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 -BUSINESS 용어

'루시퍼 효과'(Lucifer Effect)

최만섭 2017. 6. 17. 17:08
울트라 소셜

그들은 정신이상자가 아니다

자살테러범과 완장 효과

<출처 : 셔터스톡>

자살테러범의 심리학

현재 지구에서 자살폭탄 테러는 얼마나 자주 일어날까?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와 연계된 아마크 통신에 따르면, 올 상반기 동안 자신들이 저지른 자살폭탄 테러는 월평균 100건에 이른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해 IS를 비롯한 전 세계 테러조직이 벌인 자살폭탄 테러가 726건으로, 월평균 60건 정도라고 발표했다. 2015년 글로벌 테러리즘 지수(Global Terrorism Index)에 따르면, 자살테러로 인한 사망자 수는 2000년에 3,329명에서 2014년에 3만 2,685명으로 21세기에 들어 거의 10배나 증가했다. 특히 최근 1년 사이(2013~2014년)에는 80퍼센트 가량이나 급증했다.1)

2015년 프랑스 테러 추모 현장 자살테러로 인한 사망자 수는 5년 사이 거의 10배가 증가했다. <출처 : 셔터스톡>

지난 7월 3일에도 이라크 바그다드 상업 지구에서 281명의 사망자를 낸 대규모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중동에서만 일어나는 비극이 아니다. 2015년 11월 13일에는 프랑스 파리의 공연장과 축구장 등 6곳에서 자살폭탄 테러와 총기 난사 테러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해 13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IS는 자신들이 기획하고 프랑스 현지 대원이 실행에 옮긴 테러라고 발표했다.


테러조직원들은 대체 어떤 존재이기에 무고한 동료 인간들을 이렇게 무자비하게 살해할 수 있단 말인가? 테러집단의 어떤 목소리가 전 세계의 ‘외로운 늑대들’(자생적 테러리스트)을 부추기는가? 대체 어떤 이들이 이런 조직을 따르고 있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탐구는 비단 심리학자들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가 테러리스트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으며 그 영향을 우리가 피할 수 있다고 확신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자살테러범은 누구인가?

오래된 첩보 영화들에서 범인 알아맞히기는 식은 죽 먹기다. 그는 일단 험상궂게 생겼고, 정신질환자일 가능성이 높고, 늘 분노에 차 있으며, 동정심도 없다. 범인은 누가 보아도 범인처럼 보이는 사람이다. 미디어가 범인의 전형성을 이렇게 심어주어서인지, 우리는 자살테러범에 대해서도 비슷한 이미지를 떠올린다. 광신도이거나 정신이상자, 교육받지 못한 무식쟁이, 복수 열망에 사로잡힌 냉혈한... 하지만 자살테러범에게 실제로 이러한 표식들이 있었다면, 자살테러가 이처럼 점점 증가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진화인류학자 애트란의 연구에 따르면, 자살테러범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출처 : 셔터스톡>

진화인류학자 스콧 애트란(Scott Atran)은 “자살테러범은 정신질환자도, 광신도도, 무식쟁이도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는 몇 차례의 살해 위협도 무릅쓰며 지난 10여 년 동안 가자, 인도네시아, 카슈미르, 팔레스타인 등을 누비며 자살테러범과 그의 가족들, 동료들, 그리고 피해 가족들을 심층적으로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해왔다. 그런데 그가 자살테러범에 관해 내린 결론은 사뭇 충격적이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2)


그는 가자 지구에서 순교를 부추기는 광경을 너무나 쉽게 목격했다. 순교자를 칭송하는 포스터가 사방에 붙어있었고 그런 노래도 주위에 울려 퍼졌다. 팔레스타인 조사연구 센터가 실시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2001년 4월경 팔레스타인 국민의 자살테러 지지율은 무려 70퍼센트가 넘었다.


