 12. 22. 09:18

[friday] 부모가 되어서야 깨달은 '부모 마음'

삶의 한가운데
[별별다방으로 오세요!]

철이 든다는 것은 계절을 안다는 뜻입니다. 여름을 살던 나무가 가을을 맞아 잎을 떨군다는 뜻입니다. 여름은 아직 가을을 모르지요. 하지만 가을은 여름을 기억합니다. 철없는 여름을 품어주는 가을의 마음, 그것이 진정한 부모 마음일 텐데요.

홍 여사 드림

부모가 되어서야 깨달은 '부모 마음'
일러스트=안병현
어제는 오랜만에 반가운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마흔 넘도록 솔로로 지내오던 친구가 드디어 짝을 찾았다는 겁니다. 놀라기도 하고, 좋기도 하여 저는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식은 언제 올리는 거냐고, 들떠서 물었죠. 그러나 친구는 후후 웃는 것 같더니, 당분간 식은 못 올릴 것 같다고 대답하네요. 양가 부모님이 반대하신답니다. 이유는 나이 차, 남자 쪽이 열 살 아래라는 겁니다. 웃던 얼굴 그대로 입이 얼어붙은 저에게 친구는 한숨을 쉬며 말하더군요. "그런데 제일 속상한 건 우리 아버지가 가장 결사적으로 반대한다는 거야. 남의 부모 마음에 못질하지 말고 혼자 살다 가래."

환호성으로 시작한 통화는 결국 위로의 말로 맺고 말았습니다. 힘내라고, 용기 잃지 말라고 말해주었지요. 하지만 전화를 끊고 나자, 친구에게는 하지 못한 말들이 제 속에 뻐근히 차오르더군요.

친구는 모르겠지만, 십 년 전에 저도 아버지에게 딱 그 말을 들었네요. 남의 부모 마음에 대못 박지 말고, 네가 물러서라고요. 어머니 돌아가시고, 자식 뒷바라지에 모든 것을 다 바쳐온 아버지였습니다. 특히 저에게는 유난한 사랑을 쏟아준 아버지인데, 제가 선택한 사랑에 대해 그런 모진 말씀을 하셨던 겁니다.

지금은 떠올리기도 싫지만, 그 당시 저는 흔치도 않은 중병을 선고받고 투병 중이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생과 사를 고민하며 아버지 손에 병수발을 받아야 했죠. 그 암울한 시기에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습니다. 사람 목숨은 병원이 아닌 하늘이 정하는 것이고, 아버지 직감으로는 너에게 아직 좋은 날이 많이 남아있다고요. 아버지의 실낱같은 예감이 맞았는지, 저는 거듭된 수술을 이겨내고 독한 치료약도 잘 견뎌냈습니다. 재발의 두려움은 어쩔 수 없었지만, 다시 몇 년을 허락받고 서러운 기쁨의 눈물을 흘리게 되었지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약해져 있던 그 시기에 운명의 짝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가 아프기 전부터 저를 마음에 뒀다는 그 사람은, 병을 미처 떨치기도 전에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병원에서 프러포즈를 받았고 병원 다니며 데이트했습니다. 그 사람은 저에게 옷이나 구두가 아닌 환자복과 슬리퍼를 대령하는 남자 친구였고, 현란한 운전 기술이 아닌 휠체어 미는 요령으로 섹시함을 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남들이 보면 이해 못 할 일이겠지만 우리 나름대로는 행복했습니다. 더구나 제 병세가 차츰 호전되는 중이었기에, 마치 온 세상이 우리를 축복하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죠.

하지만 현실의 이목은 우리를 그렇게 봐주지 않았습니다. 그의 부모님이 결사적으로 반대하신 것은 이미 예상한 일이었습니다. 병을 떨쳐냈다고는 하지만 다시 또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더구나 아이를 갖기도 쉽지 않을 거라는 여자를 흔쾌히 며느리로 받아들일 분들이 있을까요? 하지만 시부모님들의 폭언보다 더 가슴 아팠던 건 아버지의 완강함이었습니다. 남의 부모 마음에 못 박지 말고 물러서라니…. 저에게 좋은 날만 남았을 거라던 말씀은 허울뿐이었던 걸까요? 그러면 아버지는 대답하셨죠. 넌 부모 마음을 모른다. 나도 부모고 그쪽도 부모다. 부모가 되어보면 부모 마음을 안다.

