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노숙 형제들에겐, 샤워기 물소리가 福音입니다

최만섭 2017. 11. 10. 06:30

노숙 형제들에겐, 샤워기 물소리가 福音입니다

입력 : 2017.11.10 03:02

[노숙인 위한 '목욕빨래방' 여는 산마루교회 이주연 목사]

온누리교회·배우 김혜자 등 후원
"단순히 씻고 빨래하는 곳 아닌 '영적 복지'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

"이 샤워 물소리를 얼마나 고대했는지 모릅니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공덕동 산마루교회 이주연(60) 목사는 샤워 부스를 보여주며 말했다. 가로세로 110㎝, 높이 2m짜리 샤워 부스 3개는 각각 문을 닫으면 외부와 차단되는 독립된 공간이다. 바로 앞엔 대형 세탁기와 건조기가 2대씩 놓여 있었다. 옆방엔 요가 매트리스가 깔렸고, 출구 쪽엔 상담실이 마련됐다. 이 교회의 '목욕빨래방'이다. 지난주 공사가 끝난 이 공간에선 '새집 증후군' 같은 페인트와 자재 냄새가 없었다. 친환경 자재를 사용한 덕택이다.

2006년 현재의 상가 건물로 이사해온 산마루교회는 11년째 서울역 노숙인을 돌보고 있다. 교인 200명 중 절반이 노숙인이다. 목욕빨래방은 이 교회의 10년 넘은 숙원 사업이다. 노숙인의 자존감 회복을 위해서다. 그동안 이 교회는 노숙인의 자존감 회복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서울 부암동과 경기도 포천의 농장에서 농사짓기, 인문학 강좌인 '해맞이 대학', 매년 가을 노숙인이 포함된 합창단의 음악회, 작년 추석부터 매월 마지막주 월요일 아침 서울역 청소 등이 그 일환이었다.

산마루교회 이주연 목사가 노숙인 교인을 위한 목욕빨래방 내 샤워 부스에 섰다. 샤워 부스는 문을 닫으면 완전히 독립된 공간이 되도록 만들었다.
산마루교회 이주연 목사가 노숙인 교인을 위한 목욕빨래방 내 샤워 부스에 섰다. 샤워 부스는 문을 닫으면 완전히 독립된 공간이 되도록 만들었다. /장련성 객원기자

목욕과 빨래는 자존감 회복 프로젝트의 하이라이트였다. 외모와 냄새는 노숙인을 스스로 주눅 들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이 목사는 "형제(노숙인)들에게 '가정의 느낌을 느낄 수 있는 것'을 물어보면 1번이 '샤워'"라고 했다. 일반인들은 잘 느끼지 못하지만 목욕하는 동안 평안, 안온,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 2013년 6월부터 노숙인들 스스로 헌금을 시작했다. 500원, 1000원씩 헌금했고, 음악회를 통해 모금도 했다. 티끌을 모았지만 뛰는 집값을 따라가기엔 버거웠다. 그러던 중 '기적'이 일어났다. 작년 초 대형 교회인 온누리교회가 도움에 나선 것. 온누리교회는 영등포역 등에서 노숙인을 도와오던 중 서울역 부근에 노숙인을 위한 목욕 시설을 장만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사전 조사를 하던 중 산마루교회가 이미 노숙인을 위한 목욕 시설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산마루교회를 돕기로 한 것. 온누리교회는 두 차례에 걸쳐 3억2000만원이 넘는 헌금을 모아줬다. 소식을 들은 탤런트 김혜자씨와 익명의 기부자들이 나서 모금액은 4억원이 넘었다. 마침 산마루교회가 있는 상가 건물 2층의 바로 옆 가게 2칸 30평을 구입할 수 있게 되면서 목욕빨래방의 꿈은 이뤄졌다.

교회는 오는 19일 공식 오픈할 목욕빨래방을 2시간 코스로 운영할 계획이다. 샤워 30분, 필라테스 30분, 상담 1시간이다. 노숙 생활을 하면서 움츠러든 육체를 쭉 펴고 근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필라테스 체조를 배우고, 전문가 상담을 통해 마음을 치유하겠다는 것. 목욕빨래방엔 가능한 한 거울을 많이 걸 예정이다. 깨끗해진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당당하게 살라는 격려다. 세탁기는 100원 동전을 넣어야 돌아가도록 만들었다. '공짜'가 아니라 스스로 돈 내고 쓴다는 마음을 주려는 것이다.

이 목사는 "단순히 씻고 빨래하는 곳이 아니라 힐링, '영적(靈的) 복지'를 위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정체성과 자존감을 높이려 했다는 뜻이다. 4개월 전부터 이 교회에 출석한다는 노숙인 윤모(62)씨는 목욕빨래방을 '축복'이라고 표현했다.

10년 숙원을 해결한 이 목사는 잠시 '드디어 목욕빨래방 주인이 됐다'는 생각이 들었으
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고 했다. "많은 분의 도움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가장 작은 이에게 해준 일이 나에게 한 일'이라는 예수님 말씀이 다시 떠올랐고, 목욕빨래방 역시 주님의 일이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산마루교회와 온누리교회는 11일 오전 9시 한강시민공원에서 노숙인 돕기 기금 마련을 위한 거북이마라톤대회를 연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1/10/201711100015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