애트란의 독립적 조사 결과는 더 충격적이다. 자살테러를 지지하는 계층은 무장 단체만이 아니라 엘리트 계층을 포함한 평범한 주민들이었다. 가령, 의사, 변호사, 교사 같은 전문직뿐만 아니라, 평범한 엄마들, 심지어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평화주의자까지 팔레스타인 대부분이 자살테러를 순교 행위로 칭송하고 지지했다.3)


자살테러가 이렇게 고상한 행위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환경에서 자발적 테러범이 생겨나는 일은 별로 어려운 과정이 아닌 듯하다. 애트란이 심층 면접한 자살테러범 부모는 자신의 아들이 장학생으로 영국 대학에 유학까지 다녀왔을 정도로 인생을 진지하게 살아온 모범생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런 자랑스러운 아들이 자살테러를 저지른 이유에 관해 묻자, 사촌과 동료 들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은 것이라고 했다(실제로 그에게는 얼마 전에 사망한 하마스 무장단체 소속의 사촌들이 있었다).4) 실제로 멀쩡했던 대학생 청년들이 부모도 모르는 사이에 단 몇 주 만에 자살테러범으로 돌변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


실제로 주변인들의 증언을 토대로 자살테러범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한 연구에 따르면5), 34명의 자살테러범 중에 무식쟁이는 없었다. 오히려 일반 팔레스타인의 평균 교육 수준을 웃돌았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극빈층과 빈곤층에 해당하는 경우는 12가정이었고, 나머지는 중하층 이상이었다.


피해를 당한 경험들에 관한 조사에서도 일반 팔레스타인 국민들에 비해 특이한 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가령, 친구나 가족을 잃은 경우가 16명, 자신이 직접 부상을 당하거나 폭행을 당한 경우가 16명, 그리고 이스라엘 교도소에 수감된 경험이 있는 경우가 18명이었다. 종교적 측면에서는 23명 정도가 헌신도가 높았다고 답했지만, 이것도 특이한 경우가 아니다. 정신건강 측면에서도 다를 바가 없었는데, 34명 중에 우울증이나 정신분열증 같은 증상이 있었거나 개인 범죄에 가담한 적이 있었던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독특한 점이라고는 기혼자는 단 3명이었다는 사실뿐이다. 30년이나 테러와 정치 폭력을 연구해온 이 분야 최고의 연구자의 결론은, 그 끔찍한 살상의 원흉들은 대개 평범한 청년들이었다는 사실이다. 대체 평범한 청년들은 어떻게 극단적 테러리스트가 되었을까? 설명이 필요하다.

비합리적 권위에 대한 복종

평범한 인간이 자살테러범으로 돌변하는 현상과 관련이 있는 고전적 심리 실험들이 있다. 당신과 홍길동이 어떤 간단한 실험에 참여하고 있다고 해보자. 둘은 서로 모르는 사이다. 당신이 선생 역을 맡아 호수, 태양, 나무, 웃음, 아이 같은 단어들을 홍길동에게 읽어 준다. 그러면 전기의자에 앉아 있는 그가 그대로 따라 말하면 되는 실험이다. 그런데 만일 그가 실수하게 되면 당신은 감독자의 지시대로 15V, 30V, 45V... 이런 식으로 강도를 높여가며 그에게 전기 충격을 가해야 한다. 전압 버튼의 끝에는 450V(‘치명적’)라고 적혀 있다.

밀그램의 실험 <출처 : (cc) Fred the Oyster>

홍길동이 첫 실수를 한다. 당신은 15V 버튼을 누르지만, 살짝 움찔하는 그가 별로 걱정스럽지 않다. 하지만 실수가 계속되고 상황은 달라진다. 30V, 45V, 60V 버튼을 향하는 당신의 손가락이 떨리기 시작한다. ‘제발 정신 좀 똑바로 차려. 또 틀리면 나보고 어쩌라고!’ 설령 마음속으로 이런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해도 홍길동의 실수를 막을 수는 없다. 급기야 115V까지 왔다. 그의 비명 소리가 크게 들린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고통을 호소하는 홍길동과 실험을 중지하자고 제안하는 당신에게 감독자는 확신에 찬 어조로 계속 이렇게 말한다. “홍길동에게 영구적 조직 손상은 없을 테니 실험을 계속하시오.”


