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신화로 읽는 세상] 여의주가 무거워 승천하지 못하는 龍

최만섭 2017. 11. 7. 06:50

[신화로 읽는 세상] 여의주가 무거워 승천하지 못하는 龍

  •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입력 : 2017.01.02 03:12

존재에 대한 물음 안고 길 떠난 제주 신화의 주인공 '오늘이'
여의주 세 개 문 이무기에게 "두 개는 포기해야 승천" 조언
저마다의 집착 내려놓고 새해엔 각자 참된 길 찾기를

이주향 수원대 교수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밥 딜런이 노래했다.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야 한 인간이 비로소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밥 딜런 노래를 듣고 있으면 길 위에서 길을 찾았던 우리의 오늘이가 생각난다. 오늘이는 제주도에 전해오는 '원천강 본풀이'의 주인공이다.

오늘이에겐 진자리 마른자리 가려주는 부모가 없다. 울타리 없이 자란 오늘이는 하늘과 땅을 부모 삼고 들판의 학을 친구 삼아 자라난다. 자연을 믿었기에 가난한 줄 몰랐고 보호받지 않았기에 자유로웠던 오늘이는 그러나 외로웠다. 그 외로움 속엔 그리움이 있었다. 불쑥불쑥 올라오는 갈피 모를 그리움, 그것이야말로 길 떠나게 하는 원동력이 아닌가.

어느 날 오늘이는 바람이 시작되는 곳, 원천강에 부모가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오늘이는 부모를 찾아, 자기 근원을 찾아 길을 떠나 길을 걷는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하나. 원천강은 어디인가? 답이 없다. 답이 없는데 물음은 있다. 진짜 물음이다. 하이데거가 그랬다. 답이 있는 물음은 물음의 형식을 가장한 가짜 물음이라고. 진짜 물음은 답이 없다고. 답이 없으니 헤맬밖에. 헤매다 보면 그리움은 혼란이 되고 두려움이 된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 건 겨우 한 치 앞이 보이기 때문이다.

나그네가 되어 떠돌다 보면 안개 자욱한 날 눈앞만 도와주는 안개등처럼 한 치 앞만 도와주는 존재들을 만난다. '나'의 그림자라 해도 좋은 존재들이다. 그 존재들에 기대 오늘이는 방향을 정하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 그중에 한 송이 꽃밖에 피워내지 못하는 연못이 있고, 여의주를 세 개나 물고도 용이 되지 못하는 이무기가 있다.

오늘이가 연못에 원천강 가는 길을 묻는다. "아래로 아래로 쭉 가다 보면 남해 바다가 나오는데, 바닷가 절벽 동굴에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삽니다. 그 이무기가 길을 알려줄 겁니다. 그리고 오늘이님, 원천강에 가시게 되면 제가 왜 그 많은 꽃봉오리를 가지고도 한 송이 꽃밖에 피우지 못하는지 알아봐주세요."

오늘이는 그 이무기의 도움도 받았다. 원천강 입구까지 동행해준 이무기가 오늘이에게 자기 물음을 내놓는다. "남들은 여의주 하나만을 물고도 승천하는데 나는 왜 여의주를 세 개나 물고도 승천하지 못할까요?"

/조선일보 DB
재미있다. 그들은 오늘이에게 길을 알려주는 스승이지만 오늘이에게 답을 구하는 제자이기도 하다. 그들은 오늘이처럼 의문을 품은 존재이고 오늘이처럼 불완전한 존재이다. 그들을 만나면서 오늘이는 배운다. 길 속에 길이 있고 걸음 속에 답이 있다는 것을. 비로소 원천강에 도달한 오늘이, 오늘의 자유로움을 얻어 이무기에게 답을 준다. 여의주를 세 개나 물어 승천하지 못하는 거라고. 여의주 두 개는 돌려주라고.

언제나 보물이 문제다. 내가 집착하는 것, 포기하지 못하는 것, '나'의 보물인 것이 나의 승천을 방해한다. 한 송이 꽃만 피우는 연못엔, 두고 보기에도 아까운 그 꽃을 그냥 누구에게 던져주라고 한다. 연못이 사랑하는 그 꽃을 떠나보낼 수 있을까.

연못은 기꺼이 기분 좋게 오늘이에게 꽃을 건넨다. 당신이야말로 꽃을 받을 자격이 있는 존재라고. 비로소 여기저기서 연꽃이 피어난다. 꽃에 집착하는 한 꽃밭을 보지 못한다. 꽃은 생명이다. 생명은 오늘을 산다.

집착의 상처로 피 흘리는 사람들, 내려놓지 못해 빼앗기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내게 묻는다. 나는 나의 여의주가 나를 떠나는 걸 그대로 두고 볼 수 있을까. 온 정성을 다해 내가 피운 꽃 한 송이, 그것을 아무 뜻도 없이, 기대도 없이, 값도 없이 던져버릴 수 있을까. 그때까지 나의 이무기는 승천하지 못할 것이고, 나의 오늘이는 길 속에서 길을 찾아 헤맬 것이다.

※ 우리 전래 신화를 통해 현대적 삶의 의미를 재해석하는 '신화로 읽는 세상'을 새로 연재합니다. 집필은 이주향 교수가 맡습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01/201701010137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