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세계적 내시경 기술 개발해도… 병원 이름으론 창업 길 막혀

최만섭 2017. 10. 12. 06:38

세계적 내시경 기술 개발해도… 병원 이름으론 창업 길 막혀

입력 : 2017.10.12 03:04

[의료산업을 병원 밖으로] [上] 기회 날리는 첨단 의료기술

규제 탓에 교수 개인이 창업하면 체급 작아져 세계적 경쟁에 불리
삼성전자·삼성병원의 장점 모은 조인트 벤처 하나도 없는 상황
年 7% 성장 헬스 시장 놓칠 우려

인공지능 의사, 유전체 분석을 통한 정밀 의학, IT 디지털 헬스, 재활 로봇 등 4차산업 기술이 태동하면서 의료 산업이 뜨고 있다. 여기에 전 세계적으로 노인 인구가 늘면서 고령 의료 산업이라는 새로운 판도 열리고 있다. 이에 국내 최고 인재들이 모여 있고, 세계적인 임상 기술을 지닌 대형·대학병원을 중심으로 의료 기술 사업화와 다양한 회사 창업을 통해 의료 산업을 키워야 할 상황이다. 하지만 현실은 각종 규제에 산업화 날개가 묶여 있다.

◇논문만 쓰고 끝나는 대형병원들

서울아산병원은 조기 위암 암세포가 있는 위점막을 내시경으로 제거하는 시술 건수가 1만건이 훌쩍 넘는다. 췌장, 십이지장, 대장 등을 포함해 국제적으로 내시경 시술을 가장 많이 하는 병원으로 꼽힌다. 이에 병원은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90여억원을 지원받아 진단과 치료 정확도를 높이는 첨단 소화기 내시경 개발에 나섰다. 병원은 시술 도중에 형광 조영제를 뿌려 암 감별을 쉽게 하고, 내시경에 소형 내시경을 넣어 치료 기법을 혁신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서울아산병원은 새로운 내시경 기기 개발의 최적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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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유전체연구소에서 연구원들이 유전자 검사를 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은 한 해 방문 환자 202만명, 수술 건수 4만7000여건, 국제 학술지 논문 1100여편을 내는 세계 최고 수준의 병원이지만, 의료 기술 회사 창업 건수는 전무하다. 국내법상 삼성서울병원은 비영리 법인 삼성공익재단이 세운 병원이라 회사를 설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남강호 기자
하지만 법규상 아산병원은 비영리법인 아산사회복지재단이 세운 병원이라 의료기술 회사를 창업할 수 없다. 교수 개인 창업 형태에 머물렀다. 회사 규모가 미들급에서 플라이급 정도로 낮아진 것이다. 이에 따라 병상수 2700여 개로 세계 최대 규모로 꼽히는 서울아산병원에 의료기술 회사가 한 개도 없다. 영안실을 운영하는 장례식장업, 음식점업, 환자 대상 미용실업은 가능하나, 정작 의료기술과 임상데이터를 활용한 의료기술 회사를 설립할 수 없는 것이다. 교수 개인 창업 회사만 두 개 있을 뿐이다.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은 2000년 이후 76개의 의료기술 회사를 만들어 전 세계 의료 시장에 진출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10년간 국내 의료기기 분야 특허를 1964건 출원했다. 의료기기 분야 특허 최대 출원 기업이다. 그럼에도 삼성전자와 삼성서울병원이 세운 조인트 벤처가 한 개도 없다. 병원 규제 탓에 세울 수 없다. 세계 최고 반도체와 IT 기술을 가진 회사와 국제적인 의료 기술을 가진 두 곳이 한쪽은 특허만 내고, 한쪽은 논문만 쓰는 셈이다.

◇연구중심병원도 규제에 묶여

글로벌 헬스케어 시장 성장 추이
정부는 지난 2013년 환자 진료에만 매달리지 말고 의료기술 R&D를 통해 의료 산업화를 주도하라는 뜻으로 서울대병원,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고려대병원 등 10개 병원을 연구중심병원으로 지정했다. 이후 이 병원들의 특허 출원 등 기술 실용화가 2013년 547건에서 2016년 779건으로 1.4배 늘었다. 외부로의 기술 이전 건수도 이 기간 65건에서 126건으로 두 배가량 늘었다. 의료 기술 사업화의 싹이 튼 것이다.

하지만 연구중심병원도 직접 의료기술 회사를 세울 수 없다. 병원에서 나온 기술로 회사가 차려져도 주도적인 지분 참여가 불가능하다. 소규모 사업화만 하다 보니, 지난해 의료기술 이전 수입이 10개 연구중심병원 다 합쳐 59억원뿐이다. 교수 개인 창업도 각 병원당 평균 1.6개뿐이다. 반면 미국 메이요 클리닉은 한 해 200여 개의 의료 기술 사업화 아이템이 쏟아져 나온다.

대학병원이 의료기술 회사를 차리려면 대학 본부의 산학협력단을 통해야 한다. 병원이 창업에 필요한 돈과 기술을 대학에 보내면 대학 주도로 회사가 세워지는 구조다. 정작 의료 기술을 개발하고, 환자에게 적용하는 병원이 셋방살이하듯 조연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 대학병원은 기술 회사와 벤처를 세우는 데 아무런 제한이 없다.

지금까지 의료산업 활성화 논의는 영리병원 도입이나 병원 해외 진출 위주로 다뤄졌다. 이마저도 의료 영리화 이슈로 소모적인 논쟁만 하다 흐지부지됐다. 산업화 효과 면에서도 몇몇 성공 사례에 머무는 수준이다
. 미래 성장 동력 산업으로 확장 가능성은 작다는 평가다. 반면 의료 기술 산업화 분야는 규제만 풀리면 확장성이 무한에 가깝다. 연구중심병원 협의회 이상헌(고려대 의대 교수) 회장은 "1970·80년대 우수한 인재가 기계공학과 전자공학에 몰려 자동차와 반도체 산업을 일으켰듯이 이제 우수 인재가 몰려 있는 대형·대학병원이 의료 산업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0/12/201710120029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