이 순간 당신은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실험실을 뛰쳐나갈 것인가, 아니면 감독자의 명령에 복종해 계속 버튼을 누를 것인가? 엽기적으로까지 보이는 이 실험은 전설적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이 1961년에 예일대에서 수행한 실제 사례로, 역사상 흥미로운 심리 실험 중 하나다.6) 사람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될 터이니 이 실험에 뭔가 속임수가 있었어야 한다. 비밀은 홍길동과 감독자에게 있다. 홍길동에게는 실제로 전기 충격이 가해지지 않았다. 당신 앞에서 뛰어난 연기력을 발휘했을 뿐이다. 즉, 감독자와 홍길동이 미리 짜고 당신을 상대로 ‘몰카’를 찍은 셈이다(물론 지금은 피험자에게 정신적 피해를 주는 경우라도 연구 윤리적으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이 실험을 똑같이 반복 검증할 수는 없다).


밀그램은 이 실험을 통해 권위에 복종하는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고자 했다. 사실 그가 진정으로 알고 싶었던 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질문이었다. ‘멀쩡해 보였던 나치 장교들이 왜 끔찍한 대량 학살에 참여하게 됐나?’ 나치의 대량 학살에 동원된 독일 사람들이 본래부터 악한 사람이었을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그들이 자란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독해졌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밀그램은 다른 가설을 세웠다. 그리고 이 실험을 통해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들도 특수한 ‘상황’에서는 보편적 도덕 규칙과 이성적 판단을 무시하고 특정 권위에 따라 끔찍한 행위를 저지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실제로 다양한 피험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치명적’ 전압 버튼을 누른 사람이 65퍼센트나 됐다. 평범한 우리도 언젠가 비합리적 권위에 복종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완장을 차면 달라진다

한편 사회심리학의 또 다른 전설 필립 짐바르도(Philip Zimbardo)의 이른바 ‘스탠퍼드 감옥 실험’은 평범한 사람이 끔찍하게 돌변하는 것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준 실험 연구다.7) 그는 심신이 건강한 남자 대학생 24명을 선발하고 무작위로 반을 나눈 후에 한쪽은 간수 역할을 하도록 다른 쪽은 죄수 역할을 하도록 했다. 이를 위해 스탠퍼드 심리학과의 지하에 실제 감옥과 매우 유사하게 모의 감옥을 설치했다. 짐바르도는 그 간수와 죄수들에게 실제처럼 하라고 지시를 했다. 가령, 죄수는 발에 쇠사슬을 차야 했고 번호로만 불렸으며, 간수는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곤봉을 차고 다녀야 했다. 짐바르도가 알고 싶었던 것은 제도적 권위가 인간의 개인 심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였다.


짐바르도는 실험을 2주 동안 진행하면서 생기는 변화를 관찰하고자 했다. 하지만 실험은 6일 만에 강제 종료되었다. 완장을 찬 학생들 중 3분의 1이 죄수들을 괴롭히고 모멸감을 느끼도록 했고, 가짜 죄수들 역시 진짜 죄수인 양 그들에게 복종하거나 우울증과 신경증 증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실험을 계속 진행하다가는 끔찍한 사고가 터질 만한 상황이었다.


죄수를 끔찍하게 학대했던 참가자들을 두 달 후에 만나 인터뷰했더니 그들은 하나같이 “내가 그렇게 악랄한 행동을 아무런 죄책감이 없이 자행했다니 너무 놀랍고, 이 때문에 여전히 혼란스럽다.”라고 답했다.8) 짐바르도의 이 역사적 실험은 개인의 성격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제도가 주는 권위에 따라 역동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는 이런 현상을 ‘루시퍼 효과(Lucifer effect)’라고 명명했다.9)

