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루터 종교개혁의 최대 수혜자는 인쇄업자였다?

최만섭 2017. 10. 27. 08:57

루터 종교개혁의 최대 수혜자는 인쇄업자였다?

올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았다.
이를 2년 앞둔 2015년, 독일 시사 교양지 슈피겔은 책 '1517 종교개혁'을 펴냈다.
생소한 소재와 인물들을 등장시켜 당시 상황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입력 : 2017.10.27 07:14

[Books]
 

1517 종교개혁
디트마르 피이퍼 등 엮음
박지희 옮김|21세기북스
340쪽|1만8000원


루터가 일으킨 종교개혁의 최대 수혜자(受惠者)는 누구였을까?

독일 시사 교양지 '슈피겔'이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지난 2015년 펴낸 이 책에 따르면 최대 수혜자는 당시의 인쇄업자들일 가능성이 높다.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이용한 인쇄술을 고안한 것은 1440~50년대. 반세기 사이 인쇄술은 독일 여러 도시에 꽤 확산된 상태였다. 뉘른베르크, 라이프치히 등이 대표적 도시였다. 문제는 이 기술을 활용해 찍어낼 원고가 별로 없었다는 점. 인쇄업은 '굶주린' 상태였다. 이때 등장한 루터는 인쇄업자들에겐 구세주였다.

예나 지금이나 '금지' '불온' 딱지가 붙으면 더 들춰보고 싶은 법. 무명의 수도사가 당대 최고 권력자 교황과 맞붙은 사건은 센세이셔널한 뉴스였다. 루터가 1517년 발표한 '95개조 논제'는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논제는 이듬해 말까지 16판까지 인쇄되며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인쇄본은 독일 전역은 물론 유럽 전체로 퍼져나갔고 바젤, 스트라스부르 같은 도시의 인쇄기계도 쉴 새 없이 인쇄물을 쏟아냈다.


저돌적인 루터는 단행본 저서와 독일어 성경 등 독서 시장에 쉬지 않고 새 책을 공급하는 저자이자 번역자였다. 그의 이니셜 'M.L.'은 판매 보증 수표였다. 게다가 종교개혁 논쟁이 불붙으면서 가톨릭이 내놓은 루터에 대한 비판, 프로테스탄트 내부의 갈라진 주장들도 모두 성명서와 책 등 인쇄물로 나왔다. 루터가 불려가 의견 철회를 요구받은 보름스 제국의회 도중에도 심문받는 루터 모습을 그린 판화들이 '갓 구운 빵'처럼 인쇄돼 나왔다. 종교개혁 논쟁을 거치며 인쇄된 책은 '핫(hot)한 매체'가 됐다.

안톤 폴 베르너 '보름스 회의의 마르틴 루터', 1887년 작. /21세기북스

무명 수도사 vs 교황
당대 최고의 센세이션
논쟁 찬반 ‘출판 전쟁’
인쇄 수요 폭발시켜

종교개혁 500주년 맞아
獨 언론·학자 공동 집필
루터 약점도 꼼꼼히 지적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올해 국내 독서 시장에도 루터와 종교개혁을 다룬 책이 쏟아졌다. 그 가운데 이 책이 눈길을 끄는 것은 흔히 접하기 어려운 소재와 인물들을 등장시켜 500년 전 상황을 입체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슈피겔 필진과 역사학자, 신학자, 서지학자 등은 26개 퍼즐 조각(주제)으로 종교개혁사라는 그림을 완성한다. 루터의 생애와 당시 정치적·사회적·문화적·신학적 배경 설명은 기본. 루터와 종교개혁가들을 지지하며 무력을 동원해 적극 보호한 기사(騎士) 지킹엔, 루터의 저서에 강렬한 삽화를 그려 '그림 폭탄'을 날린 당대의 화가 크라나흐, "독일어로 된 루터 박사의 글은 전부 읽었다"며 논쟁에 뛰어든 여성(아르굴라 폰 그룸바흐) 이야기는 다른 책에서 접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언론인 특유의 대중적 글쓰기는 이 책의 또 다른 매력. 면벌부(면죄부)를 "오늘날로 말하면 기부 캠페인이나 크라우드펀딩 같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보름스 제국의회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1520년 12월 중순부터 1521년 5월 31일까지 일지(日誌)식으로 정리한 '황제와 제국 앞에서'라는 글은 잘 만든 사극(史劇)처럼 생생하다. 1520년 신성로마제국의 새 황제로 선출된 카를 5세 이야기를 다룬 글의 도입부를 느닷없이 "무조건 아헨이어야 했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며 독자의 궁금증을 유도하기도 한다.

열렬한 종교개혁파 화가 루카스 크라나흐는 루터의 초상화(왼쪽)를 그린 것은 물론 루터의 저서에 강렬한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오른쪽 그림은 1523년 크라나흐가 제작한 소책자 '교황나귀'의 표지 그림. 기형적인 나귀의 모습은 타락한 교황권을 상징한다. /21세기북스

'팩트 체크'도 잊지 않는다. 흔히 1517년 10월 31일 루터가 비텐베르크 교회의 문에 '95개조 논제'를 망치로 못을 박아 부착했다고 알려진 부분에 대해선 물음표를 붙인다. 루터가 생전에 자기 입으로 그런 사실을 말한 적이 없고, 이 이야기를 최초로 전한 루터의 동지 멜란히톤은 당시 비텐베르크에 없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루터보다 1세기 앞선 보헤미아의 종교개혁가 후스가 화형당할 때 '기도했는지, 고함을 질렀는지'에 대해서도 엇갈리는 주장을 모두 소개한다.


루터의 약점도 가감 없이 다룬다. 유부남 제후의 중혼(重婚)을 비밀리에 눈감아줬다가 들킨 이야기, 유대인들에게 노골적 적대감을 드러낸 이유도 설명한다. 루터의 반대편, 가톨릭 내부 개혁을 추진했던 예수회 이야기도 다룬다. 당시 쾰른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예수회 회원 베드로 가니시오가 성경을 가톨릭적 관점으로 해설한 '교리문답'이라는 책 역시 당시 100만부가 팔렸다고 한다.


종교개혁의 역사를 종횡무진하다 보면 문득 종교개혁을 촉발한 '면벌부의 운명'이 궁금해진다. 이 책은 그 답도 준비했다. "면벌부 판매는 1563년에 금지되었고, 이에 더해 1570년에 교황 비오 5세는 누구든지 면벌부를 판매하면 파문할 것이라고 공표했다."(54쪽)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