하지만 부모 마음만 그렇게 중요하고, 자식 인생은 뒷전인가요? 마음에 안 찬다고 아예 사람 취급 않는 시부모님도 원망스러웠고, 자식을 마치 불량품처럼 부끄러워하는 아버지도 미웠습니다. 그냥 우리끼리 식을 올리자는 남자 친구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결국 아버지가 남친의 부모님을 만나뵈었죠. 제가 알았더라면, 그야말로 결사적으로 말릴 일이었건만, 아버지는 혼자 결행하셨습니다. 가서 뭐라고 하셨을까요? 평소 아버지 말씀대로라면, 그동안 우리 부족한 딸이 심려 끼쳐 죄송합니다 그래야 했겠죠. 하지만 아버지는 사정했던 모양입니다. 마음을 열고 받아들여 주십사….

그 일로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버지가 그렇게 하실 줄 몰랐고, 그럼에도 시부모님 마음이 꿈쩍도 않을 줄도 몰랐습니다. 더는 기다릴 것도 없었고, 이제는 염치도 모르겠더군요. 식도 올리지 않고, 우리끼리 부부의 연을 맺어버렸습니다.

그 뒤로 십여 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세상 시끄럽게 사랑을 외치던 우리 둘은, 이제 느슨한 사십 대 부부가 되어 버렸네요. 기적은 따로 있었지요. 둘 사이에, 거짓말처럼 아들이 태어난 겁니다. 그리고 그 기적 같은 선물의 청구서라도 날아오듯, 사랑하는 아버지가 작년에 세상을 뜨셨고요. 오히려 저는 십 년째 건강한데, 그럼에도 시부모님과는 여전히 불편한 채로 눈 밖에 나 있습니다. 저 역시 아이를 가운데 두고, 남편을 울타리 삼아, 마지못한 예의만 차릴 뿐이지만요.

아버지는 생전에 늘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라도 부모님께 사죄드리고 힘껏 효도하라고요. 신랑만 보내지 말고 네가 앞장서서 며느리 노릇을 하라고요. 너도 자식을 키워보니 부모 마음이 이해 가지 않느냐고요.

아, 부모 마음! 저는 그 말에 진저리가 났습니다. 자식의 인생에 벽을 세우고 담을 치는 게 부모 마음이라면, 저는 그런 거 알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아버지는 말씀하셨죠. 아직 멀었다고, 네가 자식 때문에 '생병'을 앓아봐야 부모 마음을 알 거라고요. 부모는 미안하다 말 못 하는 법이니, 네가 무릎 꿇고 빌라고 하셨죠.

그럴 때면 저는 아버지에게 따져 묻고 싶었습니다. 왜 부모는 미안하다 말 못 하나요? 부모님이 못 하시면 왜 자식이라도 그 말을 꼭 해야 하나요? 하지만 차마 묻지 못했고, 이제는 대답해줄 아버지도 안 계십니다.

그래서일까요? 어제 친구에게서 '부모 마음'이라는 말을 다시 들었을 때, 가슴 한쪽이 울컥 뜨거워지더군요. 그 말 앞에 전에 없이 작아지는 저 자신을 느꼈습니다. 어렵게 얻어, 힘들게 키운 아들 때문에 마음의 생병을 앓아본 탓인지 친구의 시부모님 마음도 조금은 짐작하겠는 겁니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하는 말이 자식 인생에 대한 지분 요구만은 아닐 겁니다. 생병을 앓으며 자식을 키우는 동안 그분들을 지탱해줬던 간절한 꿈이 아프게 무너지는 소리일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친구 아버지 또한,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상대편 부모 마음을 이해하는 게 아닐까요. 부모가 자식에게 미안하다 말 못 하는 이유는, 어쩌면 그들이 짝사랑하고 있는 약한 존재들이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어제 처음 들더군요.

저는 친구가 이쯤에서 사랑을 포기하는 건 싫습니다. 기다림의 지혜로 꼭 결실을 보길 빕니다. 그리고 시간을 거꾸로 돌린다면, 저도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시부모님의 실망감을 충분히 이해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어떠한 말씀을 하신다 해도, 그분들이 내 운명의 짝을 이토록 근사하게 키워주신 분들임을 기억하면 됐을 텐데….

고개 돌려 창밖을 보니 눈이 펑펑 내리는 오늘 아침,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부모 마음으로 모든 것을 덮어주시려나 보다 싶네요.

※실화를 재구성한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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