스탠퍼드 감옥 실험에서 죄수를 학대했던 참가자들은 아무런 죄책감 없이 악랄한 행동을 자행한 사실에 대해 혼란스러워했다. <출처 : 셔터스톡>

루시퍼 효과가 실험실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2004년 4월 28일, 전 세계는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촬영된 몇 장의 사진 때문에 놀라움에 휩싸였다. 그 사진 속에는 벌거벗은 이라크 포로들 옆에 웃고 있는 미군 병사의 모습이 있었고, 심지어 벌거벗은 포로의 목에 가죽끈을 묶어서 질질 끌고 다니는 여군의 모습도 있었다. 이런 변태 같은 행위를 담은 사진들이 전 세계 언론에 뿌려지자 미군 가해자 11명이 군법회의에 회부되었고 실형을 선고받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들에 대한 이후의 심리조사에 따르면, 이 가해자들도 대개 평범한 미국 시민이었다! 짐바르도와 밀그램이 보여준 것처럼, 집단의 상황이 개인의 성격을 압도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면, 이런 사례들에 대해 어떠한 처벌을 해야 할지도 깊은 논의가 필요한 대목이다.


소설가 윤흥길의 <완장>(현대문학)에는 루시퍼 효과가 잘 묘사되어 있다. “완장은 대개 머슴 푼수이거나 기껏 높아 봤자 마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완장은 제가 무슨 하늘 같은 벼슬이나 딴 줄 알고 살판이 나서 신이야 넋이야 휘젓고 다니기 버릇했다. 마냥 휘젓고 다니는 데 일단 재미를 붙이고 나면 완장은 대개 뒷전에 숨은 만석꾼의 권세가 원래부터 제 것이었던 양, 바로 만석꾼 본인인 양 얼토당토않은 착각에 빠지기 십상이었다.”(105쪽)


평상시에 얌전하던 사람이 리더의 직책을 맡은 후에 통솔력을 잘 발휘하는 모습을 보며 흔히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는데 이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자살테러범과 완장 효과

다시 자살테러의 문제로 돌아와 보자. 자살테러에 관한 실험을 직접 진행할 수는 없다. 대신 우리는 앞에서 살펴본 밀그램의 전기 충격 실험과 짐바르도의 감옥 실험을 통해 자살테러의 사회심리적 메커니즘에 대해 간접적인 답을 얻을 수 있다. 이 두 실험은 집단의 압력에 굴복하기 쉬운 인간의 심리를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지난번의 애쉬 실험의 결과와도 일맥상통한다(실제로 밀그램은 애쉬의 제자였다). 이 모든 실험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바는 한 가지다. 인간은 다른 구성원들의 생각과 행동에 민감하게 동조하고 공명하는 사회적 존재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집단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영혼 없는 좀비란 말인가? 최근의 관련 연구들에 따르면, 테러범들은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살인병기 로봇처럼 행동하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타 집단이 행하는 차별(폭력)을 얼마나 심하다고 느끼는지, 지휘관이 제시하는 비전에 얼마나 설득당했는지에 따라 극단적 행동을 감행하는 적극적 동조자(follower)들이다.10) 그리고 이런 사회적 정체성(social identity)은 거창한 공간에서만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동네에서 함께 축구나 급류타기를 할 때, 또는 소셜 미디어에서 “너희들이 이 더러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라는 연설을 보다가도 급격하게 형성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연구자들은 테러범 검거를 위한 팁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기도 한다.


“누가 자살테러를 할지 알기 원한다면, 특정 테러 조직을 와해시키고자 한다면, 그들이 무엇을 먹는지, 어떻게 입는지를 알아야 한다. 모의는 조용한 사원이 아니라 패스트푸드점, 축구장, 바비큐를 해 먹는 곳에서 일어난다.”11)


자살테러범의 부모의 반응에서도 자살테러가 단순히 강제된 자살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앞서 언급된 영국 유학 경험이 있는 모범생 테러범은 결국 이스라엘인 11명을 죽이고 20여 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하지만 그의 부모는 아들의 이 폭력 행위 때문에 죄책감에 빠지지도 슬퍼하지도 부끄럽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마치 그저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어쨌든 자식을 잃은 부모인데(살해범의 부모라는 사실은 차치하더라도) 어떻게 이렇게 담담할 수 있을까? 일반적인 부모의 심리적 특성으로는 설명하기가 곤란하다. 이 또한 집단 역학의 차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순교자들에게 그들의 공동체는 최고의 예우를 다해준다. 예컨대 거창한 장례식이 거행되고, 녹화된 영웅의 최후 증언이 방영되고, 그의 용기를 칭송하는 자료들이 배포되며, 유가족에게 새로운 거처와 각종 보상들이 주어진다. 자식의 자발적 희생이 가족 전체를 번영케 할 수 있다.

