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소아암 환자 돕는 IQ 154 뇌섹녀… 우리가 몰랐던 '런웨이 밖 그녀'

최만섭 2017. 10. 27. 09:10

소아암 환자 돕는 IQ 154 뇌섹녀… 우리가 몰랐던 '런웨이 밖 그녀'

IQ 154에 고등학교 수석 졸업으로 졸업생 대표 연설을 하고, 미 노스웨스턴 공대에 전액 장학금을 받은 미모의 뇌섹녀, 신디 크로포드
1990년대 '수퍼모델'이란 단어를 처음 탄생시킨 모델이자 성공한 사업가, 18세 아들, 16세 딸을 둔 두 아이의 엄마로 바쁘게 뛰고 있는 그녀를 최근 파리에서 만났다.

입력 : 2017.10.27 04:00

51세에도 빛나는 '원조 수퍼모델'

'세월'을 받아들이다
스무살 외모는 잃었지만 매년 난 성장하고 있더라
비현실적인 젊음보단 내 나이를 대표하고 싶어

끊임없는 자선 활동
백혈병으로 동생 잃고 소아암 환자들에 관심
16세에 시작한 자선활동 이젠 아이들과 함께 해

엄마 빼닮은 '모델 딸'
이번 파리 패션위크서 가장 '핫'한 모델로 주목
딸이 사랑하는 일이라면 나와 남편은 무조건 환영

'비현실적'이라는 단어가 속에서 절로 튀어나왔다. 생각보다 얼굴이 정말 작았고, 건강한 혈색은 여전했으며 한눈에 잘 담아지지도 않는 쭉 뻗은 다리에 허리선은 남들 어깨에 닿는 듯했다. 프로필엔 1m75㎝라고 적혀 있었지만 '체감'은 그보다 훨씬 크게 느껴졌다. 게다가 IQ 154에 고등학교 수석 졸업으로 졸업생 대표 연설을 하고, 미 노스웨스턴 공대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들어갔다니 '뇌섹녀'가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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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열린 시계 브랜드 ‘오메가’ 전시회에서 만난 모델 신디 크로퍼드. 건강미는 여전했으며 한결 우아하고 여유가득한 모습이었다. / 게티이미지코리아

신디 크로퍼드(Crawford·51). 1990년대 '수퍼모델'이란 단어를 처음 탄생시킨 모델이자 성공한 사업가, 18세 아들,16세 딸을 둔 두 아이의 엄마로 바쁘게 뛰고 있는 그녀를 최근 파리에서 만났다. 스위스 시계 브랜드 오메가의 'Her time' 전시장에서다. 그녀는 22년간 이 브랜드의 '얼굴' 역할을 하고 있다. 레브론 화장품, 펩시 콜라 등도 20년 가까이 모델로 일하고 있다. 그동안 큰 스캔들 없이 자기 관리에 철저했다는 뜻도 된다. 인터뷰 장소에서 만난 그녀는 "나는 정확한 사람"이라며 "모든 약속과 만남엔 철저히 시간을 지키는 것이 인생 철칙"이라고 말을 꺼냈다. 일상도 규칙적이다. 매일 새벽 6시 반이면 일어나 이메일 체크를 한 뒤 간단한 운동과 명상을 마치고 음악을 들으며 기분 전환을 한 다음, 가족을 위해 아침을 차린다. 자신의 일도 중요하지만 '엄마' 역할도 그 이상으로 잘해내고 싶단다.

―성공한 '워킹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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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 미 LA 어린이 병원에서 소아암을 이겨낸 아이들과 함께 하는 행사에 참가한 신디 크로퍼드가 화장기 없는 얼굴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 게티이미지코리아

"엄마가 인생의 가장 큰 롤모델이다. 이렇게 말하니 멋진 수트 차림에 서류 가방을 든 여성 임원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어릴 적 우리 엄마는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엄마는 남동생이 죽고 일을 시작하셨다. 이를테면 아이를 잃고 이혼까지 한, 많은 시련을 겪어낸 강한 여자다.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언제나 최선을 이끌어내는 분이었다. 난 '엄마는 정말 낙천주의자야'라고 말하곤 했다."

