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백영옥의 말과 글] [16]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다면

최만섭 2017. 10. 8. 08:49

[백영옥의 말과 글] [16]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다면

  • 백영옥 소설가

입력 : 2017.10.08 03:07

백영옥 소설가
백영옥 소설가

'퇴사학교'의 인기 커리큘럼 중 하나가 '사표 쓰고 세계 일주 여행기 내는 법'이라는 얘길 들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를 찾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과 닿아서 생긴 일일 거다. 나 역시 관계에 지쳐 있던 때, 멀리 떠나 '진짜 나'를 찾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만약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정말로 알고 싶었다면 자기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 묻는 편이 훨씬 유용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지 않을까? 굳이 외국까지 가서, 문화적 배경이 전혀 다른 곳에서, 언어도 통하지 않는 상대와 대화하고, 그 결과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된다는 말을 나는 믿지 못하겠다. 고로 '나를 찾는 여행'의 진짜 목적은 '만남'에 있지 않고, 오히려 나에 대한 지금까지의 외부 평가를 재설정하는 데 있다고 본다."

우치다 다쓰루의 '하류지향'에서 이 문장을 발견했을 때, 정신이 났다. 하지만 이 말에 100% 동의하진 않는다. 여행이 무용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가령 여행은 소설의 '인칭'이 바뀌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 소설이 안 풀릴 때, 나는 간혹 1인칭 시점을 3인칭으로 바꿔 쓰는 모험을 감행한다. 힘들고 가혹하지만 놀라운 효과가 있다. 시점이 바뀌면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소설의 '사각지대'가 보인다. 여행은 조금 더 높은 곳에 올라가 '나무' 대신 '숲'을 보게 하는 효과가 있다.

'진짜 나를 찾고 싶다'라는 마음속에는 누군가에게 더 사랑받고 싶고, 더 존중받고 싶다는 어린 시절부터 충족되지 못한 욕구가 숨어 있다. 그것이 '자아를 찾는 여행'의 형태로 드러나는 것이다. 하지만 나에 대해 알고 싶다면, 어쩌면 떠나는 것이 아니라 머물러야 하는지도 모른다. 떠나는 행위 자체보다 다시 '돌아오는 

행위'가 더 중요한 것이다. 나무 한 그루는 숲의 구조와 주변의 맥락 안에서만 온전히 설명될 수 있다. 바다를 낀 소나무 숲과 고층 건물 사이 플라타너스 숲이 같을 수 없다. 진짜 나를 알기 위해선 내가 가진 관계의 구조부터 알아야 한다. 저자의 말처럼 낯선 곳의 외국인과 대화하기보다 어쩌면 나를 아는 친구나 동료, 부모님을 찾아가는 쪽이 현명한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0/07/201710070103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