‘복종 본능’과 ‘순응 본능’은 어떤 권위가 활용하는지에 따라 긍정적으로 발현될 수도, 부정적으로 발현될 수도 있다. <출처 : 셔터스톡>

점점 더 빈번해지는 자살테러 현상은 우리에게 또 다른 근본적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것은 권위에 복종하고 집단에 순응하는 행위가 어떻게 진화했을까에 관한 것이다. 카리스마 있는 리더를 따르는 행위는 적합도를 높일 수 있다. 생존과 번식에 관한 노하우를 전수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롤 모델’이나 ‘벤치마킹’을 떠올려 보라. 대세를 따르는 순응 행위도 적응적 이득을 준다.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이나 물건에는 그만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권위에 복종하고 집단에 순응하는 행위가 이득이 되는 사회 속에서 우리 인류가 진화해 왔다는 것은 일차적 사실이다. 말하자면 우리에겐 ‘복종 본능’과 ‘순응 본능’이란 것이 있다. 문제는 이 본능들을 어떤 정치권력이나 권위가 활용하는지에 따라 정치 체제가 독재와 민주 사이를 오간다는 데 있다. 자살테러는 이 사회적 본능의 가장 어두운 발현일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그들은 정신이상자가 아니다 - 자살테러범과 완장 효과 (울트라 소셜)



"스미스씨, 당신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이유를 알았어요"

입력 : 2017.06.17 03:02

진화학자 서울대 장대익 교수, 과학과 인문학으로 "인간 읽기"
영장류 중 인간에만 흰 공막있어 서로의 눈 읽으며 협력 키워
공감·신뢰 등 '초사회성' 분석

울트라 소셜

울트라 소셜

장대익 지음ㅣ휴머니스트ㅣ272쪽 | 1만5000원


"완장은 대개 머슴 푼수이거나 기껏 높아 봐야 마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완장은 제가 무슨 하늘 같은 벼슬이나 한 줄 알고 살판이 나서 신이야 넋이야 휘젓고 다니기 버릇했다. 마냥 휘젓고 다니는 데 일단 재미를 붙이고 나면 완장은 대개 뒷전에 숨은 만석꾼의 권세가 제 것이었던 양 얼토당토않은 착각에 빠지기 십상이었다."(윤흥길의 소설 '완장')

소위 '루시퍼 효과'(Lucifer Effect)를 설명하기 위한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장대익(47) 교수의 한국문학 인용이다. 사탄의 이름을 빌려온 '루시퍼 효과'는, 개인의 성격이 고정된 게 아니라 제도가 부여하는 권위에 따라 역동적으로 변한다는 의미다.

진화학과 과학철학을 전공한 장 교수의 새 책 '울트라 소셜'은 두 가지 차원에서 매력적이다. 하나는 해외 진화학 연구 성과의 최전선을 우리의 문화와 언어로 전달한다는 것. 나머지 하나는 자신이 공부한 각각의 학문전통을 상호 보완적으로 결합해서 독자를 설득한다는 점이다. 그 결합은 결국 '어떻게'와 '왜'로 요약된다. 인과론적인 실험 결과와 이 결과가 나온 궁극적 철학적 이유를 병렬시키는 글쓰기. 따라서 그의 과학은 어떤 의미에서 21세기의 인문학이다. 책 제목 '울트라 소셜'(Ultra-Social)은 초사회성(超-社會性)이라는 의미.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의 장대익적 확대 규정으로, 공감·협력부터 소외·테러까지 상반된 인간 본성은 어떻게 작동하고 왜 발현되는지에 대한 과학적 실험과 인문학적 해석이다.