―어떤 분이셨나.

"언제나 일의 긍정적인 면을 보려 했고 사람들의 장점을 보려고 했다. 엄마의 힘은 주어진 삶에 대처하기 위해 어떠한 선택을 하고 어떻게 접근하는지에서 나왔다. 나와 여섯 살 차이 나는 남동생이 두 살 때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우리는 풍족하지 않았다. 엄마는 어느 날 마을에서 자선 모금 행사를 벌였다. 엄마에게 배운 건 삶을 대하는 태도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엄마가 얼마나 강인한 사람인지 깨닫게 됐다. 교사인 내 두 자매도 엄마와 비슷하다. 나도 모델이 아니었으면 교사가 됐을지 모른다."

―동생의 죽음이 어떤 영향을 미쳤나.

"내가 열 살 때였다. 당시엔 암이 뭔지, 인생이 끝난다는 게 뭔지 알지 못했다. 동생은 내 인생에서 가장 영향을 끼친 사람 중 하나다. 동생의 죽음을 계기로 한번 주어진 인생을 허투루 살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됐다. 소아암 백혈병 환자 돕기 자선 재단을 비롯해 자선 활동에 인생의 많은 부분을 바치게 된 것도 동생 덕분이다. 모델 계약을 하든, 자선 활동을 하든 무언가 하면 꾸준히, 오랫동안 최선을 다하려 한다."

―어떤 자선 활동을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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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사진가 피터 린드버그가 찍은 신디 크로퍼드의 가족 사진. 왼쪽부터 딸 카이아 거버, 남편 랜디 거버, 신디 크로퍼드, 아들 프레슬리 거버. / 오메가

"열여섯 살에 모델 일을 시작하면서 남동생이 치료받던 병원과 미국 암협회를 위한 기금을 모금했다. 시간 날 때마다 장난감을 가지고 미국 전역의 소아 병동을 방문한다. 아이들은 내가 누군지도 모른다. 그저 자기에게 방금 선물을 주고 관심을 가져 준 누군가로 안다. 그래도 좋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아이들이 좋아해 주니까. 내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막상 시작하기란 쉽지 않은데.

"요즘은 우리 부부와 친한 배우 조지 클루니와 그의 아내 아말이 열성 바쳐 일하는 인권 운동을 함께 하기도 한다. 아말이 인권 변호사 출신이라 인권에 관심이 무척 많다. 이렇게 자선 활동은 나의 인생이나 철학같이 개인적으로 연관 있는 걸 찾아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골수 기증으로 새 생명을 찾는 아이들 등 사연이 많았다. 최근 들어 특히 기억에 남는 건 3년 전 딸과 함께 페루를 찾았을 때다. 오메가 후원으로 세계 각지에서 실명(失明) 퇴치 운동을 하는 국제 비영리 단체인 오르비스 인터내셔널 활동을 위해서였다. 거의 앞을 보지 못하던 꼬마 소녀가 치료를 받고 수술 끝에 앞을 보게 됐을 때의 감동은 말로 잇지 못한다. 딸에게도 잊지 못할 경험이 됐다. 나의 도움으로 멀리 떨어진 나라의 비슷한 또래 소녀에게 새 삶을 줄 수도 있다는 것, 누군가의 힘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목격했으니까."

―딸이 최근 당신 뒤를 이어 모델로 데뷔했다. 이번 파리 패션 위크에서 가장 화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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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열린 파리 패션 위크 생로랑 쇼 무대에 오른 신디 크로퍼드의 딸 카이아 거버. / AFP 연합뉴스

"아이들이 열정을 갖는 일이라면 뭐든 좋다. 남편(랜디 거버·유명 레스토랑 사업가)은 항상 아이들에게 '네 직업을 사랑한다면 일로 느껴지지 않는다. 사랑하는 일을 하라'고 말한다. 두 아이가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찾고, 일이 삶의 일부가 되는 길을 찾도록 도와주고 싶다. 그러면 성공한 부모가 된 느낌이 들 것 같다."

