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4.14 03:14
[어제 임시정부 수립 98주년]
독립운동가 민필호 선생 아들 민영백씨가 말하는 '그날들'
- 백범기념관 등 설계한 민씨
"외할아버지는 신규식 선생… 임시정부 요인 귀국 후에도 아버지는 중국 남아 한인 보호"
임시정부 수립 98주년(13일)을 하루 앞둔 12일 서울 종로구 경운동에 있는 '민설계 사무실'에서 만난 민영백(76)씨는 "우리 가족이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을 독립운동가 선생님들과 다 같이 둘러앉아 맛있게 먹었다"고 말했다. 민씨는 임시정부에서 백범 김구 선생의 비서실장을 지낸 독립운동가 민필호(1898~1963) 선생의 둘째 아들이다.
1945년 해방이 되고 임정 요인들이 조국으로 돌아갔지만, 민씨 가족은 중국에 남았다. 민씨의 외할아버지인 신규식 선생과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민필호 선생이 "주화대표단에 남겠다"고 자원했기 때문이다. 주화대표단(駐華代表團)은 임정 요인들이 한국으로 돌아온 뒤 잔무 처리와 중국 내 한인 교포들의 생명과 재산 보호, 귀국 등 문제를 중국 정부와 논의하기 위해 1945년 11월 1일 중국 장쑤성 난징(南京)에 설치된 기구다. 주중 한국대사관의 효시 격이다.
민씨는 임정 98주년을 맞아 주화대표단이 중국의 장제스(蔣介石) 국민정부 총통과 주고받은 서신을 공개했다. 주로 민필호 선생이 직접 쓴 것이다. 서신 중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고려통신사를 설립하고 독립운동을 했던 서영해(徐嶺海) 선생이 중국에 입국하는 과정에서 사회주의자로 몰려 체포됐을 당시, 중국 정부에 석방을 요구하는 내용도 있다. '서영해는 파리에서 신문사 일을 한 사람입니다. 프랑스 측의 허가를 받아 고려통신사 등록증을 우리 측에서 제공할 테니 하루빨리 서영해를 풀어주시기 바랍니다.(1948년 8월)'
김구 선생 명의로 임정 요인들이 한국으로 돌아오기 두 달 전 장제스의 비서에게 보낸 편지도 공개됐다. '미군이 한성(서울)에 진입한 후 국내 치안 질서가 회복되고 있다. 사회 유망 지사들이 국민 대회를 열어 임시 정부는 먼저 귀국하려 한다.(1945년 9월 24일)' 이 문서들은 민씨가 2015년 대만 정부로부터 직접 받아왔다. 대만은 70년 지난 고문서를 직계 가족이 열람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민씨 가족은 주화대표단이 해산된 뒤 1949년 4월 귀국했다. 그러나 두 달 뒤인 6월 26일 김구 선생이 암살되면서 다시 대만으로 정치적 망명을 해야 했다. 한국에 다시 돌아온 것은 1957년이었다. 민씨는 "부끄러운 말이지만 한국말도 그때 배웠다"고 했다.
한국에서 중·고교를 졸업하고 홍익대 미대에 진학한 민씨는 지금 건축설계사로 살고 있다. 백범김구기념관과 국립중앙박물관 등이 민씨의 설계 작품이다. 민씨는 "14일이 아버지의 기일"이라며 "이름이 크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조용히 나라를 위
☞임시정부 주화대표단(駐華代表團)
임시정부 요인들이 귀국한 뒤 임시정부 잔무 처리와 중국 내 한인 교포들의 생명과 재산 보호, 귀국 등 문제를 중국 정부와 논의하기 위해 1945년 11월 1일 중국 장쑤성 난징(南京)에 설치된 기구다. 임시정부의‘주중 한국 대사관’역할을 맡았다. 1948년 8월 10일 해산됐다.