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연극과 치명적 사랑… 마라톤 같은 성실함이 장수의 비결"

최만섭 2017. 10. 3. 06:32

"연극과 치명적 사랑… 마라톤 같은 성실함이 장수의 비결"

입력 : 2017.10.03 03:02

[연극 '장수상회' 주인공 신구·손숙]

치매 걸린 노년의 사랑 이야기
서울 국립극장서 오는 8일까지

"요즘 저 치명적인 사랑에 빠졌어요. 연극이란 상대와요. 대사 없이 앉아 있어도 좋으니 무대에 설 수 있는 순간까지 뭐든지 하고 싶어요."(손숙)

"말년이 되니 연극에 애착이 굉장히 생겨요. 연극이 내 고향이었잖아요. 시간, 돈 들여서 와주는 관객들 보면 소름 끼치게 감동하지요."(신구)

연극‘장수상회’의 주연을 맡은 배우 신구(왼쪽)와 손숙
연극‘장수상회’의 주연을 맡은 배우 신구(왼쪽)와 손숙은“연기는 흰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창조의 작업”이라며“마라톤 같은 성실성이 화폭을 완성하는 가장 큰 덕목”이라고 말했다. /남강호 기자
8일까지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되는 연극 '장수상회' 주인공 배우 신구(81)와 손숙(73)은 "연극처럼 재밌는 직업이 또 어디 있느냐"며 서로를 향해 웃었다. 강제규 감독의 동명 영화가 원작인 '장수상회'는 치매라는 무거운 주제를 따스하고 애틋한 가족애로 보듬은 작품. 까칠한 노신사 김성칠(신구·우상전)이 옆집으로 이사 온 꽃가게 주인 임금님(손숙·김지숙)을 만나 가슴 설레는 시간을 만든다. 툴툴대던 성칠이 금님을 생각하면서 마치 아이처럼 콩닥거릴 때 객석은 웃음과 눈물로 뒤덮인다. 신구는 "기억 상실을 다룬 작품 중 고전 영화인 '마음의 행로'(1942)가 많이 떠올랐다"며 "지금 곁에 있는 사람 손이라도 한 번 더 잡아주면서 마음을 나눌 시간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두 배우가 커플로 연극 무대에서 호흡을 맞춘 건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2013), '3월의 눈'(2015)에 이어 세 번째. 손숙은 "처음엔 기대를 크게 안 했는데 작품이 보면 볼수록 예뻤다"면서 "무엇보다 신구 선생님이 출연한다는 소식에 무조건 오케이 했다"며 웃었다. "연극 밖에서 활동하다 농익어서 더 근사한 배우로 돌아온 분은 신구 선생님이 유일하다고 생각해요. 연극에 대한 경외심이나 해석하는 깊이 등 모든 면에서 보는 이를 긴장하게 만들지요."

동랑 유치진 선생의 지도를 받으며 드라마센터(현 서울예대의 모태) 1기로 들어가 1962년 연극 '소'로 데뷔한 신구는 "먹고 살려다 보니 TV나 라디오에 발을 디디느라 연극에 적극 참여하는 게 어려웠다"고 했다. "원래 좀 바보 같고 소심한 성격인데 연극은 무대에 서면 설수록 자꾸 새로운 것이 보이고 용감한 사람도 돼 볼 수 있어 매력적이고 행복했죠."

이번 연극은 '기억'과 '가족'이란 주제를 성찰하게 한다. 머리는 재생의 능력을 잃었으나 몸과 마음은 우리도 모르는 새 본능적으로 순간순간들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손숙은 "연극이 내겐 가족처럼 애증의 관계"라면서 "어릴 땐 '연극쟁이'라며 가난한 사람 취급하고, 표 좀 팔아오라는 얘기에 괜히 자존심도 상해 반발이 많았었다"고 고백했다. "그런데 결국 연극이, 무대가 절 가족같이 품어주더라고요. 연극을 하겠다는 후배들 보면 내 자식처럼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요. 10년 전만 해도 은퇴 같은 걸 생각해 봤지만 지금은 마지막 순간까지 무대에서 살고파요."

단단한 발성, 노련한 몸짓으로 무대를 꽉 채우는 에너지를 보면 두 배우의 나이는 무색하기만 하다. 신구는 "함께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이)서진이랑 가끔 술 도 마시고 젊은 친구들이랑 어울리면서 나이에 구애받고 살지는 않는다"며 "조물주가 나한테만 이런 혜택을 준 건 아닐 테니 건방지지만 않게 사는 게 목표"라며 너털웃음을 웃었다. 손숙이 넉살로 맞장구를 쳤다. "지금까지 일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운이에요? 게다가 이런 '미녀들'과 매번 파트너를 바꿔가며 부인도 삼았다가 애인도 돼보고. 안 그래요? 하하!"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0/03/201710030000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