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8.31 03:00
[과학계 치열한 논쟁]
- 해부학파
인간 발성기관만 독특한 진화
유인원은 聲道 짧아 말 못해
- 뇌과학파
오랑우탄도 자음 만들 수 있어… 뇌 기능 차이로 말 못할 뿐
◇"유전자 차이로 발성기관 형태 달라"
먼저 유인원은 인간과 발성기관의 형태가 달라 사람처럼 말을 할 수 없다는 해부학파의 주장이 있다. 입 주변이 툭 튀어나와 있고 소리를 만들어내는 성도(聲道)도 짧아 모음과 자음을 자유롭게 만들지 못한다는 말이다.
이스라엘 헤브루대 유전학과의 리란 카멜 교수 연구진은 최근 인간이 유인원과 다른 발성기관을 갖게 된 과정을 유전자 차원에서 밝혔다. 연구진은 현대인과 5만전 년 인류의 직계 조상, 그리고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 등 멸종한 인류의 DNA를 침팬지의 DNA와 비교했다. 특히 유전자에 메틸(CH4) 분자가 달라붙은 곳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메틸이 붙으면 유전자 기능이 정지하고 메틸이 떨어지면 유전자가 작동한다. 즉 공통 조상에서 물려받은 유전자 중 각자 진화를 거치면서 기능을 하지 않게 된 부분을 추적한 것이다.
현대인은 얼굴 형태와 목구멍에서 소리를 내는 후두(喉頭)의 모양과 관련된 유전자의 활동이 침팬지와 크게 달랐다. 예를 들어 NFIX 유전자는 현대인에서는 거의 작동하지 않았다. 이 유전자는 침팬지에서 턱이 앞으로 튀어나오게 한다. 인간이 침팬지보다 얼굴이 평평해진 것은 바로 이 유전자가 침묵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발성기관의 가로세로가 침팬지와 달리 거의 같은 길이가 된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 연구 결과는 미국 콜드스프링하버연구소의 생명과학 논문 공개 사이트(bioRxiv)에 실렸다. 연구진은 "현대인의 유전자에서 보이는 메틸화(化)는 다른 종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며 "이번 결과는 인간이 남다른 발성기관의 진화를 거쳤음을 입증한다"고 밝혔다.
◇"뇌의 언어 조율 기능이 더 중요"
해부학파의 주장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스스로 말을 만들어낼 만큼 뇌가 발달하지 못해서 그렇지 유인원의 발성기관이라도 사람의 말과 같은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목에서 같은 소리를 내도 입술이나 혀의 형태에 따라 다른 말을 만들 수 있다. 오랑우탄 역시 목에서 나온 소리가 같아도 입술을 삐죽 내밀거나 부딪치는 형태를 달리해 각기 다른 자음을 만들어냈다.
미국 프린스턴대의 아시프 가잔파르 교수도 지난해 12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붉은털원숭이도 사람같이 말을 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원숭이의 혀와 입술, 후두 부분을 촬영한 MRI(자기공명영상) 영상들을 결합해 해부학적 구조에 맞게 발성기관의 각 형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시뮬레이션 모델을 만들었다. 시뮬레이션에서 원숭이 역시 목에서 같은 소리를 내도 입술 등의 모양을 달리해 '배트(bat)'와 '보트(bot)'처럼 다른 말을 만들 수 있었다.
가잔파르 교수는 "결국 발성기관의 구조보다는 뇌 기능의 차이가 인간과 유인원의 언어 능력을 다르게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는 "발성기관은 말을 하는 데 필수적인 설비로 볼 수 있다"며 "최근에는 소리를 내는 설비의 중요성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이를 조율하는 뇌가 없다면 언어 능력이 발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이 점에서 영화 속 시저가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제를 흡입하고 뇌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인간의 말을 하게 됐다는 설정은 과학적 근거가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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