프로 포커 선수들은 선글라스를 쓰고 게임을 하겠다고 고집 피우곤 한다. 시선을 읽히고 싶지 않아서다. 영장류 92종 중 흰 공막이 있는 건 인간뿐. 우리는 눈으로 상대 마음을 읽는다. 위 사진은 영화 ‘매트릭스’에서 선글라스 뒤에 숨은 스미스 요원.
프로 포커 선수들은 선글라스를 쓰고 게임을 하겠다고 고집 피우곤 한다. 시선을 읽히고 싶지 않아서다. 영장류 92종 중 흰 공막이 있는 건 인간뿐. 우리는 눈으로 상대 마음을 읽는다. 위 사진은 영화 ‘매트릭스’에서 선글라스 뒤에 숨은 스미스 요원. /워너 브러더스·Getty Images Bank

다시 '완장'과 '루시퍼 효과'로 돌아가자. 우선 실험 사례. 미 스탠퍼드대 교수인 사회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는 심신 건강한 남녀 대학생 24명을 선발해 무작위로 절반을 나눈 후, 각각 교도관과 죄수 역할을 맡겼다. 애초 실험 기간은 2주였지만, 6일 만에 서둘러 끝내야만 했다. 완장 찬 학생 1/3이 죄수에게 모멸감을 주면서 점점 '쾌감'을 느꼈고, 죄수 역시 강압적 행위에 복종하면서 우울증과 신경증 증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비슷한 실험 몇몇을 더 인용하면서, 장 교수는 이슬람 국가 IS의 자살 테러범 역시 정신이상자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평범한 사람도 특수한 상황에서는 '루시퍼 효과'처럼 특정 권위를 쫓아 끔찍한 행위에 복종하거나 가담할 수 있다는 것. 나치의 대량 학살에 동원된 독일인도 같은 범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울한가. 이번에는 희망적인 '초사회성'을 보자. 키워드는 '협력'이다. 역시 과학적 실험 사례부터. 영장류 92종 중에서 투명한 결막과 흰 공막을 가진 종은 인간밖에 없다는 게 일본 고바야시 히로미 박사팀의 연구 결과다. 오랑우탄이나 침팬지뿐만 아니라, 개나 고양이도 눈의 흰 부분, 즉 공막이 없다. 동물은 동공과 공막의 구별이 흐릿해 눈 전체가 거의 같은 색으로 보인다.

장 교수는 '협력적 눈 가설'을 인용한다. 흰 공막 때문에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쉽게 읽을 수 있고, 동시에 자신의 시선도 읽힐 수 있다는 뜻이다. 즉 흰 공막은 진화적 독특성을 지니는 인간 고유의 형질로서, 생리학적 설명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 영화 '매트릭스'에서 선글라스 뒤에 숨은 수많은 스미스씨들의 세상이 얼마나 삭막할지 상상할 수 있다면,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연인들의 촉촉한 세상 역시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장 교수는 "상대의 마음을 알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 사람의 동공을 보라"고 썼다.

이 책이 분류한 초사회성의 개념은 모두 15개. 1부 '초사회성의 탄생'에서는 공감·협력·배려·이해·전수(傳授), 2부 '초사회적 본능'은 편애·신뢰·평판·허구·헌신이다. 2부까지가 상대적으로 긍정적·희망적 구분이었다면, 3부 '초사회성의 그늘'의 소외·서열·동조·테러는 우려에 가깝다. 사회적 고통의 뿌리, 예스맨의 탄생 등을 이 범주에서 설명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4부 '초사회성의 미래'에서는 공존을 꿈꾼다. 인공지능 이후 모두가 우려하는 우리의 미래 말이다.

전문가가 아니라 일반 독자를 상정하고 쓴 대중 교양서다. 앞에서 과학이 21세기의 인문학을 꿈꾸고 있다고 썼다. 장 교수의 '울트라 소셜'은 단순히 사실에 그치지 않고
, 그 사실을 이용해 가치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장 교수가 인용한 실험 결과 중에는, 무릎이 까져서 피가 철철 날 때와 조직 내에서 왕따를 당했을 때의 물리적 고통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신체적 고통과 사회적 고통의 뿌리가 다르지 않다는 것. 어쩌면 현대의 진화론은 예전의 문학과 예술처럼, 인간의 감정교육까지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6/17/201706170006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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