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윤대현의 마음읽기] "미안해, 내 탓이야" 사과하는 용기

최만섭 2017. 9. 4. 09:17

[윤대현의 마음읽기] "미안해, 내 탓이야" 사과하는 용기

  •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입력 : 2017.09.04 03:12

'내 탓'보다 '네 탓' 찾아내 잘못 합리화하는 경향 많아
"미안해, 내 탓이야" 반성과 "다시는 실수 안 할게" 약속과
"대신 맛집에서 쏠게" 보상까지… 적절한 사과는 관계 좋게 해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네 탓이야' 때문에 속상하다는 하소연이 적지 않다. 예를 들면 '남편이 아이가 잘할 땐 다 자기 닮아서라 하고, 아이가 실수할 때는 모두 제 탓이라고 하니 너무 짜증납니다' 또는 '직장 상사가 본인이 지시해 놓고는 일이 잘못되니 저에게 탓을 돌려 울화병이 생겼어요' 등이다.

'교통이 혼잡해 약속에 늦었어'란 변명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 싶은데, 자기 경험을 돌아보면 실제 차도 막혔지만 출발 자체가 늦은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내 탓'이 있는데 다른 쪽에 탓을 돌리는 것에 우리 마음은 익숙하다. 내 평판이나 가치를 지킬 수 있는 방어 수단이기 때문이다. '내 탓'보단 그럴듯한 '남의 탓'을 빠르게 찾아내어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하는 프로그램이 우리 마음에 있는 셈이다. 달리 말하면 '내 탓이오'보다 '네 탓이다'가 더 본능적인 생존 반응인 것인데, 그래서 '내 탓이오'라 진심으로 사과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자신의 잘못에 대한 합리화도 깨뜨려야 하고, 잘못을 인정했을 때 자신의 평판이 떨어지는 두려움도 견뎌야 한다. 본능적으로 남의 탓으로 돌리려는 마음에 브레이크를 밟는 것에도 연습이 필요한 셈인데, 그러지 않으면 남의 탓만 하는 인격으로 살 수 있다.

사과할 일이 생겼다면 우선 '미안하다'라 표현을 하는 것이 시작이다. 그리고 그 문제가 '내 탓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잘못한 일이 있으면 사과할게'란 말은 사과가 아닌 공격이다. 내 잘못을 모르겠으니 상대방에게 내 잘못을 찾아 보란 이야기다. 이런 말로 사과를 시작하면 상대방 마음도 더 상하기 쉽고 타이밍도 놓치게 된다. 기왕 사과를 할 거라면 즉각적으로 '미안하다, 내 탓이다'라 하는 것이 상대방 마음을 푸는 데 도움이 된다.

여기에 '다시는 이런 실수는 없을 거야'라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면 사과가 더 진실해진다. '내 탓이다'라고 해 놓고는 그 실수를 반복하면서 사과만 하는 사람을 신뢰하긴 어렵다. 실수에 대한 재발 방지 약속은 내 마음도 다시 한 번 챙기게 해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실제 그 약속을 지켜 나가면, 잘못은 했어도 약속한 말을 지키는 사람이란 이미지가 만들어져 시간이 가면서 오히려 나에 대한 신뢰가 커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재발 방지 약속과 함께 이번 실수에 대한 구체적인 보상까지 약속하면 사과가 더 묵직해진다.

가벼운 예를 들면, 친구와의 저녁 약속을 당일 어기게 되었을 때, 우선 '미안해, 사정은 있지만 결국은 내 잘못이지'라 이야기한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도록 내가 약속시간을 더 잘 챙겨 볼게, 최소한 일주일 전에는 이야기해 줄게'라고 재발 방지를 약속한다. 그리고 '오늘 약속을 어겼으니 다음 저녁은 내가 맛집에서 쏠게'라는 보상으로 마감한다. 여기서 새로운 약속 날짜를 잡을 때 오늘 약속을 어긴 것이 미안해서 급하게 '내일 어때' 하는 것보다는 여러 개의 날짜를 주고 상대방이 선택하게 하면 좋다. 우리 마음은 선택의 자유로움이 증가할 때 상대방이 나를 아낀다고 느낀다. '뭐 먹을까 물어봐 놓고는 항상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가는 상사가 힘들다'는 직장인들의 불만 사연이 꽤 많다. 먹고 싶은 것을 못 먹는 것보다 선택의 자유를 힘으로 독점하는
것이 힘든 것이다. 상사도 손해다. 점심 값 내주며 구성원들의 마음을 잃기 때문이다.

윗사람이나 친구에게 하는 사과보다 어려운 것이 자녀나 후배에게 하는 사과다. 내 힘이 약해지면서 나를 무시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 때문이다. 그러나 적절한 사과는 상대방이 자신의 가치를 존중해준다는 느낌을 갖기에 상대방의 자존감을 튼튼하게 해주고 관계도 더 돈독하게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9/03/201709030175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