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 노조

강경희 칼럼 -GM은 한국에서 철수할 것인가?

최만섭 2017. 8. 31. 08:45

강경희 칼럼 -GM은 한국에서 철수할 것인가?

입력 : 2017.08.31 03:17

한국GM, 3년 누적 적자 2조원… 매각방지 조항도 10월에 끝나
매년 가파른 임금인상 요구로 본사에 부정적 낙인 찍힌 노조
당장 전면 철수는 안 하겠지만 노조 안 변하면 위기 가중될 것

강경희 논설위원
강경희 논설위원

미국 자동차 회사 GM이 2002년 대우자동차를 인수해 만든 한국GM의 철수설이 나돈다. 수년 전부터 나왔지만 이번은 좀 더 심각해 보인다.

왕년에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였던 미국 GM에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회의 도중 뱀이 나왔다. GM 사람들은 하던 회의를 제치고 뱀을 어떻게 처리할지 회의했다. 결론이 안 나 외부 컨설팅 회사에 맡기기로 했다. 그새 뱀은 가버렸더라'는 얘기가 GM 조직 문화를 풍자하는 걸로 회자됐다. 긴 회의와 토론으로 의사 결정이 느렸다. 굼뜬 것보다 더 심각한 건 방만한 경영이었다. 이 자동차 제국은 망해가는데도 노조의 과도한 임금·복지 요구로 직원과 퇴직자들한테 주는 건강보험 보조금만 한 해 8조원에 달했다.

지금의 GM은 뱀도 지쳐 도망간다는 그 GM이 아니다. 2009년 파산하고 미국 정부의 공적 자금으로 기사회생한 새 GM이다. 이 과정에서 노조도 고통 분담을 해 원가를 절감했다. 새 GM은 '선택과 집중'으로 빠르게 글로벌 사업도 구조조정하고 있다. 적자 내는 호주, 러시아, 인도 등지에서 차례로 철수했다. 2014년 취임한 여성 CEO 메리 바라 회장은 구조조정에 더 바짝 속도를 낸다.

이런 여건에서 GM의 소형차 전진 기지였던 한국GM 사정이 급격히 나빠졌다. 본사가 유럽 사업 등을 정리하는 바람에 한때 완성차와 반조립품 합쳐 200만대 넘게 생산하고 수출하던 물량이 작년 125만대로 40%나 급감했다. 2014년부터 3년간 누적 적자가 2조원에 달한다. 설상가상으로 GM 본사가 한국GM을 마음대로 처분하지 못하게 산업은행과 합의한 조항이 오는 10월 16일 종료된다. 이런 상황이어서 철수설이 증폭되고 있다.

얼마 전 국회의원회관에서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재로 한국GM 상황을 진단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 온 한국GM 노조원들에게서도 고용 불안에 대한 절박함이 강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안타까운 건 이런 위기에도 노조의 생각과 대처 방법이 별반 달라진 게 없다는 점이었다. "회사가 내놓는 경영 실적을 못 믿겠다" "인건비 실상이 잘못 알려졌다" "대우차를 GM에 팔지 말고 국유화했어야 하는데 헐값에 넘겨 이리됐다"고 성토하는 노조원도 있었다. "한국GM이 더 투명한 경영을 하도록 정부가 구체적 대책을 마련하라" "완전 월급제를 시행하라"고도 주장했다.

한국GM 부평공장 모습. /조선일보 DB
노조 지적처럼 GM 본사가 내놓는 한국GM의 실적에 석연치 않은 점도 있다. 그럼에도 지금 노조가 해야 하고, 마음 먹으면 할 수 있는 건 먼저 스스로 변화하는 것이다. 그동안 GM 본사는 한국의 강성 노조에 여러 차례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미국 본사에서 메리 바라 회장을 만난 지인이 들려준 얘기다. 바라 회장은 그에게 'GM 글로벌 사업장의 임금 상승률 도표'를 보여주면서 다른 나라보다 유독 임금이 가파르게 오른 한국 그래프를 가리키며 "제발 노조 좀 설득해 달라"고 했다. 한국은 고비용 사업장으로 이른바 블랙리스트에 들어있다.

한국GM 실적이 나빠진 게 오로지 임금 인상 때문만은 아니지만 방만한 경영과 강성 노조로 망해본 적 있는 GM 으로서는 그걸 빌미로 한국 사업을 축소할 공산이 크다. 그런 징후에 불안해하면서도 노조는 해마다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통상임금 문제도 제기하면서 악수(惡手)를 두어왔다.

이들에게 1년 전 칼럼에서 소개했던 국제 생활용품 업체 피앤지(P&G)의 일본 공장 사례를 꼭 다시 들려주고 싶다. 8년 전 인건비 비싼 일본 대신 중국으로 생산 라인이 옮겨질 상황이었다. 실직 위기에 처한 일본 근로자들은 우리나라 노조들처럼 정치권에 읍소하고 '공장 이전 결사반대' 항의 투쟁을 하는 식으로 대처하지 않았다. 본사 경영진을 찾아가 경제 논리로 간곡하게 설득했다. "장인 정신을 발휘해 더 좋은 제품을, 더 싸게 만들어 회사 사정을 개선하고 싶다"고 했다. 원가를 단돈 1센트(11원)라도 낮추려고 아이디어를 짜내고 제품을 개선하는 혁신을 수년째 이어갔다. 그 간절한 현장 혁신 덕에 일본 팸퍼스 기저귀의 생산 원가가 중국의 평균 원가보다 낮아졌다. 지난해 P&G 본사는 일본 공장을 문 닫기는커녕 증설했다. 대신 중국 생산 라인을 줄였다. 현장에서 매일 쌓은 '1센트의 기적'이 목청 높이는 투쟁보다 의미 있는 성과를 이뤄냈다.

한국GM이 철수하면 1만6000명이 일자리를 잃고 협력업체 포함해 30만명에 영향을 미친다. 일단
한국GM 측은 철수설은 부인했다. 당장 철수도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생산성과 노조 문화가 개선되지 않으면 슬금슬금 한국 사업장을 쪼그라뜨려갈 가능성은 다분하다. 이 위기에 한국GM 노조는 어떤 선택을 할 건가. 지금까지처럼 상급 노조와 손잡고 자승자박의 투쟁만 이어갈 건가. 일본 근로자들 같은 감동 스토리로 GM 본사를 적극 설득해볼 의향은 없는가.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30/201708300376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