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사설] 38개월 심의 원전 건설, 사흘 만에 無근거·無대책 중단

최만섭 2017. 7. 11. 09:54

[사설] 38개월 심의 원전 건설, 사흘 만에 無근거·無대책 중단

입력 : 2017.07.11 03:20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최근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 계약을 맺은 기업들에 공문을 보냈다. 공사 일시 중단에 대비해서 필요한 조치를 취해달라는 내용이다. 이에 시공 업체들은 공사 중단의 법적 근거, 조치를 해야 할 업무 종류, 공사 중단에 따른 피해 보상을 명확히 알려달라는 회신을 보냈다. 납득할 수 없다는 뜻이다. 권력이 시퍼런 정권 초반에 힘에 약한 기업들이 반발하는 것은 어쩔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고리 1호기 영구 정지 선포식에서 탈원전을 선언했다. 그러고는 지난달 27일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를 일단 중단하고 시민 배심원단이 건설 여부를 결정토록 했다. 이틀 뒤 산업부가 공사 중단에 필요한 이행 조치를 내리라는 공문을 한수원에 보냈고, 한수원이 바로 다음 날 시공 업체에 공문을 보낸 것이다.

신고리 5·6호기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38개월간 심의를 거쳐 작년 6월 최종 허가했다. 관련 기업이 600곳이나 되고, 현재 공정률이 28.8%에 이른다. 그런 원전 공사를 법적 근거와 최소한의 절차적 요건, 피해 보상책 등도 미흡한 채로 불과 사흘 만에 민간 기업에 중단하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이다.

원전 건설 허가와 중단 조치는 국무총리 산하 원자력안전위원회를 통해 진행한다. 현행 원자력안전법에 따르면 안전 문제나 허가 절차상 문제가 있지 않은 한 시공 업체에 공사를 중단시키거나 취소할 법적 근거가 없다. 공사 중단의 법적 근거가 없다는 지적이 나오자 산자부는 에너지법상 한수원은 국가 에너지 시책에 적극 협력할 의무가 있다는 조항을 근거로 들어 "이번 공사 중단은 공익적 필요에 따른 것이므로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했다. 공사 중단이란 극단적 조치를 '협력' 차원으로 본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공사 일시 중단도 한수원 이사회를 거쳐야 하는데 지난 7일 열린 이사회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공사 중단을 기정사실화했다. 법 규정을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다. 공론화 기간 동안 공사를 일시 중단만 해도 1000억원 이상 손실이 발생한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포기할 경우에는 이미 집행된 공사비 1조6000억원과 기업들에 대한 보상비 1조원을 합쳐 2조6000억원 손실이 발생한다. 한수원 노조는 "원전 건설이 중단되면 결정에 참여한 이사진과 정부 관계자 전체
를 배임 행위로 고소·고발하겠다"고 했다.

탈원전이란 새 정부 방침 그 자체도 경솔하지만 이를 실행에 옮기는 절차도 거의 막무가내 수준이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법적 근거나 절차의 정당성도 미흡한 채로 수조원짜리 원전 공사를 중단하고, 계약 맺은 민간 기업에 막대한 피해를 주면서 이를 국민 세금으로 메워주는 게 과연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7/10/201707100262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