신디 크로퍼드는 딸과 함께 이번 시즌 패션쇼 무대에 서면서 다시한번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20년 전 미(美)의 상징이었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인 '입술 위 점'은 1990년대 '섹시 점' '미인 점'이라 불리며 시대를 풍미하기도 했다. 광고, TV, 영화를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누드 사진'에도 당당했다. 34-25.5-36의 건강미 넘치는 몸매로 기존의 미인상을 바꿔놨다는 평가다. 디자이너 마이클 코어스는 "금발에 푸른 눈으로 상징되던 미국적 미인의 표상이 신디 이후로 갈색 머리에 육감적인 몸매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여전히 미모를 유지하고 있다.

"51세다. 모델로서는 가혹한 나이다. 50세를 앞두고는 정말 힘들었다. '50이란 숫자에선 전혀 소녀스러움이 느껴지지 않아. 난 이제 젊지 않다'며 좌절했다. 하지만 50세가 된 다음 날 '난 아직도 같은 사람이구나!'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때론 상상보단 실제가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이 들어감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됐는가.

"돌이켜보니 매해 조금씩 더 좋아지는 것 같다. 더 많은 걸 배우니까. 매일 성장한다. 외모가 20세 때 같으면 좋겠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된다. 거의 20세가 된 자녀가 있는 몸이다. 내 나이를 대표하는 여성이 되길 원한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자신을 돌보고, 삶의 다른 부분들을 발전시키는 일. 지난날이 멋졌고 재미있었지만, 현재도 멋지고 미래도 멋졌으면 한다. 그래서 과거를 추억하는 것만이 아니라 오늘 내 자리를 받아들이고 그 의미를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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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디 크로퍼드와 딸 카이아 거버. 딸 카이아 거버는 지난 8월 뉴욕 패션 위크에 데뷔했다./ AP 연합뉴스

―가족에 대한 애착이 큰 것 같다.

"아이를 낳고 비로소 내 삶이 완전해졌다. 부모가 된다는 건 세상에서 가장 이타적인 일이다. 남편은 나의 열성적인 후원자다. 남편은 내 촬영 장소에 자주 따라와 언제나 돕는다. 나와 함께 일하는 이들과 금세 친해지고 마음을 나눈다. 정신적 후원만큼 고마운 것도 없다."

―행복의 조건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사소한 일상을 잘 지켜내는 것. 최근 남편이 아이들을 찍은 오래된 비디오를 모두 찾아서 디지털로 옮겼다. 일일이 필름을 다 찾아서 변환했다. 잊고 있던 일상이 되살아났다. 멀리 떨어져 있는 오래된 친구들에게 "세상에, 우리 아들 프레슬리가 네 살 때 어땠는지 좀 봐"라면서 보내줄 수도 있다.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행복하기 위해 가족끼리 다짐하는 게 있다면.

"과거가 멋지다고 생각하면서도 지금 이 순간을 최대한 축복하자고 한다. 현재에 열정을 쏟고, 그리고 생각한다. 'What's next?(다음은 뭐지?)' 내일이 기다려지는 삶. 우리 가족의 모토이자 행복의 원천이다."

신디 크로퍼드 프로필

1966 미국 일리노이주 탄생

1982 지역 매거진 커버 모델

1983 미 엘리트 모델 에이전시 발탁

1984 드캘브 고등학교 수석 졸업
         노스웨스턴대 화학공학과 전액 장학생

1986 뉴욕서 모델 활동 위해 중퇴

1989~1995 MTV '하우스 오브 스타일' 진행

1990 모델 클라우디아 쉬퍼, 린다 에반젤리 스타 등과 함께 영국 보그 표지 장식. 이때부터 '수퍼모델'이란 말 탄생

1990년대 패션지 커버 1000회 이상 등장

1991~1995 배우 리처드 기어와 결혼·이혼

1998 사업가 랜디 거버와 결혼

2002 미 피플지 '가장 아름다운 50인' 선정

2007 미 자선단체 로널드 맥도널드 하우스 채러티 공식 후원 멤버

2015 자서전 '비커밍'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