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Why] "고액연봉과 바꾼 배우 꿈… 뺨 맞아도 행복해"

최만섭 2017. 12. 9. 09:00

[Why] "고액연봉과 바꾼 배우 꿈… 뺨 맞아도 행복해"

'틀면 나오는' 7년차 배우 허성태

서른넷에 데뷔한 늦깎이
과장 승진 앞둔 2011년… 우연히 오디션서 입상해
꿈 좇아 무작정 서울로

매번 새 연기하는 배우로
5년 간 월세살이 하며 역할 안 따지고 연기…
여태껏 그를 본 관객 벌써 2000만명 훌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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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만 맡아온 배우 허성태가 분장을 지우고 웃는 모습은 소년 같았다. 영화 ‘밀정’에서 순사, ‘남한산성’에서는 용골대, ‘범죄도시’에선 차이나타운을 주름잡는 조선족 두목(왼쪽 위부터 시계방향)를 연기했다. 그는 “되짚어보니 악인이어도 가슴 깊은 곳엔 연민이 살아 있는 인물들”이라고 했다. / 김지호 기자·워너브러더스코리아·메가박스·CJ엔터테인먼트

지난해 개봉한 영화 '밀정'에서 송강호에게서 뺨 맞던 순사는 올해 7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범죄도시'에서 서울 가리봉동 차이나타운을 휩쓰는 조선족 두목이 됐다. 같은 날 개봉한 영화 '남한산성'에선 청나라 용골대로 등장했다.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 아니면 같은 배우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억양과 표정, 느낌이 각각 달랐다. 10년간 대기업에서 일하다 서른넷에 데뷔한 늦깎이 배우 허성태(40)다. 틀면 나온다고 '틀성태'라는 별명도 붙었다.

'남한산성'에서 이병헌과 기 싸움을 하던 그를 보고 사람들은 황동혁 감독에게 "그렇게 연기 잘하는 몽골인을 어떻게 구했느냐"고 물었다. 적어도 연극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연기자로들 생각했다. '틀성태'를 지난달 16일 서울 광화문 한 카페에서 만났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지만 가슴 깊이 숨겨두고 '난 안될 거야' 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제 얼굴을 보세요. 화면으로 봤을 때 여전히 제 마음에 안 들어요. 그런데 이 일을 할 때는 뺨 맞는 순간마저 행복합니다. 제가 특별한 게 아니라 '한번 해보자'며 나섰기 때문 아닐까요." 그가 행복한 표정으로 말했다.

허성태는 지난 2011년 한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데뷔했다. 삼겹살에 폭탄주를 곁들인 회식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 TV를 켰더니 배우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 광고와 전화번호가 스쳐 지나갔다. 번호가 눈앞에 아른거렸지만 결혼한 지 6개월밖에 안 된 아내가 옆에 있어 머뭇거렸다. 그의 꿈을 알고 있던 아내가 오히려 "밑져야 본전인데 신청이나 해보라"며 부추겼다. 당시 허성태는 한 대기업 기획조정실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과장 승진이 코앞이었다.

전화 인터뷰로 예심을 통과하자 TV 출연이 기다리고 있었다. 평생 연기 수업을 받아본 적도 없을뿐더러 일주일에 서너 번 있는 회식으로 몸무게는 92㎏까지 불어 있었다. "배우라는 직업을 떠올렸을 때의 고정관념이 있잖아요. 얼굴은 화려하고 키는 훤칠하면서 몸은 호리호리해야 한다는 기본 조건이요. 그게 아니면 연기를 잘해야죠. 저는 그 어떤 항목에도 해당이 안 됐었어요."

그가 할 수 있는 건 두 가지, 영화를 반복해서 보는 것과 다이어트뿐이었다. 회사 구내식당에서 점심 먹을 때도 국과 밥은 먹지 않고 나물로 배를 채웠다. 오디션 예선인 영화 '올드보이' 마지막 장면을 하루에 수십 번씩 보면서 따라 했다. 따라 하는 건 연기가 아니라는 걸 뒤늦게 알았지만 그때는 그것 말고 방법이 없었다. 4주 만에 18㎏을 감량했다. 예선에선 드라마 출연 경험이 있던 꽃미남 배우들을 제치고 만장일치로 통과했다. 부산대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한 이 평범한 남자는 오디션에서 5위를 기록했다.

연봉 7000만원 받던 회사를 그만두는 데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평생 부산 재래시장에서 이불을 팔아온 노모도 울면서 말렸다. 부산을 등지고 서울 독산동에 원룸을 얻었다. 하지만 영화판에선 아무도 그를 반기지 않았다. '누군가 금방 주연을 시켜주겠지, 주연이 아니면 조연이라도 시켜주겠지' 생각했지만 그를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0년 동안 부어온 적금과 보험을 하나씩 깼다. 먹는 건 해결했지만 월세 50만원이 문제였다. 오디션 없는 날엔 알바를 뛰었다. "밤을 꼬박 새우면 9만원 주는 짭짤한 일을 자주 했었어요. 하루는 이제 막 신입사원 같은 직원이 '아저씨, 지키다 졸아도 되는데 멀리 가지만 마세요' 이러더라고요. 그래도 회사에 있었으면 과장쯤 달았을 텐데 이제 그냥 '아저씨'가 된 거죠. 월세 못 내면 길에 나앉을 수 있는 게 내 현실이었던 거죠."

제작사와 방송사 주소를 인터넷에서 찾아 이력서를 돌렸다. 프로필 사진 찍을 돈이 없어 사진관 하는 팬이 공짜로 찍어준다는 말에 염치불구하고 찾아갔다. 단역 오디션만 50번가량 봤다. 그렇게 발품 팔면서 5년쯤 되니 한 달에 단역이나 작은 조연을 5개쯤 할 수 있었다. 그는 "너무 행복했어요. 다른 배우들은 '이런 역할만 하고 언제 주인공해보냐'고 하는데 전 그때 '이렇게만 하면 월세 내고 살 수 있겠다'면서 안도했죠" 했다.

비중 있는 조연 자리를 연달아 꿰차면서 그는 서울 신림동 한 아파트로 이사했다. 올해 12월까지 영화관에서 그를 본 관객 수는 2000만명이 넘는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2/08/201712080176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